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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와 동냥재(棟樑材)랄 뎌리 하야 어이 할고 (초장 - 개탄, 현실 비판)

헐뜨더 기운 집의 의논(議論)도 하도 할샤     (중,종장 - 동량재가 버려지고 있는 현실)

뭇 지위 고자 자 들고 헤뜨다가 말려니        

● 어휘 풀이

 동냥재(棟樑材) - 기둥이 될 만한 재목, 나라를 이끌 인재

 지위 - 목수

 고자 - 먹통

 헤뜨다가 - 허둥대다가


● 전문 풀이

   어와 나라의 큰 인재르 저리하여 어이 할고.

   헐뜯어 기운 집의 의논도 많기도 많구나

   여러 목수 먹통과 자 들고 허둥대다가 말려니


● 감상

   당쟁으로 인하여 기울어 가는 나라에 대한 염려를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여 노래하였다.


● 주제 :당쟁의 와중에 인재가 버려지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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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탄(船上嘆)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미천하고 노쇠한 몸을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을사년 여름에 진동영(부산진)을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 있겠는가?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서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르는 노란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일세.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옛날과 지금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든 헌원씨를 원망스럽게 여기노라.
바다가 아득히 넓게 천지에 둘려 있으니,
참으로 배가 아니면 풍파가 심한 만 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왜적)가 엿볼 것인가?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했는고?
(그것이) 오랜 세월에 끝없는 큰 폐단이 되어
온 천하에 만백성의 원한을 기르고 있도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왜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의 말을 곧이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데려다가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다 미치게 하였는가?
장생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년을 살았던가?
남처럼 죽어 갔으니 유익한 줄 모르겠도다.
아!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가 너무 심하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쉽게나 돌아왔으면
통주사(자신)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비를 팽개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도다.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편주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닥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활을
자그마한 배가 아니면 어디에 부쳐 다니겠는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날 듯이 빠른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의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더니
오늘날의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똑같은 배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의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었다 한들,
나라를 걱정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었을 것인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강개를 못 이기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멀리 쫓았고,
발이 없는 손빈이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온전하고 목숨이 살아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 들어 선봉을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왜적을)헤치리라.
칠종 칠금을 우리라고 못할 것인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꾸물거리는 저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니, 너희들을 구태여 모두 죽이겠느냐?
우리 임금님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시느니라.
태평스러운 천하에 요순 시대와 같은 화평한 백성이 되어
해와 달 같은 임금님의 성덕이 매일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들도 고기잡이 배에서 저녁 무렵을 노래하고(늦도록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 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가 : 박인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선조 38년(1605년), 노계 45세 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전쟁 가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율격 : 3(4).4조 4음보 연속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체 : 가사체, 운문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임진왜란의 체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표현 : 인용법, 대구법, 은유법, 설의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우국적(憂國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전쟁을 혐오(嫌惡)하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싶은 마음. 우국단심(憂國丹心), 전쟁의 비분을 딛고 태평성대를 염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태평사(太平詞)'와 함께 전쟁가사의 대표작. 감상에 흐르지 않고 민족의 정기와 무인의 기개를 읊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열서식(내용은 다섯 문단으로 나누기도 함)
   
서사 - 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옴
   본사 1 - 헌원씨를 원망함
   본사 2 - 왜적이 생긴 것을 개탄함
   본사 3-  배로 누릴 수 있는 풍류와 흥취
   본사 4 - 옛날과 배는 같지만 풍류가 다름
   본사 5 - 수치심과 작자의 우국지심
   본사 6 - 설분신원(雪憤伸寃)을 다짐
   결사 - 태평 성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기타 : 표현상 예스러운 한자 성어와 고사가 지나치게 많다. 왜적에 대한 적개심은 그럴 만하나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나타나는 점이 흠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노계집(蘆溪集)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서사 - 진동영에서의 심회, 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늙고 병든 몸을 통주사(수군)로 보내시므로

을사년(선조38년)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 있겠는가?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서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르는 노란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일세.
-
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와 병선을 타고 대마도를 굽어 보는 심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천석고황(泉石膏 )'의 경지에서 자연을 몹시 사랑함을 '병'으로 표현한 관습적, 상투적인 표현이다.

-  태평사와 더불어 중요한 전쟁 문학 작품이며, 이 글은 진동영에서의 심회를 읊은 것으로 글 전체의 서두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연상하는 시상도 엿볼 수 있으며(강호애 병이 깁퍼), 왜적 침공에 대해 헌원씨를 원망하는 표현 등 고졸(古拙)한 한문투의 성구와 전고(典故)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서성이며)
옛날과 오늘날(지금)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든 헌원씨를 원망스럽게 여기노라.
바다가 아득히 넓게 천지에 둘려 있으니,
참으로 배가 아니면 풍파가 심한 만 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왜적)들이 엿볼 것인가?
(훤원씨는)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했는가?
왜 그는 천만년 후에 끝없는 폐단이 되도록
넓은 하늘 아래에 있는 온 천하에 만백성의 원한을 길렀는가.
-
본사 1 - 왜적의 침범이 배 때문이라 하여 배를 처음 만든 헌원씨를 원망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헌원씨는 배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배가 없다면 왜구의 침입이 없으리라는 뜻.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왜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의 말을 곧이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데려다가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원통하고 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다 미치게 하였는가?
장생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 년을 살았던가?
남처럼 죽어 갔으니 유익한 줄 모르겠도다.
아!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가 너무 심하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쉽게나 돌아왔으면
통주사(자신)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본사 2 - 진시황과 서불로 말미암아 왜적이 생긴 것을 개탄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단에서 비록 헌원씨가 배를 만들어 왜적이 타고 왔지만 진시황이 불사 장생약을 구하러 서불을 보내지 않았다면 왜적이 생기지 않아 오늘날같이 왜적의 침입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으로, 배를 잘못 이용한 진시황과 서불을 탓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비를 팽개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도다.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작은 배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다가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활을
자그마한 배가 아니면 어디에 부쳐 다니겠는가?[
배가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인식]
-
본사 3 - 배가 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풍류와 흥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진나라 장한이, 가을 바람이 불자 향수를 이기지 못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 이백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장한이 강동으로 간 것은
바로 가을 바람 불 때요
맑은 하늘의 한 기러기 소리에
바다는 넓고 돛배는 느리다.

 문단에서는 왜적을 만들어 낸 진시황을 원망하다가 다시 장한의 고사를 인용하여, 배에서 흥취와 풍류, 배의 효용 등으로 배의 공덕을 노래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날 듯이 빠른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
전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에]
옛날의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더니
오늘날의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똑같은 배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의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
본사 4 - 옛날과 지금의 배는 같지만 근심과 풍류가 다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옛날 배 위에는 술상이 어지럽게 흩어졌더니 - 상황이 다르다는 말

송나라 소동파의 적벽부 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객은 기뻐하고 웃으면서
잔을 씻어 다시 주고 받았다.
안주는 다 떨어지고
잔과 쟁반은 다 흐트러졌다.
모두 취해 배의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드니,
동방이 밝도록 날이 새는 것도 몰랐다.

여기서는 배 위에서의 흥겨움과 풍류를 나타내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앞의 구절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같은 배이지만 전란으로 인한 근심을 묘사한 것이다.

 위의 글은 음풍영월하던 당시의 배와 같은 배이지만 고금의 우락이 서로 다름을 소동파의 고사를 인용하여 가슴 아픈 전선(戰船)에서의 감회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의 이중적 의미 :  '선상탄'에서 '배'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배'가 있음으로써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때 작가는 '배'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편으로 '배'는 풍류와 흥취를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소재로, 작가는 태평성대가 와서 고깃배를 타고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었다 한들,
나라를 걱정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었을 것인가?
-
본사 5 - 해추 흉모에 당한 수치심과 작자의 우국 단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북신'은 임금이 계신 곳, 즉, 연군의 정을 의미하고 '노루'는 나라를 걱정하며 흘리는 눈물로서 우국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왜적들의 흉악한 모략에 빠져 천추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변방을 지키는 관리로서 느끼는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 충정을 보이고 있다.

   위의 글은 지은이의 우국충절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으로 '북신을 바라보며'는 연군의 정을, '노루'는 나라를 걱정하여 흘리는 우국의 눈물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강개를 못 이기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보잘 것 없는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멀리 쫓았고,
발이 없는 손빈이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온전하고 목숨이 살아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 들어 선봉을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왜적을)헤치리라.
(
제갈 공명이 맹획을 일곱 번 놓아 주었다가 일곱 번 다시 잡았다는)칠종 칠금을 우리라고 못할 것인가?
-
본사 6 - 설분 신원을 다짐하는 무인의 기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생에 공명을 두려워하던 중달이 공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쳐들어갔으나, 의외에도 공명이 의젓이 가마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도망쳤다는 고사의 인용으로 , 이 때 가마에 앉은 것이 사실은 공명의 시체였다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손빈과 방연 전국 시대의 병법가 손자 병법에 뛰어남. 방연이 손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발을 잘랐으나,뒤에 서로 다른 나라의 장수가 되어 싸웠을 때 방연은 손 빈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일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마음대로 할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곱 번 놓아주었다가 일곱 번 다시 잡는다는 말은 제갈 공명이 남만의 맹획을 칠 때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위 글에는 무사다운 기개로 왜구를 무찌르고자 하는 우국 단심을 제갈 공명과 손빈의 고사를 인용하여 노래하고 있다.

결사 - 태평 성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꾸물거리는 저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니, 너희들을 구태여 모두 죽이겠느냐?
우리 임금님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시느니라.
태평스러운 천하에 요순 시대와 같은 화평한 백성이 되어
해와 달 같은 임금님의 성덕이 매일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들도 고기잡이 배에서 저녁 무렵을 노래하고(늦도록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 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
 태평성대 기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물거리는 섬나라의 오랑캐들아, 얼른 항복하여 용서를 빌려무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태평세월이 계속됨을 나타냄

 
결사 부분으로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평화에의 희구를 노래했다. 평화를 지향하려는 작자의 심정이 강건체의 문장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현대역

(서사)

늙고 병든 몸을 통주사(수군)로 보내시므로 을사년(선조38년)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 있겠는가?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서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르는 노란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이로구나.(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와 병선을 타고 적선을 바라봄)

(본사 1)

배 위에서 서성이며 옛날과 오늘날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중국에서 처음 배를 만들었다가는 헌원씨(중국 고대 전설적인 황제로 곡물 재배를 가르치고 문자, 음악, 도량형 등을 정했다고 함)를 원망하노라. 큰 바다가 아득하고 넓어서 천지에 둘려 있으니, 참으로 배가 아니면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만 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들이 엿볼 것인가? 헌원씨는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는가? 왜 그는 천만 년 후세에 끝없는 폐단이 되도록 넓은 하늘 아래에 있는 많은 백성들의 원망을 길렀는가? (왜적의 침범이 배 때문이라 하여 처음 배를 만든 헌원씨를 원망함)

(본사 2)

아, 깨달으니 진사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왜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일본 대마도로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의 말을 곧이 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들여서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다 미친다. 오래 사는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 년을 살았던가? 남처럼 죽어 갔으니 유익한 줄 모르겠도다. 아, 생각하니 서불(진시황 때의 술객術客)의 무리가 너무 심하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쉽게나 돌아왔으면 통주사(나)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진시황과 서불로 말미암아 왜적이 생긴 것을 개탄함)

(본사 3)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비를 팽겨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도다. 장한(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왕이 대사마를 삼았는데 가을 바람이 불자 고향이 그리워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했다고 함)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편주(작은 배)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다가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활을 자그마한 배가 아니면 어디에 부쳐 다니겠는가? (배가 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풍류의 흥취)

(본사 4)

이런 일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날 듯이 빠른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의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더니 오늘날의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똑같은 배이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에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옛날과 지금의 배가 같지만 근심과 풍류가 다름)

(본사 5)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달라 못 모시고 늙었다 한들 나라를 걱정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었을 것인가? (해추 흉모에 당한 수치심과 작자의 우국 단심)

(본사 6)

강개를 이기지 못하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보잘것없는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의을 멀리 쫓았고, 발이 없는 손빈이 방연(손빈의 친구로 손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그의 다리를 잘랐다가 그에게 죽음을 당함)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온전하고 목숨이 살아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들어 선봉에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왜적을 헤치리라. 칠종칠금을 우리라고 못 할 것인가? (살분신원을 다짐하는 무인의 기개)

(결사)

꾸물거리는 오랑캐들아, 빨리 할복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니 너희들을 구태여 모두 죽이겠느냐? 우리 임금님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더불어 살아 가고자 하시느니라. 태평스러운 천하에 요순시대와 같은 화평한 백성이 되어 해와 달 같은 임금님의 성덕이 매일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들도 고기잡이배에서 저녁 무렵을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태평성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운이 감도는 부산진에 내려온 작자가, 왜적에 대한 비분 강개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전쟁 가사로서, '태평사(太平詞)'와 더불어 중요한 전쟁 문학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문화 민족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힌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연군(戀君)의 정, 그리고 태평 성대에 대한 간절한 희구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가사가 개인의 서정이나 사상의 표출만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민족적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문학 양식임을 보여 주는 한 예가 된다 하겠다.

 임진왜란 때 직접 전란에 참여한 작자가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뼈져리게 겪으면서, 싸움배를 관장하는 임무를 맡아 부산에 부임하여 지은 것으로, 왜적에 대한 근심을 덜고 고향으로 돌아가 놀이배를 타고 즐겼으면 하는 뜻과 우국 충정의 의지를 함께 표현한 것이다. 조선 전기의 가사가 현실을 관념적으로 다룬 데 반해, 이 작품은 전쟁의 시련에 처한 민족 전체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가사가 개인적 서정이나 사상의 표출만이 아니라 집단적 의지의 표현에도 적합한 양식임을 실증하고 있다.

 임진란이 발발한 해에서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은 가시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죽고 덕천가강(德川家康)이 뒤를 이어 화친(和親)을 맺고자 교섭이 잦았던 때이다. 노계 박인로가 이 때에 진동영을 부방(赴防)했으니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 작품에 투영해 보면 어주(魚舟)에 창만(唱晩)하고 성대(聖代)를 누리고 싶다는 작자의 소회(所懷)에 십분 공감이 간다.

 표현상 한문투의 수식이 많고 직서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결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전쟁 문학이 일반적으로 범하기 쉬운 속된 감정에 흐르지 않고 적을 위압할 만한 무사의 투지를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작가가 타고 있는 배를 중심 소재로 내세워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박인로(朴仁老)

 1561년(명종 16)∼1642년(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버지는 승의부위 석(碩)이며, 어머니는 참봉 주순신(朱舜臣)의 딸이다.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생(前半生)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後半生)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歌客)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이미 13세에 〈대승음 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31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동래·울산·경주지방을 비롯해 영양군까지 잇따라 함락되자 분연히 붓을 던지고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38세 때는 강좌절도사(江左節度使)인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수군(水軍)으로 종군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宣傳官)을 제수받았다.

거제도 말단인 조라포(助羅浦)에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는 무인의 몸으로서도 언제나 낭중(囊中)에는 붓과 먹이 있었고,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시정(詩情)을 잃지 않았다.

그의 후반생은 독서수행의 선비이며 가객으로서의 삶이었다. 곧, 문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은거생활에 든 40세 이후로, 성현의 경전 주석 연구에 몰두하였다.

밤중에도 분향축천(焚香祝天)하여 성현의 기상(氣像)을 묵상하기 일쑤였다. 또한, 꿈 속에서 성·경·충·효(誠敬忠孝)의 네 글자를 얻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자성(自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여러 도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이덕형(李德馨)과는 의기가 상합하여 수시로 종유하였다. 1601년(선조 34) 이덕형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처음 대면하여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 早紅枾歌〉이며, 1605년에는 〈선상탄 船上歎〉을 지었다.

1611년(광해군 3) 이덕형이 용진강(龍津江) 사제(莎堤)에 은거하고 있을 때 그의 빈객이 되어 가사 〈사제곡 莎堤曲〉·〈누항사 陋巷詞〉를 지었다.

1612년 도산서원에 참례하여 이황(李滉)의 유풍을 흠모하였고, 그 밖에도 조지산(曺芝山)·장여헌(張旅軒)·정한강(鄭寒岡)·정임하(鄭林下)·정연길(鄭延吉)·최기남(崔起南) 등과 교유하였다. 1630년(인조 8)에는 노인직으로 용양위부호군(龍蚊衛副護軍)이라는 은전(恩典)을 받았다.

1635년에 가사 〈영남가 嶺南歌〉를 지었고, 이듬 해 〈노계가〉를 지었다. 그 밖에 가사 〈입암별곡 立巖別曲〉과 〈소유정가 小有亭歌〉가 전하는데, 가사가 9편이고 시조는 68수에 이른다.

말년에는 천석(泉石)을 벗하여 안빈낙도하는 삶을 살다가 1642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양군 남쪽 대랑산(大朗山)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에 향리의 선비들이 그를 흠모하여 1707년(숙종 33)에 생장지인 도천리에 도계서원(道溪書院)을 세워 춘추제향하고 있다.

그는 비록 후반생부터 문인활동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鄭澈)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비록 시조를 즐겨 지어 완전히 생활화했지만, 국문학사상 의의는 가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재능도 가사에 더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蘆溪集, 원본 노계가사(이준철, 계몽사 영인, 1956), 蘆溪歌辭通解(朴晟義, 백조서림, 1957), 개고 박노계연구(이상보, 일지사, 1962), 蘆溪詩歌硏究(李相寶, 二友出版社, 1978), 노계가사신고(김창규, 경북대학교국어국문학회논문집 6, 1958), 蘆溪立巖曲의 系譜(金思燁, 경북대학교논문집 3, 1958), 노계시조분석고(장광덕, 명지어문학 3, 1966), 노계가사의 특질(박성의, 월간문학 3-4, 1970), 蘆溪歌辭問題點考察(黃忠基, 국어국문학 58∼60합병호, 1972), 蘆溪集의 形成(姜銓瓏, 국어국문학 62·63합병호, 1973), 박노계 오륜가소고(김기평, 공주교육대학논문집 11, 1974), 朴萬戶所唱의 立巖別曲考察(金一根, 국어국문학 81, 1979), 立巖別曲과 立巖二十九曲의 對比考察(黃忠基, 국어국문학 82, 1980), 蘆溪의 小有亭歌考(金文基, 국어국문학 84,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선상탄'의 구성

 '선상탄'은 내용을 기준으로 삼을 때,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노계가 왕명으로 통주사가 되어 배 위에 올라 대마도를 굽어보는 모양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勵氣瞋目�야 본다'는 데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선상탄의 기본 정서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단락에서는 배를 맨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헌원씨와 왜국에 사람이 살게끔 함으로써 호전적인 족속을 만들어 놓은 진시황 및 그 사신이었던 서불(徐市)을 탓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침략의 주체, 도구의 근원에 대한 원망을 통하여 반일의 정서를 뚜렷이 한 단락이다.
 셋째 단락에서는 배의 유용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였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넷째 단락에서는 비록 젊은 몸은 아니지만 우국충정으로 왜적의 무리가 무찌를 수 있다는 노계 자신의 기개와 기백을 토로하고 있다.
 다섯째 단락에서는 왜인들이 항복하여 태평스러운 시대가 오면 고깃배를 타고 즐기는 생활을 영위하겠다는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선상탄'의 창작 배경

 '선상탄'이 창작된 시기인 1605년은 우리 민족이 참혹한 피해를 입은 전란인 임진왜란이 종료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로서, 악화된 대일 감정이 지속되고 있던 때이다. 따라서 반일과 극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일반적 정서였고, 또한 정세아(鄭世雅) 휘하의 의병으로 또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일본에 대항, 항전에 직접 참여했던 노계의 기본적인 정서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시적 재능을 지닌 노계가 전란의 기억이 생생한 시절에 다시 통주사로 나라 수비의 임무를 맡게 됨에 따라 반일과 극일의 정서, 나아가 우리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 애호의 정서를 뚜렷이 의경화한 의론지향의 시가인 '선상탄'을 지은 것은 매우 시의(時宜) 적절한 시가 창작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작품의 창작 배경은 조선 후기의 군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상과 굴욕적 침략을 현실적으로 견딘 후에, 이를 이상적으로 초극하려는 의지와 민족의 염원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런 문학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선상탄(船上歎)

 1605년(선조 38)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전문 68절 144구. ≪노계집 蘆溪集≫에 실려 있다. 지은이가 통주사(統舟師)로 부산에 부임할 때 전선(戰船)에서 전쟁의 비애와 평화를 추구하는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내용은 다섯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제1문단은 “늙고 병든 몸을 주사(舟師)로 ”부터 “아득梨 창파(滄波)勘 긴 하堪과 梨빗칠쇠”까지로 나눌 수 있다. 왕명을 받들어 부임하게 된 경위와 각오를 노래하였다.

 제2문단은 “선상에 배회悧며 고금을 사억(思憶)悧고”부터 “주사(舟師) 이 시럼은 젼혀 업게 삼길럿다.”까지이다. 황제(黃帝)와 진시황(秦始皇)·서불(徐市) 등을 원망하는 내용이다.

 만리 밖의 오랑캐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온 백성이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된 것은 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하여, 배를 처음 만들었다는 황제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문득 깨달으니, 불사약을 구하려고 서불 등을 시켜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과 더불어 동해로 보내 마침내 바다 가운데 모든 섬에 물리치기 어려운 도적을 낳게 한 진시황이 원망스럽다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신하된 자로 신선을 못 만났다고 망명해 버린 서불 등이 더욱 심하였음을 말하였다.

 제3문단은 “두어라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일너 무엇悧로소니”부터 “기간우락(其間憂樂)이 서로 枷지 못悧도다.”까지이다. 배로 인하여 생기는 흥취와 풍류를 노래하고 있다. 옛날의 배는 술자리가 어지러운 흥취 있는 배였다.

 그런데 지금 지은이가 탄 배는 같은 배로되 술상 대신 큰 검과 긴 창뿐인 판옥선(板屋船 : 널빤지로 위를 덮은, 옛날 싸움배의 하나)이다. 바람 쏘이며 달을 읊어도 전혀 흥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당시의 삭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그렸다.

 제4문단은 “시시로 멀이 드러 북신(北辰)을 槨라보며”부터 “칠종칠금(七縱七禽)을 우린槪 못浬 것가”까지이다. 지은이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말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문물이 중국에 뒤지지 않으나, 국운이 불행하여서 왜구로부터 씻지 못할 수치를 받았다고 하였다. 비록 지은이 자신은 미약하고 병들었지만 나라 위한 정성과 장한 기개를 가졌음을 노래한 것이다.

 제5문단은 “준피도이(蠢彼島夷)들아 수이 걸항悧야嗜라”부터 마지막 “성대(聖代) 해불양파(海不揚波)肩 다시 보려 悧노라”까지이다.

 왜구들에게 항복할 것을 재촉하고, 평화를 되찾아 태평시절이 돌아오면 전선을 고깃배로 바꾸어 타고 풍월을 노래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었다. 이 작품은 무부(武夫)로서의 지은이의 패기와 우국단심(憂國丹心)을 잘 드러내었다.

≪참고문헌≫ 松江·蘆溪·孤山의 詩歌文學(朴晟義, 玄岩社, 1972), 蘆溪歌辭問題點考察(黃忠基, 국어국문학 58∼60 합병호, 1972), 蘆溪詩歌硏究(李相寶, 二友出版社, 1978).(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오륜가(五倫歌(박인로))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시조. 25수의 장편 연시조로 ≪노계집 蘆溪集≫에 전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주제로 한 5수, 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형제우애를 주제로 한 각 5수,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주제로 한 2수에다 작품의 끝에 총론 3수를 덧붙여 마무리한 구성으로 보아 박선장(朴善長)의 〈오륜가〉 형식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제를 표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오륜을 힘써 실천할 것을 직설적으로 권유하는 교술성이 강한 것에서부터 자신의 의연한 태도와 결의를 스스로 다짐하는 것, 혹은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정감 깊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성을 강하게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북풍의 찬 바람에 임금을 걱정하는 충정을 담은 작품과, 두 아우를 잃은 작자의 외로움을 처연하게 노래한 작품은 서정성과 형상성이 특히 돋보인다.

 ≪참고문헌≫ 仙源遺稿, 愼齋全書(周世鵬先生遺蹟宣揚會, 1979), 朴善長의 五倫歌(李相寶, 時調文學硏究, 正音社, 1980), 周世鵬과 道德歌(李東英, 국어국문학 84, 1980), 儒敎道德樂章考(金倉圭, 崔正錫博士回甲紀念論叢, 曉星女子大學校出版部,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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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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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곡(思美人曲)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 임과의 인연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이별 후의 그리움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세월의 무상함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 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결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 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 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 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결사 - 변함없는 충성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임에 대한 충성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가 : 정철(鄭澈;1536~1593)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선조 18년~22년(1585~1589)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서정 가사(抒情歌辭)[3·4조 내지 4·4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연군의 정, 임금을 그리는 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율격 : 3(4).4조의 4음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체 : 운문체. 가사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서사, 본사<춘원(春怨) ·하원(夏怨) ·추원(秋怨) ·동원(冬怨)>, 결사의 3단 구성.

서사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 : 쌍이 되어 있는 것. 또는 대칭이 되어 있는 것 )하였다.

본사

(춘하추동)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면, 임금의 심정 또한 어떠할 것인지 궁금해 하는 뜻을 읊었다.

춘하추동 사계절마다 고조되는 임을 향한 그리움의 정한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 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하다고 노래하였다. 또한, 하원에서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이 옷을 지어 보내드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미화법을 써서 정성의 극진함을 표현하고 있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 중에서 청광(淸光)을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였다.

동원에서는 임이 추울까 양춘을 붙이고 싶어하며,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결사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읊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계절별 주요 소재에 담긴 상징적 의미

계절

소재

상징적 의미

 

매화

임에 대한 화자의 충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화자가 임에게 이른 봄의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매화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변함없는 충절을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임에 대한 그리움과 충정

여름

임에 대한 화자의 알뜰한 정성 : 옷을 통해 사무치는 외로움과 임에 대한 애틋한 사람을 드러냄

가을

청광(달빛)

임의 선정을 갈망하는 화자의 충정

겨울

양춘(봄볕)

임에 대한 화자의 염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어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노래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국문학사에서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①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② '정과정(鄭瓜亭)'을 원류(源流)로 하는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다.

③ 우리말 구사의 극치를 보여 준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송강 가사(松江歌辭)성주본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 : 송강이 50세 되던 선조 18년(1585)에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의 논척(論斥 : 옳고 그름을 따져 물리침)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그의 고향 전남 창평(昌平)에 4년 간 우거(寓居)할 때 지은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가 : 서포(西浦) 김만중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은 이 세 편뿐이다.'(左海眞文章只此三篇 : 좌해진문장지차삼편)'라고 극찬하였고,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비겨 '동방의 이소(東方之離騷)'라고 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의 문학적 우수성 : 이 작품은 임금인 선조를 사모하는 연군의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연모하는 마음에 비겨서 노래하였다. 다양한 기법과 절묘한 언어가 구사되어, 가사 작품 중에서도 그 문학성이 두드러진다. 표현상의 기법으로는 비유법, 변화법을 비롯하여 연정을 심화시키는 점층적 표현이 쓰였다. 시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고 있으며,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정서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과 '사미인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속미인곡

사미인곡

공통점

1. 화자가 모두 천상의 백옥경(궁궐)에서 하계(유배지)에 내려온 여성임

2. 임에 대해서 화자가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음

3. 죽어서도 임을 따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음(다른 자연물로 변신 : 서정주의 '춘향유문'도 이와 유사한 표현)

차이점

내용
전개

화자와 보조적 인물의 대화체

화자의 독백체

화자의 일상 시간에 따른 전개로 임의 일상 생활을 염려하는 말 속에서 사계절이 잠깐 언급됨

임에 대한 그리움을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읊음

표현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소박하고 진실한 표현으로 서포 김만중이 송강의 작품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한 작품

한자숙어와 전고가 간혹 섞여 있으며 과장적 표현이 많음

화자의 태도

임의 소식을 알아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 보러 다니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애절한 마음으로 임을 기다리는 성숙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

속만 태우며 앉아서 임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임에 대한 일방적 지향이라는 점이 강함

어조

직설적이고, 소박한 서민 여성의 진솔하고 절실한 목소리

그리움을 안으로 삭이고 점잖게 표현하는 사대부 규중 여인의 목소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에서의 화자 갑녀와 을녀의 차이점

갑녀

을녀

을녀의 하소연을 유도하고,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결말 짓게 함

갑녀의 질문에 응하면서 하소연을 하면서 작품의 정서적 분위기를 주도함

작품의 전개와 종결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이 강함

작품의 주제 구현을 위한 실제적 중심 역할

보조적 위치에 있는 화자(보조적 위치에 있는 화자이지만, 문제가 있는 것이 마지막 결론 부분을 가장 강렬하고 의미있게 끝맺는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구태여 두 화자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이 제기될 수 있다)

작가의 처지를 대변하는 중심 화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송강 정철은 '미인'을 한글로 '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본래 '미인'은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 항상 사모하고 있는 군주, 재덕이 뛰어난 사람, 한나라 여관의 명칭, 무지개의 별명, 미남자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미인곡', '속미인곡'에서 작중 화자는 분명 임을 이별한 여인이므로, 여기서 '미인', 곧 '임'은 남성이거나 군주이다. 따라서 송강 가사에서는 '미인, 임'은 '사랑하는 임이자 미덕을 갖춘 임(군주)'이다. 한편, 송강 가사를 좀더 넓게 해석하면, 임을 꼭 군주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여자)로도 볼 수 있다. 절실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송강가사에서 임금을 미인으로 설정한 것은 남녀의 인간적인 정감의 교류를 군신 관계에 끌어들인 셈이고, 그래서 송강의 작품들이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 임과의 인연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나와 임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임과 운명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또한 어찌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백년해로 :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하기 전의 행복했던 시절의 상황. 나=작자 자신, 님 = 임금, 선조, 어울리는 한자성어는 금상첨화[(錦上添花) :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으로, 좋은 일 위에 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안석의 글에서 유래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 이별 후의 그리움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올 적에 비슨 머리 헝클어진지 3년일세 : 위인작춘연(爲人作春姸) 라는 말이 고문진보 '진사도'가 쓴 '박첩명이수'라는 시에 있다. 그 말은 남을 위해 봄화장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인은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 작춘연은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것, 곱게 치장하는 것.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궁궐에서 임을 모시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온 지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광한전은 임금이 계시는 궁궐, 하계는 작자가 은거하고 있는 전남 창평. 작자가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論斥)을 받고 창평에 퇴거(退去)한 때가 선조 18년(1585) 8월이므로, 이 작품의 창작 연대가 선조 21-22년(1588-1589)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 세월의 무상함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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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금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데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세월이 흘러가니 임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 가고) 듣고 보고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서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서사로서 임과의 인연이 천생 연분임을 밝히고, 이별의 한과 그리움으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심정을 나타낸 부분이다. 전편에 여성적인 감정과 어투와 행위로 가득 차 있다. 한 편의 연시(戀詩) 형식으로 작자의 심정과 처지를 말하고, 끝 부분에서 본사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으며, 충신 연군의 정을 남편과 생이별한 한 여인의 심정에 의탁하여 표현하였고, 임과 이별한 지 3년, 한과 그리움으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데, 무심한 세월은 덧없이 흘러 계절 따라 온갖 회포를 자아낸다고 여성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3년'이란 작자가 전남 창평에서 은거해 있는 동안을 말한다.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 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은근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 비치니. '暗香(암향)'은 매화의 속성으로 작자의 변함 없는 충성심을 img080111051.gif은 임금을 상징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직접 보여 드리고 싶은 작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매화'와 같은 나의 충정을 알아 주실런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학수고대]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 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한 여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공작'을 바꾸어 두르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img1-sa-mi-222-222.gif : 자화자찬을 하고 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기도 험하구나. 산과 구름은 자신과 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따라서 '산'과 '구름'은 간신 또는 정적(政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간신들이 임금님의 총명을 가리고 있어 조정이 어지럽다'는 뜻이다

본사의 춘·하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로 춘원에서는 봄의 정경과 창 밖의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었고, 하원에서는 여름의 정경과 원앙금으로 옷을 지어 임에게 보내고 싶은 정성을 표현했다. '매화'는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고 암향(暗香)은 절개와 충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이것이 임을 표상하는 달과 조화를 이루어 임금을 그리는 충성이 함축성 있게 표현되었다. '하원'에서는 긴긴 여름날에 고독에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원앙금으로 임의 옷을 지어내는 알뜰한 정성으로 나타나, 임에 대한 일편단심, 변함 없는 충성을 절실하게 드러내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 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러기는 사랑에 있어서 믿음을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러기의 울음 소리를 통해 작자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끄러운 조정을 은근히 풍자하며 임금의 선정을 기대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또 자신이은거하고 있는 이 곳까지도 임금의 은혜가 미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 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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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온 세상이 눈에 뒤덮여 움직이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인 '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萬徑人踪滅 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온 길엔 사람 하나 자취 없다.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차가운 강
  위에서 호올로 낚시한다'
를 암인(暗引)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한 후의 뼈에 사무치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다. 이 밤은 언제나 밝을 것인가. 임이 없는 외로운 밤이기에 원앙침도 차게 느껴지고 밤도 길게만 생각된다. 임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여성의 입장에서 밝히고 있다.

본사의 추원-동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 부분인 추원과 동원으로 '추원'에서는 달, 혹은 별(북극성)을 임(임금)에 비유하여 그 달빛 같고, 별빛 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갈망했고, '동원'에서는 따뜻한 햇볕을 부쳐 보내고 싶어하는 여성다운 알뜰한 정성과 긴긴 겨울 밤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여성다운 애절함으로 노래했다. '졈낫'은 선정(善政)을 비유한 것이고, '뎐공후'는 외로움을 달래는 매개물로 동원되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임에 대한 충성심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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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열두   셜흔 날' 등의 표현은 시름과 한의 양을 표현하기 위한 수법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임을 가까이 할 수 없어 얻은 병이기에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서 영혼으로나마 임을 만나겠다는 강렬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임과 함께 하겠다는 염원이 반영된 표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비록 임이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를지라도, 나는 오직 임만을 좇겠다는 일편단심을 표현한 구절이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전 편의 절정을 이룬 부분이다. 이 구절은 서사의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와 호응 관계를 이루면서 임을 따르려는 사랑의 일념이 숙명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결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결사로 임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일념을 노래한 부분으로, 전반부에서는 하루 열 두 때 한 달 설흔 날 한 시도 잊지 못하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한을 거의 절망에 가까운 탄식으로 노래를 했고,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그리움과 한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죽어 범나비가 되어서라도 영원히 임을 따르겠다는 강렬한 집념을 표현하였다. 이 집념이 바로 충신의 불변의 충성을 뜻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고려 때의 정과정을 연원으로 하여 조선 성종 때 조위의 만분가를 거쳐 온 충신연군지사는 송강의 '사미인곡'에 이르면 이렇듯 농염한 한 사랑의 노래로 변하여 격조 높은 문학 작품이 된 것이다.

1. 가사의 형식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이 작품을 낭송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가사 장르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가사는 3·4 또는 4·4조를 기본 음수율로 하며, 4음보 연속체의 운문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가사는 눈으로 읽기보다는 낭독하는 데서 그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음을 알고 학생들이 낭송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몸 / 삼기실 제 / 님을 조차 / 삼기시니, / 한 생 / 연분이며/ 하늘 / 모를 / 일이런가' 와 같은 방식으로, 3·4 또는 4·4조의 음수율과 4음보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낭송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내용 전개에 따라 '서사 - 본사 -결사'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정적 자아 정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흐름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상의 흐름에 따라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전체 구성은 서사 - 본사 - 결사로 이루어져 있고, 본사는 다시 춘원(春怨), 하원(夏怨) , 추원(秋怨), 동원(冬怨)의 사계절로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하고, '본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사' 와 '결사' 의 내용을 정리해 보게 한다.

예시답안 :

서사 :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낙향한 것을,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사 : 본사의 '춘원' 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이를 임금께 보내고 싶은 심정을, '하원' 에서는 비단으로 임의 옷을 지어 화려한 규방에서 기다리는 심정을, '추원' 에서는 가을날의 맑고 서늘한 기운을 임에게 보내어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는 심정을, '동원' 에서는 홀로 자는 차가운 침상에서 임을 생각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결사 :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는 임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서라도 임에게 옮기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 부분에는 신하의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충정이 담겨 있다.

3. 이 작품에서 '淸光(청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루)의 븟티고져.' 라는 표현이나, '陽春(양춘)을 부쳐 내여 님겨신 데 쏘이고져.' 와 같은 표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자연물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관적으로 변용한 독특한 표현이다. 이러한 구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에 내재된 독특한 발상과 표현을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조와 가사의 독특한 표현 방법과 발상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정되었다. 시조의 표현을 통해 원래 말하고자 한 내용을 추출해 내고 다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살펴보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가) 시조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나) 는 기나긴 겨울밤을 홀로 지내는 고독한 시간을 줄이고 싶은 작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

예시답안 :

(가) 시조의 시적 화자는 봄바람을 빌어다가 귀 밑의 백발을 녹이겠다고 한다. 이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인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물을 부리며, 늙어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시조의 시적 화자는 외로운 시간을 넣었다가 임 오신 밤에 구비구비 펴겠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추상물을 마치 이불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로 변형시켜 접었다 펴고 있다는 참신한 발상의 소산이다.

(다) 시조의 초장에서 전원에 남은 흥을 전나귀에 모두 싣는다는 표현이 참신한 발상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과 관련 작품들

 정철의 〈사미인곡〉은 〈속미인곡〉을 낳았으며, 그후 이를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형식을 지닌 일련의 가사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은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본받아 임금에 대한 충성을, 임을 향한 여인의 정조와 그리움의 방식을 빌려 고백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고전문학사에서 임금을 사랑하는 대상으로서의 임에 비유하는 문학적 관습을 자리잡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노래에 대해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제갈공명의 〈출사표 出師表〉에 비길 만한 작품이며, 악보(樂譜)의 절조(絶調)"라고 평했고,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중국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 離騷〉에 비길 만한 것으로, 자고로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이 셋뿐이다"라고 극찬했다. 이수광(李光)은 〈지봉유설 芝峰類說〉에서 "우리나라 노래 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해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했다"라고 평했다. 충신이었던 굴원의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해 지었다고는 하나, 한 구절도 인용한 것이 없고 오히려 그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다. 국문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송강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난 4년간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연모하는 연군지사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실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사모하는 신하의 정성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의 내용이 춘, 하, 추, 동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두고 있어서, 모두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외로운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경시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준 작품으로서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제목인 '사미인(思美人)'은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제 9장의 '사미인'과 같다. 그래서 임금께 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어 죽어서도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소의 충군적 내용에다, 송강 자신의 처지를 맞추어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문학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고려 때의 '정과정'과 조선 성종 때의 조위(曺偉)의 유배가사 '만분가(萬憤歌)'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의 아작(亞作)이 아니라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지만, 송강의 작품에서는 권력지향적인 느낌이 강하게 스며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치 체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의 작품의 한계성을 본다는 것이 오늘날의 시각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1

 '사미인곡'은 송강 정철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나 4년간 전남 담양 창평에서 은거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이다.

 창작 배경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충정을 하소연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자신을 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로, 임금(선조)을 임으로 설정하고 네 계절의 경물을 완상하는 가운데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전체는 서사, 본사, 결사로 구성되고,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그리면서 그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연군의 정을 엮어 낸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임이 나를 모르더라도 나는 임을 따르겠다는 결사는 한 여인의 절절한 애정의 표현이자 신하로서의 일편단심의 충정을 함축하고 있다. 뛰어난 우리말 구사의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사랑하는 임으로 설정하는 방식은 고려 속요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시리',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대한 평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도 역시 송강이 지은 것이다. 이것은 시경에 있는 미인이라는 두 글자를 따 가지고 세상을 걱정하고 임금을 사모하는 뜻을 붙였으니, 이것은 옛날 초나라에 있었던 '백설곡'만이나 하다고 할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은 역시 송강이 지은 것으로, 앞의 노래가 다하지 못한 말을 다시 펴서 꾸밈이 더욱 공교하고 뜻이 더욱 간절하여 가치 제갈공명의 '출사표'와 맞먹는다. -
홍만종의 '순오지'에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 미인곡은 우리나라의 '이소'이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뿐인데, 다시 이 세 편에 대하여 논할 것같으면 그 중에서 속미인곡이 더욱 뛰어났다.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은 오히려 한자음을 빌어서 그 가사 내용을 꾸민 데 지나지 않는다. - 김만중의 서포만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우리나라 노래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하여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하였다.
-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정철 가사의 문체적 특징과 문학사적 의미

  '송강가사' 는 가사사(歌辭史)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작품일 뿐더러 문학성의 측면에서도 우뚝 솟은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그 까닭은, 거듭 말하거니와,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의식의 단초를 그에 걸맞는 언어로써 드러내고자 한 송강가사의 문체에 있다고 볼 것이다.

  송강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서 다양하게 대화의 전개 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이것은 '훈민가'에서 송강이 강원도 백성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백성 A가 백성 B에게 전언하는 형식을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볼 때 송강가사의 미적 원천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대화의 다양한 층위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송강가사의 문제는 문어체 소설과 대비하여 보면, '판소리 서사체에서는, 흔히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언어(내적 분석)로부터 인물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내적 언어(독백)로의 전치(轉置)를 유도하는 예의 인용투어를 생략하거나 탈락시켜 버림으로써, 서술과 독백의 경계 없이 양자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양상은 초기의 가사에서 이미 보여진 바였다. 민요와 사대부 문학의 결합이라는 가사의 특성상 구어체와 문어체의 혼용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16세기의 가사들에서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는 반면, 송강가사에서는 문학적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언어 실험의 시도로 나타났다. '서술자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숨기도 해서, 서술자의 목소리와 시점, 인물의 목소리와 시점이 다양하게 조합됨으로써 상호침투 내지 공존' 하는 현상은 실로 송강가사의 문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6세기는 주자학이라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에 보였던 과도기적 경향도 그러한 거시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송강이 가졌던 상대주의적 의식도 주자주의의 틀 속에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송강가사의 문체 또한 완전한 의미의 대화체로 보기는 어렵다. 송강가사의 후기의 기행가사인 '연행가' 나 '일동장유가'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의한 의식이나 경험의 세계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를 토대로 송강가사가 전기가사의 최고봉이면서 그 마지막에 놓인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가사사적 전망을 세워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발생기의 가사가 민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사대부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상승하는 계급으로서의 사대부가 민중의 언어를 포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사가 서정성을 띤 이유도 마찬가지로 이제 상승을 끝낸 사대부들이 그들의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송강가사에서 보이는 언어 현상은, 지배계급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모순이 쌓여 가는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민중의 언어가 스며든 것인 셈이다.

  송강가사의 문체가 보여 주는 특성들은 궁극적으로 개화기의 대화체가사에서 드러나는 언술적 특성의 단초가 되었다. 대화체가사의 서사화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고 후기가사의 서사화는 '누항사'가 그 선편을 쥐고 있었던 바, 서사화의 가능성은 원칙적으로는 가사의 언술적 특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송강가사의 언어 실험이 그 매개항이 되기 때문이다. 송강가사는 이른바 사대부가사의 백미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누항사' 에서 비롯되는 후기가사의 서사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송강가사는 전기가사의 마지막이면서 최고봉인 동시에 사대부가사 자체의 원리는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출처 : 조세형, '송강 가사의 이해와 감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

사미인곡 

1588년(선조 21)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6구이다. 음수율에서는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 3·3조, 4·4조, 5·5조, 5·3조 등도 나타난다. 송강집 松江集≫·≪송강가사 松江歌辭≫·≪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한다.
작자는 50세되던 1585년 8월에 당파싸움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평(昌平)에 은거한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이 사미인곡이다. 고신연주(孤臣戀主)의 지극한 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구성은 서사(緖詞)·춘원(春怨)·하원(夏怨)·추원(秋怨)·동원(冬怨)·결사(結詞) 등의 6단락으로 짜여져 있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하였다.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고 싶으나 임금의 심정 또한 어떤 것인지 의구하는 뜻을 읊었다.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 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함을 노래하였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 중에서 청광(淸光)을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였다.
동원에서는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읊었다.
사미인곡 작품 전체가 한 여성의 독백으로 되어 있고, 여성적인 행위·정조(情調)·어투·어감 등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맞는 소재를 빌려 작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 또한 비범한 것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그래서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사미인곡을 가리켜 가히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하다(可與孔明出師表爲佰仲着也).라고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그의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사미인곡의 속편이라고 한 속미인곡 續美人曲, 관동별곡 關東別曲과 함께 동방의 이소요, 자고로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3편뿐이다(松江先生 鄭文淸公 關東別曲 前後思美人歌 乃我東之離騷……自古左海眞文章 只此三編).라고 대단히 칭찬하였다.
동국악보 東國樂譜에서는 사미인곡에 대해 영중의 백설(中之白雪)이라고 하였다. 사미인곡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중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다.
내용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많기는 하나 한 구절의 인용도 없고 오히려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서
사미인을 능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후대에 이르러 사미인곡을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들이 나타나게 된다.
정철의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이 모두 사미인곡의 영향에 의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정철의 전후사미인곡과 같이 충군(忠君)의 지극한 정을 읊은 것으로 정철의 작품을 모방하여 지어진 것이다. 한역시로는 김상숙(金相肅)이 소체(騷體)로 번역한 것이
이병기(李秉岐) 소장의 사미인곡첩에 전하고 있고, 성연경재(成硏經齋)의 오언시인 사미인곡역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松江集, 松江歌辭, 松江別集, 追錄遺詞, 北軒集, 鄭松江硏究(金思燁, 啓學社, 1950), 松江의 前後思美人曲硏究(徐首生, 경북대학교논문집 6, 1962), 曲攷(林瑩澤, 낙산어문, 서울대학교, 1966), 思美人曲 歌辭의 比較硏究(徐元燮, 경북대학교논문집 11, 1967).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정철(鄭澈)

 1536년(중종 31)∼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서울 장의동(藏義洞 :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 아버지는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이다.
어려서 인종의
숙의(淑儀)인 누이와 계림군 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막내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인종 1·명종 즉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定平)으로, 맏형 자(滋)는 광양(光壤)으로 유배당하였다. 곧이어 아버지만 유배가 풀렸다.
12세 되던 1547년(명종 2) 양재역 벽서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을사사화의 여파로 아버지는 경상도
영일(迎日)로 유배되었고, 맏형은 이 때 장류(杖流) 도중에 32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이 시기 정철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 생활을 하였다.
1551년 원자(元子) 탄생의 은사(恩赦)로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양응정(梁應鼎)·김인후(金麟厚)·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다. 또, 이이(李珥성혼(成渾송익필(宋翼弼) 같은 큰 선비들과도 사귀었다.
17세에 문화유씨(文化柳氏) 강항(强項)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25세 때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노래는 성산(별뫼) 기슭에 김성원이 구축한 서하당(棲霞堂)과
식영정(息影亭)을 배경으로 한 사시(四時)의 경물과 서하당 주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고, 이듬해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성균관 전적 겸 지제교를 거쳐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 이어 좌랑·현감·도사를 지내다가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함경도암행어사를 지낸 뒤, 32세 때 이이(李珥)와 함께
호당(湖堂)에 선출되었다. 이어 수찬·좌랑·종사관·교리·전라도암행어사를 지내다가 35세 때 부친상을, 38세 때 모친상을 당하여 경기도 고양군 신원(新院)에서 각각 2년여에 걸쳐 시묘살이를 하였다.
40세인 1575년(선조 8) 시묘살이 복을 벗고 벼슬길에 나아가 직제학 성균관 사성,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 무렵 본격화된 동서분당에 따른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벼슬을 버리고 담양 창평으로 돌아갔다. 창평 우거시에 선조로부터 몇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43세 때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승진하여 조정에 나아갔다. 그 해 11월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나 진도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반대파인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1580년 45세 때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관동별곡〉과 〈훈민가 訓民歌〉 16수를 지어 시조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발휘하였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도승지·예조참판·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48세 때 예조판서로 승진하고 이듬 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1585)에 사직, 고향인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생활을 하였다. 이 때 〈사미인곡〉·〈속미인곡〉 등의 가사와 시조·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었다.
54세 때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최영경(崔永慶)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였다.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고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에 봉해졌다.
56세 때 왕세자 책립문제인
건저문제(建儲問題)가 일어나 동인파의 거두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와 함께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기로 했다가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혼자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였다.
이에
신성군(信城君)을 책봉하려던 왕의 노여움을 사서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졌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는 논척을 받고 파직되었다.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주(晋州)로 옮기라는 명이 내린 지 사흘 만에 또다시 강계(江界)로 이배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1592년(선조 25) 57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양에서 풀려나 평양에서 왕을 맞이하고 의주까지 호종, 왜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체찰사를 지내고 다음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다가 58세로 별세하였다.
작품으로는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등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가 전한다. 시조는 ≪송강별집추록유사 松江別集追錄遺詞≫ 권2에 〈주문답 酒問答〉 3수, 〈훈민가〉 16수, 〈단가잡편 短歌雜篇〉 32수, 〈성은가 聖恩歌〉 2수, 〈속전지연가 俗傳紙鳶歌〉 1수, 〈서하당벽오가 棲霞堂碧梧歌〉 1수, 〈장진주사 將進酒辭〉 등이 실려 있다.
상당히 중복되기는 하나 성주본(星州本)과 이선본(李選本) ≪송강가사 松江歌辭≫에도 많은 창작시조가 실려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체적으로 애군(愛君)·애민(愛民)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다.
이 외에도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하는 인간미 넘치는 작품, 강호 산수의 자연미를 노래한 작품이 있다. 그리고 선취(仙趣)적 기풍과 풍류적 호방함을 담아낸 작품 등 폭넓은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강집≫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가 있다. 전자는 1894년(고종 31)에 간행한 것이 전한다. 후자는 목판본으로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城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의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그 중 관북본은 전하지 않고 나머지도 책의 일부만 전한다.
필사본으로는 ≪송강별집추록유사≫와 ≪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가 있다. 한시를 주로 실은 ≪서하당유고 棲霞堂遺稿≫ 2권 1책도 판각본으로 전한다. 창평의 송강서원, 영일의
오천서원(烏川書院) 별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李朝時代의 歌謠硏究(金思燁, 大洋出版社, 1956), 松江·盧溪·孤山의 詩歌文學(朴晟義, 玄岩社, 1966), 松江鄭澈硏究(金甲起, 二友出版社, 1985), 國譯 松江集(松江遺蹟保存會, 第一文化社, 1988), 松江文學硏究(申庚林·李殷鳳·曺圭益 編著, 國學資料院, 1993), 松江歌辭의 硏究 1∼3(李秉岐, 震檀學報 4·6·7, 1936∼37), 松江의 前後美人曲의 硏究(徐首生, 慶北大學校論文集 6, 1962), 訓民時調硏究(尹星根, 한뫼金永驥先生古稀紀念論叢, 1971), 장르論的 關心과 歌辭의 文學性(金炳國, 현상과 인식, 1977 겨울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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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곡(思美人曲)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 緣分(연분)이며 하 모 일이런가. 나 나 졈어 잇고 님 나 날 괴시니, 이 음 이 랑 견졸  노여 업다. 平生(평)애 願(원)요  녜쟈 얏더니, 늙기야 므 일로 외오 두고 글이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그더 엇디야 下界(하계)예 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연지粉(연지분) 잇마 눌 위야 고이 고. 음의 친 실음 疊疊(텹텹)이 혀 이셔, 짓니 한숨이오 디니 눈믈이라. 人生(인)은 有限(유) 시도 그지업다. 無心(무심) 歲月(셰월)은 물 흐 고야. 炎凉(염냥)이  아라 가 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東 風(동풍)이 건듯 부러 積雪(젹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득 冷淡(담) 暗香(암향)은 므 일고. 黃昏(황혼)의 이 조차 벼마 빗최니, 늣기  반기 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화) 것거 내여 님겨신  보내오져, 님이 너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 디고 새닙 나니 綠陰(녹음)이 렷, 羅緯(나위) 寂寞(젹막)고, 繡幕(슈막)이 뷔여 잇다. 芙蓉(부용)을 거더 노코, 孔雀(공쟉)을 둘러 두니, 득 시 한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鴦錦(원앙금) 버혀 노코 五色線(오션) 플텨 내여, 금자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手品(슈품)은니와 制度(제도)도 시고. 珊瑚樹(산호슈) 지게 우 白玉函(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 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里 萬里(천리 만리) 길흘 뉘라셔 자 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 밤 서리김의 기러기 울어 녤 제, 危樓(위루)에 혼자 올나 水晶簾(슈졍념)을 거든말이, 東山(동산)에 이 나고, 北極(븍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光(쳥광)을 쥐여 내여 鳳凰樓(봉황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 거러 두고, 八荒(팔황)의 다 비최여, 深山窮谷(심산궁곡) 졈낫티 그쇼셔.

乾 坤(건곤)이 閉塞(폐)야 白雪(셜)이  빗친 제, 사은니와 새도 긋쳐 잇다.瀟湘南畔(쇼샹남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樓高處(옥누고쳐)야 더옥 닐러 므리. 陽春(양츈)을 부처 내여 님 겨신  쏘이고져. 茅詹(모쳠) 비쵠  玉樓(옥누)의 올리고져. 紅裳(홍샹)을 니믜 고 翠袖(슈) 半(반)만 거더, 日暮脩竹(일모슈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 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燈(쳥등) 거른 겻 鈿공후(뎐공후) 노하 두고,의나 님을 보려  밧고 비겨시니, 鴦衾(앙금)도 도 샤 이 밤은 언제 샐고.

 도 열두   도 셜흔 날, 져근덧 각마라, 이 시 닛쟈니, 의 쳐 이셔 骨髓(골슈)의 텨시니, 扁鵲(편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탓이로다. 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애로 님의 오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셔도 내 님 조려 노라. <星州本 松江歌辭>


이 몸 태어날 때 임을 따라서 태어나니

한평생 연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 오직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전혀 없다.

평생에 원하기를 함께 살려 하였더니

늙어서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사이 어찌하여 하계에 내려 오니

내려 올때 빗은 머리 얽힌 지 삼년이라.

연지분 있지마는 누굴 위하여 곱게 단장할까.

마음에 맺힌 시름 첩첩히 쌓여 있어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근심은 한이 없다.

무시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염량이 때를 알아 가는 듯 다시 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동풍이 문득 불어 적설을 헤쳐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차가운데, 암향은 무슨 일이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흐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데 보내고자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까 ?

 

성격 - 서정적, 주정적, 연모적

주제 - 연군의 정,(충신연주지사)

          ※ 작자 및 연대 : 송강 정철.선조 21(1588년 경)

표현

  가. 점층적 표현…나위 적막하고 슈막이 뷔어 잇다.

      전공후 → 꿈 → 앙금 → 긴 밤 (외로움이 점층적으로 표현됨)

  나. 비유법, 변화법

  다. 시상의 급격한 반전, 중국의 한시를 작품 속에 적절하게 용해시키는 능력,

       자연의 변화에 즉응(卽應)하는 정서의 흐름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어조 - 여성 화자의 애절한 목소리

 

의의 

    ① 가사문학의 백미(속미인곡과 더불어)

    ② 우리말 구사의 극치

    ③ 정과정의 맥을 잇고 있음(여인의 정서에 의탁)

       ※ (속)미인곡에서의 자아 : 여인. 여기서 미인은 남성이거나  군주(君主)임

[출처] 정철 - 사미인곡|작성자 루시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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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6 21:08 sk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首陽山(수양산) 라보며 夷劑(이제) 恨(한) 노라

  : 수양대군을 향해 바라보며, 이제(夷劑)보다 더 굳은 지조를 지녔음을 외치는 표현이다.

    수양산은 산 이름과 수양대군(세조)을 뜻하는 중의법이다.

 

 

주려 주글진들 採薇(채미)도 것가

  採薇(채미) : 고사리를 캠. 고사리를 뜯는 일

  것가 : 하는 것인가. 해서야 되겠는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헤 낫 

    : 고사리 녹을 받지 않겠다던 주나라의 땅에서 난 것이 아니란 말이냐?

      나 같으면 고사리 마저도 캐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지은이의 철저한 절의(節義)의 정신을 보여 준다.

     푸새엣 거 : 산과 들에 절로 나는 풀

 

 

<핵심정리>

● 갈래 : 평시조.

● 작가 : 성삼문(成三問. 1418-1456) 호는 매죽헌(梅竹軒)

             세종 때의 학자. 충신. 사육신의 한 사람. 문집으로 <성근보집>과 시조 2수가 전함.

● 성격 : 지사적. 풍자적. 절의가 

● 표현 : 풍유법. 중의법. 설의법

● 제재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

● 주제 : 굳은 절의와 지조

● 미적범주 : 비장미와 숭고미 (동시에 드러남)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의 상황에서 조와의 상황을 지향 함.

 

<작품해설>

  : 세조의 단종 폐위에 항거한 작자의 의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절의가(節義歌)로, 주(周)나라의 충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자신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굳은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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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어 풀이

    (전강) 내, 님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중강)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합니다

    (후강) (나에 대한 참소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부엽)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입니다

    (대엽) 넋이라도 님과 함께 가고파라 아!

    (부엽) (내 죄를) 우기던 이, 그 누구입니까

    (이엽)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삼엽) 뭇 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사엽) 슬프구나 아!

    (부엽) 님이 나를 벌써 잊으셨나이까

    (오엽) 아! 님이여 내 사연 들으시고 다시 아껴주소서

 

 

   핵심정리

* 연대: 고려 중엽(毅宗 때)

* 작자: 정서(號: 과정)

* 갈래: 향가계 시가(10행이며 낙구 '아소'가 보임)

* 형식: 3단 구성

* 주제: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

* 출전: 악학궤범

* 별칭: 삼진작('진작'은 곡조명)

* 의의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는 3단 구성의 가요.

충신연주지사의 원류

유배 문학의 원류

 한글로 전하는 고려 속요 가운데 작자가 분명한 유일한 작품으로 형태와 내용면에서 향가의 맥을 잇고 있다.

* 출전: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 학연화대처용무합설] [시용향악보]

 

 

   구성

서사 : 고독과 한

본사 : 결백의 주장

결사 : 사랑의 하소연

 

 

   정서(鄭敍: 생존연대 미상)

 고 려 시대 문인. 호는 과정(瓜亭). 동래 사람으로 벼슬은 내시 낭중에 이르렀다. 인종의 매제(妹弟)로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의종 5년(1151)에 참소를 받아 동래로 귀양갔는데, 의종으로부터 곧 소명(召命)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받고 20년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정중부의 난으로 의종이 쫓겨난 후 명종 1년(1170)에야 다시 기용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묵죽화에도 능했다.

 

 

   창작 배경

 정 서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죄명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의종은 "오늘은 어쩔 수 없으나, 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으므로, 정서는 의종에게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약속을 상기시키고자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가사가 극히 처량하다해서 당시에 널리 애송되었다고 한다. 작자는 처음 두 구에서 임(임금)을 그리워하며 울고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망제혼(望帝魂)이 변하여 됐다는 두견새의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자신의 의도를 자연물에 빗대어서 표현함으로써 결백 주장의 객관성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정서가 스스로 호를 과정(瓜亭)이라고 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이 노래를 '정과정'이라 이름했다. 또한 곡조의 이름을 따서 '삼진작(三眞勺)이라고도 한다.

 

 

   해설 1

 이 노래는 고려 의종(毅宗)때의 문인 정서가 귀양지인 동래에서 임금의 소환을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자 지어 부른 작품이다. 자신의 결백함을 밝히고 선처를 청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향찰로 표기되어 전해지는 '향가'는 아니지만 형식면에서 볼 때,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3단 구성이나 11행의 '아소 님하'와 같은 여음구는 모두 향가계 가요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창작 동기와 내용 면에서 10구체 향가인 신충(信忠)의 '원가(怨歌)'와 서로 통한다. 그렇지만 10구체 사뇌가와는 달리 감탄사의 위치가 바뀌고, 내용상의 격조가 떨어지는 등 향가 해체기의 잔영을 보인 작품이다.

 

 이 노래에 나타나는 형식의 동요나 격조 낮은 표현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아 형식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진솔함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자유로움과 진솔함은 곧 고려 속요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향가에서 고려 속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설 2

국 문으로 전하는 고려 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작자가 확실한 노래로 형식은 10구체 단연으로 되어 있으며(제 8행과 9행을 하나로 봄) 10구체 향가에서 발달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민요인 속가의 6구체 형식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보고 무가적 성격을 띤다고 추정하는 이도 있다. 이 노래를 담은 악곡은 속악에서 가장 빠른 템포인 '삼진작'이며 11개 악절로 나뉘어 불렀는데, 가사가 몸시 처완하고 이른바 '충신연주지사'라하여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까지 계속 궁정음악으로 불리어졌다. <악학궤범>에 실려 있으며, <대악후보>에는 그 곡조와 노래가 아울러 전하고 있다. 이 노래를 충신연주지사라 하여 단순한 군신 관계의 노래로만 해석한다면 서정성이 없어지고 목적 문학적이 성격까지 띠게 되어 문학적 가치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여인의 애절한 심경에 비유해서 임금을 그리는 정을 기탁한 노래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 싶다. 이 노래는 미인곡 계통으로 임의 심상의 원류가 되는 작품이다.

 

 

   참고

고려시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향가계 시가로 보는 이유

① 고려가요 특징인 '분장(혹은 분연)'이 안 됨.

② 후렴구가 보이지 않음

③ 10행(곧, 향가의 10구체와 비슷)이며

④ 낙구에 '아소'와 같은 감탄사가 있음.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궁중 음악으로 불림.

 

 형태상의 특징

10구체 향가의 파격적 형태 ( 제 8행과 9행을 한 행으로 보면'4구+4구+2구-끝구에 감탄존재)의 10구체 향가 형식과 같다.

[출처] 정서 - 정과정|작성자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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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가(北遷歌)

 

                                   김진형(金鎭衡)

 

 

 

<북천가>는 김진형이 1853년 6월에 명천(明川)으로 귀양가서 그 행 10월에 풀려 나오기까지 기간 동안에 느낀 심정과 체험한 생활, 경험, 견문 등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울을 떠나 유배지로 갔다가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 체험의 특이성으로서, 또 당시 조선 사회의 정치적 현실의 반영과 그의 뛰어난 시적 형상 등으로 인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연대: 53세 유배시(철종 4년 7월)

내용: 철종 때 김진형이 함경도 명천으로 귀양갔다가 거기서의 생활을 노래한 장편가사이다. 작자가 유배

           된 내력과 배소에 있는 기생들과의 풍류, 기생 군산월과의 연정 등을 노래한 작품이다.

특징: <만언사>와 대조적 생활 

 

 

 

이 작품에서 작자는 당시의 부패한 정계의 현실과 양반 사대부들의 호화방탕한 생활과 사대부들의 도덕적 위선 등을 잘 반영하여 노래하고 있다. 봉건관료로서 별로 고생을 하지 않고 편히 지내며 살아온 과정과 관련하여 당시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비판적 의식은 아주 약하게 드러나고 있으나 작자의 체험에 밑바탕을 둔 사실적 묘사와 서술은 조선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매우 잘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상당히  원숙한 예술적 재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적절한 형용어의 선택, 반복에 의한 강조 등은 작자의 내면 세계와 행동 및 자연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인간이 가지는 희비애락의 감정들을 진실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해 준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은 미약하나 작품의 형상화 면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형(金鎭衡/1801~1865)

 조 선 후기의 문신. 본관 의성. 자 덕수(德錘). 호 겸와(謙窩)·청사(晴蓑).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校理)가 되었다. 53년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이 배공당리(背公黨利)를 꾀한다 하여 탄핵하였으나, 오히려 남종순(南鍾順)에게 몰려 명천(明川)에 귀양갔다. 그때 배소(配所)에서의 생활과 귀양간 내력을 기록한 《북천가(北遷歌)》를 지었다. 다시 풀려나와 56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였다. 64년(고종 1) 시폐(時弊)를 상소하였으며, 상소문 구절 속에 조대비(趙大妃)의 비위를 거슬린 대목이 있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북천가(北遷歌)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슴 들어보소  과거를 하거들랑 청춘에 아니 하고

          오십에 등과하여 백수 홍진 무삼일꼬  공명이 늦으나마 행세나 약바르지

          무단히 내달아서 소인의 적이 되어  부월을 무릅쓰고 천문에 상소하니

          이전으로 보게 되면 빛나고도 옳건마는  요요한 이 세상에 남다른 노릇이라

          소 한 장 오르면서 만조가 울컥한다


세상 사람들아 이 나의 말 좀 들어보시오. 과거를 했지만 젊은 시절에 하지 않고 오십이 되어서야 과거급제하여 늙바탕에 치르는 이 고생이 무슨일인가. 이름을 드높히는데 힘썼던 것이 늦으나마 세도 부리는 것이나 약싹빨라야했는데 마음대로 내달아서 소인배의 적이 되어 중형을 무릅쓰고 임금님께 상소를 올리니 옛날 같았으면 빛나고도 옳은 일이건만 어수선한 이세상에 부질 없는 노릇이라. 상소 한 장 올려서 온 조정이 울컥한다.

 

          어와 황송할사 천위가 진노하사  삭탈관직 하시면서 엄치하고 꾸중하니

          운박한 이 신명이 고원으로 돌아갈새  추풍에 배를 타고 강호로 향하다가

          남수찬 상소 끝에 명천정배 놀랍도다  창망한 행색으로 동문에서 대죄하니

          고향은 적막하고 명천이 이천리라  두루막에 흰 띄 띄고 북천을 향해서니

          사고무친 고독단신 죽는 줄 그 뉘 알리  사람마다 당케 되면 울음이 나련마는

          군은을 갚으리라 쾌함도 쾌할시고  인신이 되었다가 소인의 참소 입어

          엄지를 봉승하여 절역으로 가는 사람  천고에 몇몇이며 아조에 그 뉘런고

          칼짚고 일어서서 술 먹고 노래하니  이천리 적객이라 장부도 다 울시고

          좋은 듯이 말을 하니 명천이 어디맨가

 

어허 분에 넘친다. 임금님께서 크게 노하셔서 관직을 빼앗으시며 엄중히 다스리시고 꾸짖으시니, 운 없는 이 목숨이 고양으로 돌아갈 새 가을 바람에 배를 타고 강호로 향하다가 남수찬(소인)의 상소 끝에 명천으로 귀양가니 놀랍도다. 멍한 모습으로 동문에서 처벌을 기다리니 고향은 고요하고 명천은 이천 리 밖이라. 두루마기에 흰 띄를 매고 북천을 향해서 서니 의지할 만한 데 전혀 없이 죽을 줄 그 누가 알리. 사람이 당하게 되면 울음이 나련만은 나는 임금의 은혜를 갚으리라. 좋기도 좋을시고 충신이 되었다가 소인의 참소를 입어 엄한 지시를 받아 멀리 떨어지는 곳으로 가는 사람은 세상에 몇몇이며 우리 왕조에 그 누가 있으련가.


          더위는 홀로 같고 장마는 극악한데  나장이 뒤에 서고 청노는 앞에 두고

          익경원 내달아서 다락원 잠간 쉬어 축성령 넘어가니 북천이 멀어간다

          슬프다 이내몸이 영주각 신선으로  나날이 책을 끼고 천안을 뫼시다가

          일조에 정을 떼고 천애로 가겠구나  구중을 첨망하니 운연이 아득하고

          종남은 아아하여 몽상에 막연하다  밥 먹으면 길을 가고 잠을 깨면 길을 떠나

          물 건너고 재를 넘어 십리 가고 백리 가니  양주땅 지난 후에 포천읍 길가이고

          철원 지경 밟은 후에 정평읍 건너 보며 금화금성 지난 후는 회양읍 막죽이라

          강원도 북관길이 듣기 보기 같으구라  회양서 중화하고 철령을 향해 가니

          천험한 청산이요 촉도 같은 길이로다

 

          요란한 운무중에 일색이 끝이 난다  남여를 잡아 타고 철령을 넘는구나

          수목이 울밀하여 엎어지락 자빠지락  중허리에 못올라서 황혼이 거의로다

          상상봉 올라서니 초경이 되었구나  일행이 허기져서 기장떡 사먹으니

          떡맛이 이상하여 향기롭고 아름답다  횃불을 신칙하여 화광중에 내려가니

          남북을 몰랐으니 산형을 어이 알리  삼경에 산을 내려 탁막에 잠을 자고

          새벽에 떠나서서 안변읍 어디매뇨  할일 없는 내 신세야 북도적객 되었구나

          함경도는 초면이요 아태조 고토로다

 

          산천이 광활하고 수목이 만야한데  안변읍 들어가니 본관이 나오면서

          포진병장 신칙하고 공식을 공궤하니  시원케 잠을 자고 북향하여 떠나가니

          원산이 여기런가 인가도 굉장하다  바다 소리 요란한데 물화도 장할시고

          덕원읍 중화하고 문천읍 숙소하고  영흥읍 들어가니 웅장하고 가려하다

          태조대왕 태지로서 총총 가거뿐이로다  금수산천 그림 중에 바다 같은 관새로다

          선관이 즉시 나와 위로하고 관대하며  점심상 보낸 후에 채병화연 등대하니

          죄명이 몸에 있어 치하고 환송한 후 고원읍 들어가니 본수령 오공신은

          세의가 자별키로 날 보고 반겨 하네  천대객지 날 반길이 이 어른뿐이로다

          책방에 맞아들여 음식을 공궤하며  위로하고 다정하니 객희를 잊겠구나

          북마 주고 사령 주고 행자 주고 의복 주니  잔읍행세 생각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능신하고 발행하니 운수도 고이하다  갈 길이 몇 천리며 온 길이 몇 천린고

          하늘 같은 저 철령은 향국을 막아 있고  저승같은 귀문관은 올연히 섞였구나

          표풍 같은 이내 몸이 지향이 어디매뇨  초원역 중화하고 함흥 감영 들어가니

          만세교 긴 다리는 십리를 뻗어있고  무변대에 창망하여 대야를 들러 있고

          장강은 도도하여 만고에 흘렀구나  구름 같은 성첩보소 낙빈루 높고 높다

          만인가 저녁연기 추강에 그림이요  서산에 지는 해는 원객이 시름이다

          술 잡고 누에 올라 칼 만지며 노래하니  무심한 뜬 구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유의한 강적 소리 객회를 더쳤세라  사향한 이내 눈물 장강에 던ㅈ 두고

          백청루 내러와서 성내에서 잠을 자니  서울은 팔백리요 명천은 백구리라

          비 맞고 유삼 쓰고 함관령 넘어가니  영태도 높거니와 수목도 더욱 장타

          남여는 날아가고 대로는 설였구나  노변에 섰는 비석 비각단청 요조하다

          태조대왕 소시절에 고려국 장수되어  말갈에 전승하고 공덕이 어제 같다

 

          역말을 갈아 타고 홍원읍 들어가니 무변해색 둘렀는데 읍양이 절묘하다

          중화하고 떠나 서니 평포역 숙소로다  내 온 길 생각하니 처만리 되었구나

          실 같은 목숨이요 거미 같은 근력이라  천천히 길을 가면 살고서 볼 것인데

          엄지를 뫼셨으니 일신들 지체하랴  죽리를 가라진ㅎ고 수화를 불분하니

          만신에 땀이 돋아 성종 지경 되었구나  골수에 든 더위는 자고 새면 설사로다

          나장이 하는 말이 나으리 거동 보소  엄엄하신 기력이요 위태하신 신관이라

          하루만 조리하여 북청읍에 묵사이다  무식하다네 말이야 엄지 중일신이라

          생사를 생각하랴 일시를 유체하랴  사람이 죽고 살기 하늘에 달렸으니

          네 말이 기특하나 가다가 보자꾸나

 

          북청서 유소하고 남송정 돌아드니  무변대해 망망하여 동천이 가이 없다

          만산은 첩첩하여 남향이 아득하다  마곡역 중화하고 마천령 다다르니

          안밖재 육십리라 하늘에 맞닿았고   공중에 걸린 길은 참바같이 설였구나

          달래덤불 얽혔으니 천일이 밤중 같고  층암이 위태하니 머리 위에 떨어질 듯

          하늘인가 땅이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상상봉 올라서니 보이는 게 바다이고

          넓은 것이 바다이다 몇날을 길에 있어  이 재를 넘었던고 이 영을 넘은 후에

          고향 생각 다시 없네 천일만 은근하여  두상에 비췄구나 원평읍 중화하고

          길주읍 들어가니 성곽도 장커니와  여염이 더욱 좋다 비올 바람 일어나니

          떠날 길이 아득하다

 

          읍내서 묵자하니 본관폐 불안하다  원 나오고 책방 오니 초면이 친구 같다

          음식은 먹거니와 포진 기생 불관하다  엄지를 뫼셨으니 꽃자리 불관하고

          죄명을 가졌으니 기생이 호화롭다  운박하온 신명 보면 분상하는 상주로다

          기생을 물리치고 금연을 걷어내니  본관이 하는 말이 영남양반 고집이라

          모우하고 떠나 서니 명천이 육십리라  이 땅을 생각하면 묵특의 고토로다

          황사의 일분토는 왕소군의 천총이요  팔십리 광연못은 소부의 만양도다

          회홍동 이릉뫼는 지금의 원억이요  백용해 때문관은 앞재 같고 뒷뫼 같다

 

          고참역마 잡아타고 배소를 들어가니  인민은 번성하고 성곽은 웅장하다

          여각에 들어앉아 패문을 붙인 후에  맹동원의 집을 물어 본관더러 선하니

          본관 전갈하고 공형이 나오면서  병풍 자리 주물상을 주인으로 대령하고

          육각 소리 앞세우고 주인으로 나와 앉아  처소에 전갈하여 뫼셔오라 전갈하네

          슬프다 내 일이야 꿈에나 들었던가  이곳이 어디매냐 주인의 집 찾아 가니

          높은대문 넓은사랑 삼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서로 인사 다한 후에

          본관이 하는 말이 김교리의 이번 정배  죄없이 오는 줄을 북관 수령 아는 바요

          만인이 울었으니 조금도 슬퍼 말고 나와 함께 노사이다 삼형 기생 다 불러라

          오늘부터 노잣구나 호반의 규모런가  활협도 장하도다 그러나 내 일신이

          귀적한 사람이라 화광빈객 꽃자리에  기락이 무엇이냐


역에서 말을 잡아타고 귀양지에 들어가니 백성들은 번성하고 성곽은 웅장하다. 나그네집에 들어앉아 편지를 부친 후에 맹동원의 집을 물어 본관더러 전하니 본관이 전갈을 하고 공형이 나오면서 병풍 자리에 귀한 음식상을 주인과 육각 소리를 앞세워 오며 처소에 전갈하며 뫼셔오라 하네. 슬프다. 이런 일이 꿈에나 있었던가. 이곳은 어디인가. 주인의 집에 찾아가니 높은 대문과 넓은 사랑채, 삼천석꾼의 집이구나. 본관과 초면이라 서로 인사를 한 후에 본관이 하는 말이 "김교리 이번 유배는 죄 없이 오는 줄 북관의 모든 수령이 아는 바요. 모든이가 울었으니 조금도 슬퍼하지 말고 나와 함께 놉시다. 이쁜 기생 다 불러라."

         

          규문에 퇴송하고 혼자 앉아 소일하니  성내의 선비들이 문풍하고 모여들어

          하나 오고 두셋 오니 육십인 되었구나  책 끼고 청학하니 글제 내고 고쳐지라

          북관에 있는 수령 관장만 보았다가  문관의 풍성 듣고 한사하고 달려드니

          내 일을 생각하면 남 가르칠 공부 없어  아무리 사양한들 모면할 길 전혀 없네

          주야로 끼고 있어 세월이 글이로다  한가하면 풍월 짓고 심심하면 글 외우니

          절세의 고종이라 시주에 회포 붙여 불출문의 하오면서 편케편케 날 보내니

          춘풍에 놀란 꿈이 변산에 서리 온다  남천을 바라보면 기러기 처량하고

          북방을 굽어 보니 오랑캐 지경이라  개가죽 상하착은 상놀들이 다 입었고

          조밥 피밥 기장밥은 기민의 조석이라  본관의 성덕이요 주인의 정성으로

          실 같은 이내 목숨 달반을 걸렸더니  천만의외 가신 오며 명녹이 왔단 말가

          놀랍고 반가워라 미친놈 되었구나  절세에 있던 사람 항간에 돌아온 듯

          나도나도 이럴망정 고향이 있었던가  서봉을 떼어 보니 정찰이 몇 장인고

          폭폭이 친척이요 면면이 가향이라  지면의 자자획획 자질의 눈물이요

          옷 위의 그림 빛은 아내의 눈물이다  소동파 초운인가 양대운우 불쌍하다

          그중에 사람 죽어 돈몰이 되단 말가  명녹이 대코 앉아 눈물로 문답하니

          집떠난지 오래거든 그후 일을 어이 알리  만수천산 멀고먼데 네 어찌 돌아가며

          덤덤히 쌓인 회포 다 이룰 수 없겠구나  녹아 말들어라 무사히 돌아가서

          우리집 사람더러 살았더라 전하여라  죄명이 가벼우니 은명이 쉬우리라

 

          거연히 추석이라 가가이 성묘하네  우리 곳 사람들도 소분을 하나니라

          본관이 하는 말이 이곳의 칠보산은  북관중 명승지라 금강산 다툴지니

          칠보산 한번 가서 방피심산 어떠하뇨  나도 역시 좋거니와 도리에 난처하다

          원지에 쫓인 몸이 형승에 노는 일이  분의에 미안하여 마음에 좋건마는

          못 가기로 작정하니 주인의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악양루 환강경은

          왕등의 사적이요 적병강 제석놀음  구소의 풍정이니 금학사 칠보놀음

          무슨 험 있으리요 그 말을 반겨 듣고  황망히 일어나서 나귀에 술을 싣고

          칠보산 들어가니 구름 같은 천만봉은  화도강산 광경이라 박달령 넘어가서

          금장동 들어가니 곳곳의 물소리는  백옥을 깨쳐 있고 봉봉의 단풍 빛은

          금수장을 둘렀세라 남여를 높이 타고  개심사에 들어가니 원산은 그림이오

          근봉은 물형이라

 

          육십명 선비들이 앞서고 뒤에 서니  풍경도 좋거니와 광경이 더욱 장타

          창망한 지난 회포 개심사에 들어가서  밤 한 경 새운 후에 미경에 일어나서

          소쇄하고 물을 여니 기생들이 앞에 와서  현신하고 하는 말이 본관사도 분부하되

          김교리님 칠보산에 너 없이 놀음 되랴  당신은 사양하되 내 도리에 그럴소냐

          산신도 섭섭하고 원학도 슬프리라  너희들을 송거하니 나으린들 어찌하랴

          부디부디 조심하고 칠보청산 거행하다  사도의 분부 끝에 소녀들이 대령하오

          우습고 부끄럽다 본관의 정성이여  풍류남자 시주객은 남관에 나뿐인데

          신선의 곳에 와서 너를 어찌 보내리오  이왕에 너희들이 칠십리를 등대하니

          풍류남자 방탕성이 매몰하기 어려왜라

 

          방으로 들라하여 이름 묻고 나 물으니  한 년은 매향인데 방년이 십팔이요

          하나는 군산월이 십구세 꽃이로다  화상 불러 음식 하고 노래시켜 들어보니

          매향의 평우조는 운우가 흩어지고  군산월의 해금소리 만학청봉 푸르도다

          지로승 앞세우고 두 기생 옆에 끼고  연화만곡 깊은 곳에 올라가니

          단풍은 비단이요 송성은 거문고라  상상봉 노적봉과 만사암 천불암과

          탁자봉 주작봉은 그림으로 둘러지고  물형으로 높고 높다 아양곡 한 곡조를

          두 기생 불러내니 만산이 더 높으고  단풍이 더 붉도다 옥수로 양금 치니

          송풍인가 물소리가 군사월의 손길 보소  곱고도 고을시고 춘산에 풀손인가

          안동밧골 금랑인가 양금 위에 노는 손이  보드랍고 알스럽다

 

          남녀 타고 전향하여 한 마루 올라가니  아까 보던 산모양이 홀지에 환영하여

          모난 불이 둥그렇고 희던 바위 푸르구나  절벽에 새긴 이름 만조정 물색이라

          산을 안고 들어가니 방선암이 여기로다  기암괴석 첩첩하니 갈수록 황홀할사

          일리를 들어가니 금강굴 이상하다  차아한 높은 굴이 석색창태 새로워라

          연적봉 구경하고 회상대 향하다가  두 기생 간 데 없어 찾느라 골몰터니

          어디서 일성가곡 중천으로 일어나니  놀라서 바라보니 회상대 올라 앉아

          일지단풍 꺽어 쥐고 녹의홍상 고은 몸이  만장암 구름 위에 사람을 놀랠시고

          어와 기절하다 이내몸 이른 곳이  신선의 지경이라

 

          평생의 연분으로 천조에 득죄하여  바람에 부친듯이 이 광경 보겠구나

          연적봉 지난 후에 이 선녀를 따라가서  연화봉 저 바위는 청천에 솟아일고

          배바위 채석봉은 면전에 버려있고  생활봉 보살봉은 신선의 굴혈이라

          매향은 술을 들고 만장운 한 곡조에  군월산 앉은 거동 아주 분명 꽃이로다

          오동 목판 거문고에 금사로 줄을 매워  대쪽으로 타는 양이 거동도 곱거니와

          섬섬한 손길 끝에 오색이 영롱하다  네 거동 보고나니 군명이 엄하여도

          반할 번 하겠구나 영웅절사 없단 말은  사책에 있느니라 내 마음 단단하나

          내게야 큰 말하랴 본 것은 큰 병이요  안본 것이 약이던가 이천리 절세중에

          단정히 몸가지고 기적을 잘한 것이  아주 무두 네 덕이라 양금을 파한 후에

          절집에 내려오니 산중의 찬물 소리  정결하고 향기 있다 이튿날 돌아오니

          회상대 높던 일이 저승인가 몽중인가  국은인가 천은인가 천애에 이 행객이

          이럴 줄 알았더냐 흥진하고 돌아와서  수노불러 분부하되 칠보산 유산시는

          본관이 보내기로 기생을 다렸으나  돌아와 생각하니 호화한중 불안하다

          다시는 지휘하여 기생이 못 오리라  선비만 다리고서 심중에 기록하니

          청산이 그림되어 술잔에 떨어지고  녹수는 길이 되어 종이 위에 단청이라

          군산월 녹의홍장 깨고나니 꿈이로다  일월이 언제던고 구월구일 오늘이라

          광한림 이적선은 용산에 높이 쉬고  조선의 김학사는 재덕산에 올랐구나

          백주향화 앞에 놓고 남향을 상상하니  북병산 단풍경은 김학사 차지요

          이하의 황국화는 주인이 없었구나

 

          파리한 늙은 아내 술을 들고 슬프던가  추월이 낮 같으니 조운의 회포로다

          칠보산 반한 놈이 소무굴 보려하고  팔십리 경성땅에 구경차로 길을 떠나

          창연히 들어가니 북해상 대택중에  한가하고 외로워라 추강은 가 없는데

          갈 꽃은 슬프도다 창파는 망망하여  회색을 연하였고 낙엽은 분분하여

          청공에 나렸구나 충신의 높은 자취  어디가서 찾아보랴 어와 거룩할사

          소중량 거룩할사 나도 또한 이럴망정  주상님 멀리 떠나 절역에 몸을 던져

          회포도 슬프더니 오늘날 이 섬위에  정성이 같았구나 낙일에 칼을 잡고

          후리쳐 돌아서니 병산의 풍설중에  촉도 같은 길이로다 귀문관 돌아서니

          음침하고 고이하다  삼척을 드러서니 일신이 송구하다

          노방에 일분토는 왕소군의 천총인가  처량한 어린 혼이 백야에 슬프도다

          춘풍에 한을 먹고 홍엽을 울렸구나  쟁쟁한 환패 소리 월야에 우느니라

          술 한 잔 가뜩 부어 방혼을 위로하고  유정으로 들어가니 명천읍이 십리로다

 

          탄막에 들렀다가 경방자 달려드니  무슨 기별 왔다던고 방환 기별 나렸도다

          천은이 망극하여 눈물이 망망하다  문적을 손에 쥐고 남향하여 백배하니

          동행의 거동 보소 치하하고 거록하다  식전에 말을 달려 주인을 찾아가니

          만실이 경사로다 광경이 그지없다  죄명이 없었으니 평인이 되었구나

          천은을 덮어쓰고 양계를 다시 보니  삼천리 고향 땅이 지척이 아니런가

          행장을 재촉할 제 군산월이 대령한다  선연한 거동으로 웃으면서 치하하네

          나으리 해배하니 작히작히 감축할가  칠보산 우리 인연 춘몽이 아득하다

          이날에 너를 보니 그것도 군은인가  그렸다가 만난 정이 맛 나고도 향기롭다


탄막에 들렀다가 사환이 달려드니 무슨 기별이 왔다는 것인가. 돌아오라는 기별이 내려졌도다. 임금의 은혜가 한이 없어 눈물이 흘러넘친다. 문적(교지따위)을 손에 쥐고 남쪽으로 향하여 백번 절하니, 동행들의 거동을 보소. 축하하고 거룩하다. 식전에 말을 달려 본관을 찾아가니 모든 사람들이 경사로다 광경이 그지 없다. 죄명이 없었으니 평범한 사람이 되었구나. 임금의 은혜를 입고 양계를 다시보니 삼천 리 밖에 있던 고향 땅이 이제 바로 코앞이 아닌가. 행장 꾸리는 것을 재촉할 때 군산월이 대령하였다. 선연한 거동으로 웃으면서 축하하네. "나으리 귀양을 풀어주니 오죽 축하드리겠습니까"

 

          본관의 거동 보소 삼현육각 거느리고  이곳을 나오면서 치하하고 손 잡으며

          김교린가 김학산가 성군의 은택인가  나도 이리 감축커든 임자야 오죽할까

          홍문 교리 정든 사람 일시라 전케하랴  지금으로 제안하고 그 길로 나왔노라

          이다지 생각하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군산월을 다시 보니 새 사람 되었구나

          형극중에 씻긴 난초 옥분에 옮겼구나  진애의 야광주가 박물군자 만났구나

          신풍에 뭍힌 칼이 뉘를 보고 나왔더냐  꽃다운 어린 자질 임자를 만났구나

          금병화촉 깊은 밤에 광풍제월 닭 밝은 날  글 지으며 화답하고 술 가지면 동배하니

          정분도 깊거니와 호사도 그지없다  시월에 말을 타고 고향을 찾아 가니

          본관의 성덕 보소 남복 짓고 종 보내며  이백량 횡재 내어 저 하나 따라주며

          거행에 하는 말이 뫼시고 잘 가거라  나으리 유경시에 네게야 내외할까

          천리강산 대로중에 김학사 꽃이 되어  비위를 맞추면서 좋게좋게 잘 가거라

          승교를 앞세우고 풍류남자 뒤 따르니  오던 길 넓고 넓어 귀흥이 그지 없다

          길주읍 들어가니 본관의 거행 보소 금연화촉 넓은 방에 기락이 가득하다

          군산월이 하나이다 풍정이 가득하다  연연한 군산월이 금상첨화 되었구나

          신조에 발행하여 익병에 중화하고  창해는 망망하여 동천에 그지없고

          병산은 중중하여 면면이 섭섭도다

 

          추풍에 채를 들고 성진을 들어가니  북병사 마주 나와 두 군관 합석하니

          상읍관가 군병이오 길주 관청 홍안이라  금촉이 영롱한데 병사의 호강이라

          북관이 하는 말이 학사에 다린 사람  얼굴이 기이하다 서울겐가 북도겐가

          청직인가 방자인가 이름은 무엇이며   나는 지금 몇 살인고 손 보고 눈대보니

          남중일색 처음보네 웃으며 대답하되  봉도 아이 데려다가 밤중에 옮긴 후에

          장가들어 살리겠소 종적을 감추우고  풍악중에 앉았으니 병사가 취한 후에

          소리를 크게 하되 김교리 청직이야  내곁에 이리 오라 위령을 못하여서

          공손히 나아드니 손내 어라 다시 보자  어찌 그리 기이한고 총모피 털토시에

          옥수를 반만 내어 덥석 드리 쥐라할제  빼치고 일어서니 계집의 좁은 소견

          미련코 매몰하다

 

          사나이 모양으로 손달라면 손을 주고  흔연하고 천연하면 위여위여 하련마는

          가뜩이 수상하여 치보고 내려보고  군관이나 기생이나 면면이 보던 차에

          매몰이 빼치는 양 제 버릇 없을소냐  병사가 눈치 알고 몰랐노라 몰랐노라

          김학사의 아내신 줄 내 정영 몰랐구나   만당이 대소하고 뭇 기생이 달려드니

          아까 섰던 남자몸이 계집통정 하겠구나  양색단 두루막이 옥판 달아 애암쓰고

          꽃밭에 섞여 앉아 노래를 받아 주니  청강의 옥동인가 화원의 범나비냐

 

          닭 울며 일출 구경 망양정 올라가니  금촉에 꽃이 피고 옥호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동해를 건너보니  일색이 오르면서 당홍바다 되는구나

          부상은 지척이오 일광은 술회로다  대풍악 잡아 쥐고 태산을 굽어 보니

          부유 같은 이 내 몸이 성은도 망극하다  북관을 몰랐더면 군산월이 어찌 올까

          병사를 이별하고 마천령 넘어간다  구름 위에 길을 두고 남여로 올라가니

          군산월이 앞세우고 안전에 꽃이 피고  군산월이 뒤세우면 후면에 선동이라

          단천에 중화하고 북청읍 숙소하니  반야에 깊은 정은 금석 같은 언약이오

          태산 같은 인정이라 홍원에 중화하고  영흥읍에 숙소하니 본관이 나와 보고

          밥 보내고 관대하네 고을도 크거니와  기악도 끔찍하다 대풍악 파한 후에

          행절이만 잡아두니 행절이 거동보소  곱고도 고울시고 청수부용 평신이오

          운우양대 태도로다

 

          효두에 발행하여 고원을 들어가니  주수의 반기는 양 내달아 손 잡으며

          경사를 만났구나 문천에 중화하고  원산장터 숙소하니 명천이 천여리요

          서울이 육백리라 주막집 깊은 밤에  밤한경 새운 후에 계명시에 소쇄하고

          군산월을 깨워내니 몽롱한 해당화가  이슬에 휘젖는 듯 괴코도 아름답다

          유정하고 무정하다 옛일을 이를 게니  네 잠간 들어봐라 이전에 장대장이

          제주목사 과만 후에 정들었던 수청기생  버리고 나왔더니 바다를 건는 후에

          차마 잊지 못하여서 배 잡고 다시 가서  기생을 불러내어 비수 빼어 버린 후에

          돌아와 대장 되고 만고명인 되었으니  나 본래 문관이라 무변과 다르기로

          너를 도로 보내는 게 이것이 비수로다  내 본래 영남 있어 선비의 졸한 몸이

          이천리 기생 싣고 천고에 없는 호강  끝나게 하였으니 협기하고 서울 가면

          분의에 황송하고 모양이 고약하다  부디부디 잘 가거라 다시 볼 날 있으리라

 

          군산월이 거동보소 깜짝이 놀라면서  원망으로 하는 말이 버릴 심사 계셨으면

          중간에 못하여서 어린 사람 호려다가  사무친척 외론 곳에 게발물어 던지시니

          이런 일도 하나있가 나으리 성덕으로  사랑이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키로

          풍전낙화 되었구나 오냐 오냐 나의 뜻은 그렇지 아니하여 십리만 가잤더니

          천리나 되었구나 저도 부모 있는 고로  원리한 심회로서 웃으며 그리 하오

          눈물로 그리 하오 효색은 은은하고 추강은 명랑한데 홍상에 눈물 나려

          학사두발 희겠구나 승교에 담아내어  저 먼저 회송하니 천고에 악한 놈

          나 하나 뿐이로다 말 타고 돌아서니  이목에 삼삼하다 남자의 간장인들

          인정이 없을소냐 이천리 장풍유를  일조에 놓쳤구나 풍정도 잠간이라

          흥진비래 되었구나

 

          안변원이 하는 말이 어찌 그리 무정하오  판관사도 무섭던가 남의 눈이 무섭던가

          장부의 헛된 간장 상하기 쉬우리라  내 기생 봉선이를 남복시켜 앞세우고

          철령까지 동행하여 회포를 잊게 하소  봉선이를 불러드려 따라가라 분부하니

          자색이 옥골이라 군산월이 고은 모양  심중에 깊었으니 새낯보고 잊을소냐

          풍설이 아득한데 북천을 다시 보니 춘풍에 아는 꽃이 진흙에 구르다가

          추천의 외기러기 짝없이 가는 이라  철령을 넘을 적에 봉선이를 하직하고

          에꾸즌 이 내 몸이 하는 것이 이별이라  조히 있고 잘 가거라 다시 어찌 못 만나랴

          남여로 내 넘으니 북도산천 끝이 난다  서름도 지나가고 인정도 끝이 나고

          풍류는 끝이나고 남은 것이 귀흥이라  회양에 중화하고 금화 금성 지난 후에

          영평읍 들어가서 철원을 밟은 후에  포천읍 숙소하고 왕성이 어디매뇨

          귀흥이 도도하다

 

          갈 적에 녹음방초 올 적에 풍설이오  갈 적에 백의러니 올 적에 청포로다

          적객이 어제러니 영주학사 오늘이야  술 먹고 마릉ㄹ 타고 풍월도 절로 나고

          산 넘고 물 건너며 노래로 예 왔구나  만사여생 이 몸이오 천고호걸 이 몸이라

          축성령 넘어가니 삼각산 반가와라  중천에 솟았으니 귀흥이 높아 있고

          만수에 상화 피니 설상이 춘광이라  삼각에 재배하고 다락원 들어가니

          관주인 마주 나와 우름으로 반길시고  동대문 들어가니 성상님이 무강할사

 

          행장을 다시 차려 고향으로 가올 적에  새재를 넘어서니 영남이 여기로다

          오천서 밤 새우고 가산에 들어오니  일촌이 무양하여 이전 있던 행각이라

          어린 것들 반갑구나 이끌고 안에 드니  애쓰던 늙은 아내 부끄러워 하는구나

          어여쁠사 수득 어미 군산월이 네 왔더냐  박잔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삼천리 남북풍장 일장춘몽 깨었구나  어와 김학사야 그릇타 한을 마라

          남자의 천고사업 다하고 왔느니라  강호에 편케 누워 태평에 놀게 되면

          무슨 한이 또 있으며 구할 일이 없으리라  글지어 기록하니 불러들 보신 후에

          후세에 남자되야 남자를 부려말고  이 내 노릇 하게되면 그아니 상쾌할가

[출처] 북천가 - 김진형|작성자 ksm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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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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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가(北遷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과거를 하거들랑 청춘에 아니 하고  오십에 등과하여 백수 홍진 무삼일꼬  공명이 늦으나마 행세나 약바르지 무단히 내달아서 소인의 적이 되어  부월을 무릅쓰고 천문에 상소하니 이전으로 보게 되면 빛나고도 옳건마는  요요한 이 세상에 남다른 노릇이라 소 한 장 오르면서 만조가 울컥한다.

 어 와 황송할사 천위가 진노하사  삭탈관직 하시면서 엄치하고 꾸중하니 운박한 이 신명이 고원으로 돌아갈새  추풍에 배를 타고 강호로 향하다가 남수찬 상소 끝에 명천정배 놀랍도다  창망한 행색으로 동문에서 대죄하니 고향은 적막하고 명천이 이 천리라  두루막에 흰 띠 띄고 북천을 향해서니 사고무친 고독단신 죽는 줄 그 뉘 알리  사람마다 당케 되면 울음이 나련마는 군은을 갚으리라 쾌함도 쾌할시고  인신이 되었다가 소인의 참소 입어  엄지를 봉승하여 절역으로 가는 사람  천고에 몇몇이며 아조에 그 뉘런고 칼짚고 일어서서 술 먹고 노래하니  이 천리 적객이라 장부도 다 울시고  좋은 듯이 말을 하니 명천이 어디맨가.

 

 더 위는 홀로 같고 장마는 극악한데  나장이 뒤에 서고 청노는 앞에 두고 익경원 내달아서 다락원 잠간 쉬어 축성령 넘어가니 북천이 멀어간다. 슬프다 이내몸이 영주각 신선으로  나날이 책을 끼고 천안을 뫼시다가 일조에 정을 떼고 천애로 가겠구나  구중을 첨망하니 운연이 아득하고 종남은 아아하여 몽상에 막연하다  밥 먹으면 길을 가고 잠을 깨면 길을 떠나 물 건너고 재를 넘어 십리 가고 백리 가니  양주땅 지난 후에 포천읍 길가이고  철원 지경 밟은 후에 정평읍 건너 보며 금화금성 지난 후는 회양읍 막죽이라 강원도 북관길이 듣기 보기 같으구라  회양서 중화하고 철령을 향해 가니  천험한 청산이요 촉도 같은 길이로다.

 

 요 란한 운무중에 일색이 끝이 난다  남여를 잡아 타고 철령을 넘는구나  수목이 울밀하여 엎어지락 자빠지락  중허리에 못올라서 황혼이 거의로다  상상봉 올라서니 초경이 되었구나  일행이 허기져서 기장떡 사먹으니 떡맛이 이상하여 향기롭고 아름답다  횃불을 신칙하여 화광중에 내려가니 남북을 몰랐으니 산형을 어이 알리  삼경에 산을 내려 탁막에 잠을 자고 새벽에 떠나서서 안변읍 어디매뇨  할일 없는 내 신세야 북도적객 되었구나  함경도는 초면이요 아태조 고토로다

 

 산 천이 광활하고 수목이 만야한데  안변읍 들어가니 본관이 나오면서 포진병장 신칙하고 공식을 공궤하니  시원케 잠을 자고 북향하여 떠나가니  원산이 여기런가 인가도 굉장하다  바다 소리 요란한데 물화도 장할시고  덕원읍 중화하고 문천읍 숙소하고  영흥읍 들어가니 웅장하고 가려하다  태조대왕 태지로서 총총 가거뿐이로다  금수산천 그림 중에 바다 같은 관새로다  선관이 즉시 나와 위로하고 관대하며  점심상 보낸 후에 채병화연 등대하니 죄명이 몸에 있어 치하고 환송한 후 고원읍 들어가니 본수령 오공신은  세의가 자별키로 날 보고 반겨 하네  천대객지 날 반길이 이 어른뿐이로다  책방에 맞아들여 음식을 공궤하며  위로하고 다정하니 객희를 잊겠구나 북마 주고 사령 주고 행자 주고 의복 주니  잔읍행세 생각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능 신하고 발행하니 운수도 고이하다  갈 길이 몇 천리며 온 길이 몇 천린고  하늘 같은 저 철령은 향국을 막아 있고  저승같은 귀문관은 올연히 섞였구나  표풍 같은 이내 몸이 지향이 어디매뇨  초원역 중화하고 함흥 감영 들어가니  만세교 긴 다리는 십리를 뻗어있고  무변대에 창망하여 대야를 들러 있고  장강은 도도하여 만고에 흘렀구나  구름 같은 성첩보소 낙빈루 높고 높다 만인가 저녁연기 추강에 그림이요  서산에 지는 해는 원객이 시름이다  술 잡고 누에 올라 칼 만지며 노래하니 무심한 뜬 구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유의한 강적 소리 객회를 더쳤세라  사향한 이내 눈물 장강에 던져 두고 백청루 내러와서 성내에서 잠을 자니  서울은 팔백리요 명천은 백구리라  비 맞고 유삼 쓰고 함관령 넘어가니  영태도 높거니와 수목도 더욱 장타  남여는 날아가고 대로는 설였구나  노변에 섰는 비석 비각단청 요조하다  태조대왕 소시절에 고려국 장수되어  말갈에 전승하고 공덕이 어제 같다.

 

 역 말을 갈아 타고 홍원읍 들어가니 무변해색 둘렀는데 읍양이 절묘하다  중화하고 떠나 서니 평포역 숙소로다  내 온 길 생각하니 처만리 되었구나  실 같은 목숨이요 거미 같은 근력이라  천천히 길을 가면 살고서 볼 것인데  엄지를 뫼셨으니 일신들 지체하랴  죽리를 가라진고 수화를 불분하니  만신에 땀이 돋아 성종 지경 되었구나  골수에 든 더위는 자고 새면 설사로다  나장이 하는 말이 나으리 거동 보소  엄엄하신 기력이요 위태하신 신관이라  하루만 조리하여 북청읍에 묵사이다  무식하다네 말이야 엄지 중일신이라 생사를 생각하랴 일시를 유체하랴  사람이 죽고 살기 하늘에 달렸으니 네 말이 기특하나 가다가 보자꾸나.

 

 북청서 유소하고 남송정 돌아드니  무변대해 망망하여 동천이 가이 없다 만산은 첩첩하여 남향이 아득하다  마곡역 중화하고 마천령 다다르니 안밖재 육십리라 하늘에 맞닿았고   공중에 걸린 길은 참바같이 설였구나 달래덤불 얽혔으니 천일이 밤중 같고  층암이 위태하니 머리 위에 떨어질 듯 하늘인가 땅이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상상봉 올라서니 보이는 게 바다이고 넓은 것이 바다이다 몇날을 길에 있어  이 재를 넘었던고 이 영을 넘은 후에 고향 생각 다시 없네 천일만 은근하여  두상에 비췄구나 원평읍 중화하고 길주읍 들어가니 성곽도 장커니와  여염이 더욱 좋다 비올 바람 일어나니 떠날 길이 아득하다

 

 읍내서 묵자하니 본관폐 불안하다  원 나오고 책방 오니 초면이 친구 같다 음식은 먹거니와 포진 기생 불관하다  엄지를 뫼셨으니 꽃자리 불관하고 죄명을 가졌으니 기생이 호화롭다  운박하온 신명 보면 분상하는 상주로다 기생을 물리치고 금연을 걷어내니  본관이 하는 말이 영남양반 고집이라 모우하고 떠나 서니 명천이 육십리라  이 땅을 생각하면 묵특의 고토로다 황사의 일분토는 왕소군의 천총이요  팔십리 광연못은 소부의 만양도다 회홍동 이릉뫼는 지금의 원억이요  백용해 때문관은 앞재 같고 뒷뫼 같다.

 

 고참역마 잡아타고 배소를 들어가니  인민은 번성하고 성곽은 웅장하다 여각에 들어앉아 패문을 붙인 후에  맹동원의 집을 물어 본관더러 선하니 본관 전갈하고 공형이 나오면서  병풍 자리 주물상을 주인으로 대령하고 육각 소리 앞세우고 주인으로 나와 앉아  처소에 전갈하여 뫼셔오라 전갈하네 슬프다 내 일이야 꿈에나 들었던가  이곳이 어디매냐 주인의 집 찾아 가니 높은대문 넓은사랑 삼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서로 인사 다한 후에 본관이 하는 말이 김교리의 이번 정배  죄없이 오는 줄을 북관 수령 아는 바요 만인이 울었으니 조금도 슬퍼 말고 나와 함께 노사이다 삼형 기생 다 불러라 오늘부터 노잣구나 호반의 규모런가  활협도 장하도다 그러나 내 일신이 귀적한 사람이라 화광빈객 꽃자리에  기락이 무엇이냐.

 

 규문에 퇴송하고 혼자 앉아 소일하니  성내의 선비들이 문풍하고 모여들어 하나 오고 두셋 오니 육십인 되었구나  책 끼고 청학하니 글제 내고 고쳐지라 북관에 있는 수령 관장만 보았다가  문관의 풍성 듣고 한사하고 달려드니 내 일을 생각하면 남 가르칠 공부 없어  아무리 사양한들 모면할 길 전혀 없네 주야로 끼고 있어 세월이 글이로다  한가하면 풍월 짓고 심심하면 글 외우니 절세의 고종이라 시주에 회포 붙여 불출문의 하오면서 편케편케 날 보내니 춘풍에 놀란 꿈이 변산에 서리 온다  남천을 바라보면 기러기 처량하고 북방을 굽어 보니 오랑캐 지경이라  개가죽 상하착은 상놀들이 다 입었고 조밥 피밥 기장밥은 기민의 조석이라  본관의 성덕이요 주인의 정성으로 실 같은 이내 목숨 달반을 걸렸더니  천만의외 가신 오며 명녹이 왔단 말가

놀랍고 반가워라 미친놈 되었구나  절세에 있던 사람 항간에 돌아온 듯 나도나도 이럴망정 고향이 있었던가  서봉을 떼어 보니 정찰이 몇 장인고 폭폭이 친척이요 면면이 가향이라  지면의 자자획획 자질의 눈물이요 옷 위의 그림 빛은 아내의 눈물이다  소동파 초운인가 양대운우 불쌍하다 그중에 사람 죽어 돈몰이 되단 말가  명녹이 대코 앉아 눈물로 문답하니 집떠난지 오래거든 그후 일을 어이 알리  만수천산 멀고먼데 네 어찌 돌아가며 덤덤히 쌓인 회포 다 이룰 수 없겠구나  녹아 말들어라 무사히 돌아가서 우리집 사람더러 살았더라 전하여라  죄명이 가벼우니 은명이 쉬우리라

 

 거연히 추석이라 가가이 성묘하네  우리 곳 사람들도 소분을 하나니라 본관이 하는 말이 이곳의 칠보산은  북관중 명승지라 금강산 다툴지니 칠보산 한번 가서 방피심산 어떠하뇨  나도 역시 좋거니와 도리에 난처하다 원지에 쫓인 몸이 형승에 노는 일이  분의에 미안하여 마음에 좋건마는 못 가기로 작정하니 주인의 하는 말이 그렇지 아니하다 악양루 환강경은 왕등의 사적이요 적병강 제석놀음  구소의 풍정이니 금학사 칠보놀음 무슨 험 있으리요 그 말을 반겨 듣고  황망히 일어나서 나귀에 술을 싣고 칠보산 들어가니 구름 같은 천만봉은  화도강산 광경이라 박달령 넘어가서 금장동 들어가니 곳곳의 물소리는  백옥을 깨쳐 있고 봉봉의 단풍 빛은 금수장을 둘렀세라 남여를 높이 타고  개심사에 들어가니 원산은 그림이오 근봉은 물형이라.

 

 육십명 선비들이 앞서고 뒤에 서니  풍경도 좋거니와 광경이 더욱 장타 창망한 지난 회포 개심사에 들어가서  밤 한 경 새운 후에 미경에 일어나서 소쇄하고 물을 여니 기생들이 앞에 와서  현신하고 하는 말이 본관사도 분부하되 김교리님 칠보산에 너 없이 놀음 되랴  당신은 사양하되 내 도리에 그럴소냐 산신도 섭섭하고 원학도 슬프리라  너희들을 송거하니 나으린들 어찌하랴 부디부디 조심하고 칠보청산 거행하다  사도의 분부 끝에 소녀들이 대령하오 우습고 부끄럽다 본관의 정성이여  풍류남자 시주객은 남관에 나뿐인데 신선의 곳에 와서 너를 어찌 보내리오  이왕에 너희들이 칠십리를 등대하니 풍류남자 방탕성이 매몰하기 어려왜라.

 

 방으로 들라하여 이름 묻고 나 물으니  한 년은 매향인데 방년이 십팔이요 하나는 군산월이 십구세 꽃이로다  화상 불러 음식 하고 노래시켜 들어보니 매향의 평우조는 운우가 흩어지고  군산월의 해금소리 만학청봉 푸르도다 지로승 앞세우고 두 기생 옆에 끼고  연화만곡 깊은 곳에 올라가니 단풍은 비단이요 송성은 거문고라  상상봉 노적봉과 만사암 천불암과 탁자봉 주작봉은 그림으로 둘러지고  물형으로 높고 높다 아양곡 한 곡조를 두 기생 불러내니 만산이 더 높으고  단풍이 더 붉도다 옥수로 양금 치니 송풍인가 물소리가 군사월의 손길 보소  곱고도 고을시고 춘산에 풀손인가 안동밧골 금랑인가 양금 위에 노는 손이  보드랍고 알스럽다.

 

 남녀 타고 전향하여 한 마루 올라가니  아까 보던 산모양이 홀지에 환영하여 모난 불이 둥그렇고 희던 바위 푸르구나  절벽에 새긴 이름 만조정 물색이라 산을 안고 들어가니 방선암이 여기로다  기암괴석 첩첩하니 갈수록 황홀할사 일리를 들어가니 금강굴 이상하다  차아한 높은 굴이 석색창태 새로워라 연적봉 구경하고 회상대 향하다가  두 기생 간 데 없어 찾느라 골몰터니 어디서 일성가곡 중천으로 일어나니  놀라서 바라보니 회상대 올라 앉아 일지단풍 꺽어 쥐고 녹의홍상 고은 몸이  만장암 구름 위에 사람을 놀랠시고 어와 기절하다 이내몸 이른 곳이  신선의 지경이라

 

 평생의 연분으로 천조에 득죄하여  바람에 부친듯이 이 광경 보겠구나 연적봉 지난 후에 이 선녀를 따라가서  연화봉 저 바위는 청천에 솟아일고 배바위 채석봉은 면전에 버려있고  생활봉 보살봉은 신선의 굴혈이라 매향은 술을 들고 만장운 한 곡조에  군월산 앉은 거동 아주 분명 꽃이로다 오동 목판 거문고에 금사로 줄을 매워  대쪽으로 타는 양이 거동도 곱거니와 섬섬한 손길 끝에 오색이 영롱하다  네 거동 보고나니 군명이 엄하여도 반할 번 하겠구나 영웅절사 없단 말은  사책에 있느니라 내 마음 단단하나 내게야 큰 말하랴 본 것은 큰 병이요  안본 것이 약이던가 이 천리 절세중에 단정히 몸가지고 기적을 잘한 것이  아주 무두 네 덕이라 양금을 파한 후에 절집에 내려오니 산중의 찬물 소리  정결하고 향기 있다 이튿날 돌아오니 회상대 높던 일이 저승인가 몽중인가  국은인가 천은인가 천애에 이 행객이 이럴 줄 알았더냐 흥진하고 돌아와서  수노불러 분부하되 칠보산 유산시는 본관이 보내기로 기생을 다렸으나  돌아와 생각하니 호화한중 불안하다 다시는 지휘하여 기생이 못 오리라  선비만 다리고서 심중에 기록하니 청산이 그림되어 술잔에 떨어지고  녹수는 길이 되어 종이 위에 단청이라 군산월 녹의홍장 깨고나니 꿈이로다  일월이 언제던고 구월구일 오늘이라 광한림 이적선은 용산에 높이 쉬고  조선의 김학사는 재덕산에 올랐구나 백주향화 앞에 놓고 남향을 상상하니  북병산 단풍경은 김학사 차지요 이하의 황국화는 주인이 없었구나.

 

 파리한 늙은 아내 술을 들고 슬프던가  추월이 낮 같으니 조운의 회포로다 칠보산 반한 놈이 소무굴 보려하고  팔십리 경성땅에 구경차로 길을 떠나 창연히 들어가니 북해상 대택중에  한가하고 외로워라 추강은 가 없는데 갈 꽃은 슬프도다 창파는 망망하여  회색을 연하였고 낙엽은 분분하여 청공에 나렸구나 충신의 높은 자취  어디가서 찾아보랴 어와 거룩할사 소중량 거룩할사 나도 또한 이럴망정  주상님 멀리 떠나 절역에 몸을 던져 회포도 슬프더니 오늘날 이 섬위에  정성이 같았구나 낙일에 칼을 잡고 후리쳐 돌아서니 병산의 풍설중에  촉도 같은 길이로다 귀문관 돌아서니 음침하고 고이하다  삼척을 드러서니 일신이 송구하다 노방에 일분토는 왕소군의 천총인가  처량한 어린 혼이 백야에 슬프도다 춘풍에 한을 먹고 홍엽을 울렸구나  쟁쟁한 환패 소리 월야에 우느니라 술 한 잔 가뜩 부어 방혼을 위로하고  유정으로 들어가니 명천읍이 십리로다

 

 탄막에 들렀다가 경방자 달려드니  무슨 기별 왔다던고 방환 기별 나렸도다 천은이 망극하여 눈물이 망망하다  문적을 손에 쥐고 남향하여 백배하니 동행의 거동 보소 치하하고 거록하다  식전에 말을 달려 주인을 찾아가니 만실이 경사로다 광경이 그지없다  죄명이 없었으니 평인이 되었구나 천은을 덮어쓰고 양계를 다시 보니  삼천리 고향 땅이 지척이 아니런가 행장을 재촉할 제 군산월이 대령한다  선연한 거동으로 웃으면서 치하하네 나으리 해배하니 작히작히 감축할가  칠보산 우리 인연 춘몽이 아득하다 이날에 너를 보니 그것도 군은인가  그렸다가 만난 정이 맛 나고도 향기롭다.

 

 본관의 거동 보소 삼현육각 거느리고  이곳을 나오면서 치하하고 손 잡으며 김교린가 김학산가 성군의 은택인가  나도 이리 감축커든 임자야 오죽할까 홍문 교리 정든 사람 일시라 전케하랴  지금으로 제안하고 그 길로 나왔노라 이다지 생각하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군산월을 다시 보니 새 사람 되었구나 형극중에 씻긴 난초 옥분에 옮겼구나  진애의 야광주가 박물군자 만났구나 신풍에 뭍힌 칼이 뉘를 보고 나왔더냐  꽃다운 어린 자질 임자를 만났구나 금병화촉 깊은 밤에 광풍제월 닭 밝은 날  글 지으며 화답하고 술 가지면 동배하니 정분도 깊거니와 호사도 그지없다  시월에 말을 타고 고향을 찾아 가니 본관의 성덕 보소 남복 짓고 종 보내며  이백량 횡재 내어 저 하나 따라주며 거행에 하는 말이 뫼시고 잘 가거라  나으리 유경시에 네게야 내외할까 천리강산 대로중에 김학사 꽃이 되어  비위를 맞추면서 좋게좋게 잘 가거라 승교를 앞세우고 풍류남자 뒤 따르니  오던 길 넓고 넓어 귀흥이 그지 없다 길주읍 들어가니 본관의 거행 보소 금연화촉 넓은 방에 기락이 가득하다 군산월이 하나이다 풍정이 가득하다  연연한 군산월이 금상첨화 되었구나 신조에 발행하여 익병에 중화하고  창해는 망망하여 동천에 그지없고

병산은 중중하여 면면이 섭섭도다

 

 추풍에 채를 들고 성진을 들어가니  북병사 마주 나와 두 군관 합석하니 상읍관가 군병이오 길주 관청 홍안이라  금촉이 영롱한데 병사의 호강이라 북관이 하는 말이 학사에 다린 사람  얼굴이 기이하다 서울겐가 북도겐가 청직인가 방자인가 이름은 무엇이며   나는 지금 몇 살인고 손 보고 눈대보니 남중일색 처음보네 웃으며 대답하되  봉도 아이 데려다가 밤중에 옮긴 후에 장가들어 살리겠소 종적을 감추우고  풍악중에 앉았으니 병사가 취한 후에 소리를 크게 하되 김교리 청직이야  내곁에 이리 오라 위령을 못하여서 공손히 나아드니 손내 어라 다시 보자  어찌 그리 기이한고 총모피 털토시에 옥수를 반만 내어 덥석 드리 쥐라할제  빼치고 일어서니 계집의 좁은 소견 미련코 매몰하다

 

 사나이 모양으로 손달라면 손을 주고  흔연하고 천연하면 위여위여 하련마는 가뜩이 수상하여 치보고 내려보고  군관이나 기생이나 면면이 보던 차에 매몰이 빼치는 양 제 버릇 없을소냐  병사가 눈치 알고 몰랐노라 몰랐노라 김학사의 아내신 줄 내 정영 몰랐구나   만당이 대소하고 뭇 기생이 달려드니 아까 섰던 남자몸이 계집통정 하겠구나  양색단 두루막이 옥판 달아 애암쓰고

꽃밭에 섞여 앉아 노래를 받아 주니  청강의 옥동인가 화원의 범나비냐.

 

 닭 울며 일출 구경 망양정 올라가니  금촉에 꽃이 피고 옥호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동해를 건너보니  일색이 오르면서 당홍바다 되는구나 부상은 지척이오 일광은 술회로다  대풍악 잡아 쥐고 태산을 굽어 보니 부유 같은 이 내 몸이 성은도 망극하다  북관을 몰랐더면 군산월이 어찌 올까 병사를 이별하고 마천령 넘어간다  구름 위에 길을 두고 남여로 올라가니 군산월이 앞세우고 안전에 꽃이 피고  군산월이 뒤세우면 후면에 선동이라 단천에 중화하고 북청읍 숙소하니  반야에 깊은 정은 금석 같은 언약이오 태산 같은 인정이라 홍원에 중화하고  영흥읍에 숙소하니 본관이 나와 보고 밥 보내고 관대하네 고을도 크거니와  기악도 끔찍하다 대풍악 파한 후에 행절이만 잡아두니 행절이 거동보소  곱고도 고울시고 청수부용 평신이오 운우양대 태도로다

 

 효두에 발행하여 고원을 들어가니  주수의 반기는 양 내달아 손 잡으며 경사를 만났구나 문천에 중화하고  원산장터 숙소하니 명천이 천여리요 서울이 육백리라 주막집 깊은 밤에  밤한경 새운 후에 계명시에 소쇄하고 군산월을 깨워내니 몽롱한 해당화가  이슬에 휘젖는 듯 괴코도 아름답다 유정하고 무정하다 옛일을 이를 게니  네 잠간 들어봐라 이전에 장대장이 제주목사 과만 후에 정들었던 수청기생  버리고 나왔더니 바다를 건는 후에 차마 잊지 못하여서 배 잡고 다시 가서  기생을 불러내어 비수 빼어 버린 후에 돌아와 대장 되고 만고명인 되었으니  나 본래 문관이라 무변과 다르기로 너를 도로 보내는 게 이것이 비수로다  내 본래 영남 있어 선비의 졸한 몸이 이천리 기생 싣고 천고에 없는 호강  끝나게 하였으니 협기하고 서울 가면 분의에 황송하고 모양이 고약하다  부디부디 잘 가거라 다시 볼 날 있으리라

 

 군산월이 거동보소 깜짝이 놀라면서  원망으로 하는 말이 버릴 심사 계셨으면 중간에 못하여서 어린 사람 호려다가  사무친척 외론 곳에 게발물어 던지시니 이런 일도 하나있가 나으리 성덕으로  사랑이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키로 풍전낙화 되었구나 오냐 오냐 나의 뜻은 그렇지 아니하여 십리만 가잤더니 천리나 되었구나 저도 부모 있는 고로  원리한 심회로서 웃으며 그리 하오 눈물로 그리 하오 효색은 은은하고 추강은 명랑한데 홍상에 눈물 나려 학사두발 희겠구나 승교에 담아내어  저 먼저 회송하니 천고에 악한 놈 나 하나 뿐이로다 말 타고 돌아서니  이목에 삼삼하다 남자의 간장인들 인정이 없을소냐 이천리 장풍유를  일조에 놓쳤구나 풍정도 잠간이라 흥진비래 되었구나

 

 안변원이 하는 말이 어찌 그리 무정하오  판관사도 무섭던가 남의 눈이 무섭던가 장부의 헛된 간장 상하기 쉬우리라  내 기생 봉선이를 남복시켜 앞세우고 철령까지 동행하여 회포를 잊게 하소  봉선이를 불러드려 따라가라 분부하니 자색이 옥골이라 군산월이 고은 모양  심중에 깊었으니 새낯보고 잊을소냐 풍설이 아득한데 북천을 다시 보니 춘풍에 아는 꽃이 진흙에 구르다가 추천의 외기러기 짝없이 가는 이라  철령을 넘을 적에 봉선이를 하직하고 에꾸즌 이 내 몸이 하는 것이 이별이라  조히 있고 잘 가거라 다시 어찌 못 만나랴 남여로 내 넘으니 북도산천 끝이 난다  서름도 지나가고 인정도 끝이 나고 풍류는 끝이나고 남은 것이 귀흥이라  회양에 중화하고 금화 금성 지난 후에 영평읍 들어가서 철원을 밟은 후에  포천읍 숙소하고 왕성이 어디매뇨 귀흥이 도도하다

 

 갈 적에 녹음방초 올 적에 풍설이오  갈 적에 백의러니 올 적에 청포로다 적객이 어제러니 영주학사 오늘이야  술 먹고 마릉ㄹ 타고 풍월도 절로 나고 산 넘고 물 건너며 노래로 예 왔구나  만사여생 이 몸이오 천고호걸 이 몸이라 축성령 넘어가니 삼각산 반가와라  중천에 솟았으니 귀흥이 높아 있고 만수에 상화 피니 설상이 춘광이라  삼각에 재배하고 다락원 들어가니 관주인 마주 나와 우름으로 반길시고  동대문 들어가니 성상님이 무강할사

 

 행장을 다시 차려 고향으로 가올 적에  새재를 넘어서니 영남이 여기로다 오천서 밤 새우고 가산에 들어오니  일촌이 무양하여 이전 있던 행각이라 어린 것들 반갑구나 이끌고 안에 드니  애쓰던 늙은 아내 부끄러워 하는구나 어여쁠사 수득 어미 군산월이 네 왔더냐  박잔에 술을 부어 마시고 취한 후에 삼천리 남북풍장 일장춘몽 깨었구나  어와 김학사야 그릇타 한을 마라 남자의 천고사업 다하고 왔느니라  강호에 편케 누워 태평에 놀게 되면 무슨 한이 또 있으며 구할 일이 없으리라  글 지어 기록하니 불러들 보신 후에 후세에 남자되야 남자를 부려말고  이 내 노릇 하게되면 그 아니 상쾌할까.

 


세상에 사람들아 이내 말삼 드러보소
과거를 하거들랑 청춘에 안이하고
오십에 등과(登科)하여 백수홍진 무삼일고
공명(公明)이 되지마나 행세나 약바르게
무단이 내달아서 소인의 적(敵)이 되어
부월을 무릅스고 천정에 상소하니
니전으로 보게되면 빗나고 올컨만은
요요한 이 세상에 남다른 일이로다.
소( ) 한 장 오르면서 만조(滿朝)가 울울하다
어와 황송할사 천위(天威)가 진노하니
삭탈관직(削奪官職) 하시면서 엄치(嚴治)하고 식중하니
운박한 이 신명이 고국을 도라갈 새
추풍(秋風)에 배를 타고 강회로 향하다가
남수작 상소끗에 명천 정배 놀납도다
적소(適所)로 치행하니 한파한파 고이하다
장망한 행색으로 동문에서 대죄하니
가향(家鄕)은 적막하고 명천이 이천리라
두루마기 한띄매고 북천(北天)을 향해셔니
사고무친 고독단신 쥭난쥴 뉘가 아랴
사람마다 당케되면 우름이 나지마난
국은(國恩)을 갑을지라 쾌함도 쾌할시고
인신(人臣)이 되어다가 소인을 참소하고
엄지를 봉승하여 절역을 가난 사람
천고의 몇몇이며 아조(我朝)에 그뉘련고
칼집고 이려셔셔 술먹고 츔을 추니
천리적객이라 장부도 다울시고
죠흔다시 말을 하니 명천이 어듸맨야
더외난 홍로(紅爐)갓고 장마난 극악(極惡)한대
노자난 되셔우고 이 명월(明月) 내달나셔
다락원 잠관지나 축셩영 남어셔니
북천이 머러간다
슬푸다 이내몸이 영쥬각 신선(神仙)으로
나나리 책을 끼고 천일(天日)을 메시다가
일조(一朝)에 졍을 떼여 천애(天涯)로 가갯고나
규중을 첨망(瞻望)하니 운연(雲煙)이 아득하다
종남은 아아하여 몽상(夢想)에 마련하다
밥먹으면 길을 가고 잠을 깨면 길을 떠나
물건너고 재를넘어 십리가고 백리가니
양주(楊洲)따 지난후에 표원읍 길가이오
천원지경 발분후에 정평읍 건너가셔
김회김셩 지난후에 화양읍 막쥭이라
강원도 북관길이 듯기보기 갓호구나
회양서 즁화하고 철령을 향해가니
쳔험한 청산이오 촉도란은 길이로다

(중략)

고참(古站) 역마 잡아 타고 배소(配所)로 들어가니
인민은 번성하고 성곽(城廓)은 웅장(雄壯)하다
여각(旅閣)에 들어 앉아 패문(牌文)을 부친 후에
맹 동원의 집을 물어 본관 더러 전하니
본관 전갈(傳喝)하고 공형(工刑)이 나오면서
병풍 자리 주물상을 주인으로 대령하고
육각(六角) 소리 앞세우고 주인으로 나와 앉아
처소에 전갈하며 뫼셔 오라 전갈하네
슬프다 내 일이야 꿈에나 들었던가
이 곳이 어디메냐 주인의 집 찾아가니
높은 대문 넓은 사랑 삼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새로 인사 대한 후에
본관이 하는 말이 김 교리(金校理) 이 번 정배(定配)
죄 없이 오는 줄은 북관(北關) 수령(守令) 아는 배요
만이 울었나니 조금도 슬퍼 말고
나와 함께 노사이다 삼형(三營) 기생 다 불러다
오늘부터 노자꾸나 호반의 규모런가
활협(闊俠)도 장하도다 그러나 내 일신이
귀적(歸謫)한 사람이라 화광빈객(華光賓客) 꽃자리에
기악(妓樂)이 무엇이냐 극구(極口)에 퇴송(退送)하고
혼자 앉아 소일하니 성내의 선비들이
문풍(聞風)하고 모여들어 하나 오고 두셋 오니
육십 인이 되었구나 책 끼고 청학(請學)하며
글제 내고 고쳐지라 북관에 있는 수령 관장(關將)만
보았다가 문관의 풍성 듣고 한사하고
달려드니 내 일을 생각하면 남 가르칠
공부 없어 아무리 사양한들 모면(謀免)할 길 전혀 없네
주야로 끼고 있어 세월이 글이로다
한가하면 풍월(風月) 짓고 심심하면 글 외우니  
절세의 고종이라 시주(詩酒)에 회포(懷抱) 붙여
불출 문외(不出門外) 하오면서 편ㅎ게 편ㅎ게
날 보내니 춘풍에 놀란 꿈이 변산(邊山)에 서리 온다
(하략)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철종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김진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장편 유배 가사, 기행 가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기행문적, 체험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함경도 명천의 귀양 생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1853년(철종4) 작자가 교리(校理)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을 탄핵한 사건으로 명천(明川)에 귀양갔다. 당시 유배생활의 고락과 인정, 그리고 귀양에서 풀려 돌아오는 길에서의 견문 등을 읊은 가사이다. 모두 1,026구에 이르는 장편으로서, 가사의 형식을 빌린 기행문이라 하겠으며,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연행가(燕行歌)'와 더불어 기행가사 문학의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古站(고참) : 고역(古驛).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牌文(패문) : 편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傳喝(전갈) : 하인을 시켜 안부를 물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六角(육각) : 북. 장구. 해금. 피리 및 태평소 한 쌍의 총칭.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敎理(교리) : 정오품(正五品) 벼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定配(정배) : 유배(流配).귀양보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北關(북관) : 함경도(咸鏡道).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三營(삼형) : 삼영(三營)의 잘못인 듯. 삼영은 함경 감영, 명천 북영(明川北營), 북병사병영(北兵使兵營).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虎班(호반) : 무사(武士).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風月(풍월) : 음풍 농월(吟風弄月), 곧 시(詩)를 말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철종 때 김진형이 함경도 명천으로 귀양갔다가 거기서의 생활을 노래한 장편가사로 내용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령을 받는 신세, 서울로부터 북관까지 가는 유배과정, 북관에서 그곳 수령의 융숭한 대접과 칠봉산 구경 및 기생군산월과의 사랑, 북관에서부터 유배지 명천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과정, 명천에 당도하자마자 방면된 소식을 접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과정과 강호·태평 등을 차례로 보여 주고 있다. 유배에 수반된 슬픔과 즐거움, 인정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옛날 귀양살이의 한 면모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작품으로, 작자가 유배된 내력과 배소에 있는 기생들과의 풍류, 기생 군산월과의 연정 등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김진형(金鎭衡/1801~1865)

 1801(순조 1)∼1865(고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수(德錘), 호는 겸와(謙窩) 또는 청사(晴蓑). 종수(宗壽)의 아들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3년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 남종순(南鍾順)에게 몰려 한때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었다. 1856년 문과중시에 다시 급제하였다.
1864년에는 시정의 폐단을 상소하였는데, 조대비(趙大妃)의 비위에 거슬린 구절이 있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방면되어 귀환하는 왕복의 기록을 담은 것으로 〈북천록 北遷錄〉이라는 한문일기와 가사 〈북천가 北遷歌〉가 전한다. 유고를 모은 미간행본 ≪청사유고≫를 그의 5세손인 태현(台鉉)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晴蓑遺稿, 韓國紀行文學硏究(崔康賢, 一志社, 1982), 流謫地의 人間과 그 文學(金宇鎭, 現代文學 107, 1963), 北遷歌硏究(金時謎, 成大文學 19, 1976), 流配歌辭의 作品構造와 現實認識(崔相殷, 文學硏究 3, 경원문화사,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북천가

 조선 철종 때 김진형(金鎭衡)이 지은 유배가사. 필사본.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026구의 장편이다. 음수율은 3·4조와 4·4조가 우세하며, 2·4조와 3·5조 등도 아주 드물게 나온다.
작자가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논척(論斥)하다가 반대파에 몰려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되었다. 이 작품은 그 유배생활로부터 방면되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읊은 가사이다.
 내용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령을 받는 신세, 서울로부터 북관(北關)까지 가는 유배과정, 북관에서 그 곳 수령의 융숭한 대접과 칠봉산(七峯山)구경 및 기생 군산월(君山月)과의 사랑, 북관에서부터 유배지 명천까지 이르는 과정, 명천에 당도하자마자 방면된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강호
·태평 등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유배에 수반된 슬픔과 즐거움, 인정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옛날 귀양살이의 한 면모를 상세히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北遷歌硏究(金時, 成大文學 19, 197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문관 교리로 있다가 함경도 명천으로 귀양갔을 때의 일을 읊었다. 귀양살이의 고통보다는 풍류를 즐긴 내용을 담고 있다. 2음 1구로 계산해 전체 1,026구의 장편이다.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령을 받은 신세, 북관 수령의 융숭한 대접과 경치구경, 기생과의 사랑, 북관에서 유배지까지 가는 과정, 명천에 도착하자마자 방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 등을 그리고 있다. 귀양을 가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으며 뉘우치는 말은 몇 마디 정도이다. 좋은 구경을 하다가 이름난 기생을 만나 마음껏 즐긴 행적을 늘어놓아 흥미거리를 찾는 독자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경상도 안동 일대의 규방가사로 수용되어 애정소설의 구실을 하기도 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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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강] 조위 - 만분가  (0) 2009.01.03
[13강] 조위 - 만분가  (0) 2009.01.03
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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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 연대 : 조선 연산군 때 
◈ 작자 : 매계(梅溪) 조위(曺偉) 
◈ 갈래 : 충일가사, 유배가사
◈ 형식 :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의 유배가사
◈ 성격 : 충신연군지사
◈ 특징
① 우리 나라 최초의 유배 가사이자 충신연군지사이다.
② 임을 잃은 여성을 화자로 설정하여 호소력을 높였다.
③ 화자 자신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신선에, 임금(성종)을 옥황상제에 비유했다.
④  '두견, 구름, ‘천층랑(험한 물결)’, ‘뜰 앞에 심은 난’, ‘외기러기’, ‘강천에 지는 해’ ‘명월’ 등의 다양한 자연물을 통해 유배지에서의 화자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 주제 :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노래 /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 / 유배당한 현실에 대한 원망과 연군의 정
◈ 의의 : 유배가사의 최초
◈ 발표 : 1498년(연산군4)
 
 
 
짜임
* 서사 : 임과 이별한 시적 화자의 처지와 욕구
  - 적소에서 왕에게 흉중에 쌓인 말씀을 실컷 호소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고 하는 동기
* 본사 : 사화로 인해 전일의 영화가 현재의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황제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자기를 굴원에 비유)
    본사1 : 유배 생활의 처지와 임에 대한 그리움
    본사2 : 시적 화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원망과 슬픔
    본사3 : 유배 생활하는 처지와 운명에 대한 체념
* 결사 : 임의 사랑에 대한 회의와 번민
   -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 제 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고 싶다고 함
 
 
◈ 이해와 감상1◈   1498년(연산군 4) 매계(梅溪) 조위(曺偉) 지은 가사로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지은이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한 내용으로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의 '천문(天問)'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철의 '사미인곡'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만분가‘는 한편으로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는 한편,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정서를 아울러 표출하는 특징을 갖는 유배 가사로 작가가 귀양간 처지를 천상 백옥경에서 하계로 추방된 것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지배체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지배체제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왕권이었고, 그 왕권에 순응할 때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어떤 유배가사라도 왕권에 도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왕으로부터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유배가사는 왕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해와 감상2◈
 ' 만분가'는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인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작자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비분 강개한 심정을 임금인 성종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죄없이 ?i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듯이 자신도 죄없이 귀양와 있다는 것이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희생된 문신(文臣)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유배가사의 효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 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가 있는 작자는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 등이 모두 '만분가'의 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유배가사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루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분가'는 유배가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과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작품
◈ 유배 문학
정서 ‘정과정’ / 정철 ‘사미인곡’ ‘속미인곡’
안조환 ‘만언사’ / 김진형 ‘북천가’ / 송찬규 ‘북관곡’
 

알아 두기
◈만분가’의 의의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배가사이다
 
 
 
만분가(萬憤歌)
 
 
[서사] : 적소에서 왕에게 흉중 말씀을 실컷 호소하고 싶은 마음(글을 쓴 동기)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 십이루(十二樓) 어듸매오 / 오색운(五色雲) 깁픈 곳의 자청전(紫淸殿)이 가려시니 / 천문(天門) 구만리(九萬里)를 꿈이라도 갈동말동 / 차라리 싀여지여 억만(億萬)번 변화(變化)하여 / 남산(南山) 늣즌 봄의 두견(杜鵑)의 넉시 되여 / 이화(梨花) 가디 우희 밤낫즐 못 울거든 / 삼청동리(三淸洞裡)의 졈은 한널 구름 되여 / 바람의 흘리 나라 자미궁(紫微宮)의 나라 올라 / 옥황(玉皇) 향안전(香案前)의 지척(咫尺)의 나아 안자 / 흉중(胸中)의 싸힌 말삼 쓸커시 사로리라
 

  천상 백옥경(하늘 위의 궁전)의 열두 누각은 어디인가? / 오색 구름 깊은 곳에 자청전(하늘의 신선이 사는 집)이 가렸으니, /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 말동. / 차라리 죽어서 억만 번 변화하여 / 남산의 늦은 봄날 두견이 넋이 되어 / 배꽃 가지 위에서 밤낮으로 못 울거든 / 삼청 동리(신선이 사는 고을 안)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 바람에 흩날리며 날아 자미궁(천제의 거처, 황궁)에 날아올라 / 옥황상제 앞에 놓인 상 앞에 가까이 나가 앉아 / 가슴 속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본사] : 사화로 인해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황제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자기를 굴원에 비유)
 

  어와, 이 내 몸이 천지간(天地間)의 느저 나니 / 황하수(黃河水) 말다만난 초객(楚客)의 후신(後身)인가 / 상심(傷心)도 가이 업고 가태부(賈太傅)의 넉시런가 / 한숨은 무스 일고 형강(荊江)은 고향(故鄕)이라 / 십년(十年)을 유락(流落)하니 백구(白鷗)와 버디 되어 / 함께 놀쟈 하엿더니 / 어루난 듯 괴난 듯 / 남의 업슨 님을 만나 / 금화성(金華省) 백옥당(白玉堂)의 꿈이조차 향긔롭다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 황하수 맑다마는 굴원의 후신인가 / 상심도 끝이 없고 가의의 넋이런가 /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유배지를 가리킴)은 고향이라 / 십 년을 유배 생활로 떠돌아다니니 갈매기와 벗이 되어 / 함께 놀자 하였더니 아양을 부리는 듯 사랑하는 듯 / 남의 없는 임(성종 임금)을 만나 / 금화성 백옥당(적송자가 득도한 곳)의 꿈조차 향기롭다.
 
 
 
  오색(五色)실 니음 졀너 님의 옷슬 못 하야도 / 바다 가튼 님의 은(恩)을 추호(秋毫)나 갑프리라 / 백옥(白玉) 가튼 이 내 마음 님 위하여 직희더니 / 장안(長安) 어제 밤의 무서리 섯거치니 / 일모수죽(日暮脩竹)의 취수(翠袖)도 냉박(冷薄)할샤 / 유란(幽蘭)을 것거 쥐고 님 겨신 듸 바라보니 / 약수(弱水) 가리진 듸 구름 길이 머흐러라 / 다 서근 닭긔 얼굴 첫맛도 채 몰나셔 / 초췌(憔悴)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러컨쟈 / 천층랑(千層浪) 한가온대 백척간(百尺竿)의 올나더니 / 무단(無端)한 양각풍(羊角風)이 환해중(宦海中)의 니러나니 / 억만장(億萬丈) 소희 빠져 하날 따흘 모랄노다

 
  오색실 이음이 짧아 임의 옷을 못하여도 / 바다 같은 임의 은혜 조금이나마 갚으리라 / 백옥 같은 이내 마음 임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 치니 / 해질녘 긴 대나무에 의지하여 서 있으니 푸른 옷소매도 냉박하구나. / 난꽃을 꺾어 쥐고 임 계신 데 바라보니 /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 다 썩은 닭의 얼굴 첫 맛도 채 몰라서(임의 성격도 파악하기 전에) / 초췌한 이 얼굴이 임 그려서 이리 되었구나 / 험한 물결 한가운데 긴 장대 위에 올랐더니 / 끝이 없는 회오리바람이 관리의 사회 중에 내리나니 / 억만장 못에 빠져 하늘땅을 모르겠도다.
 
 
 
  노(魯)나라 흐린 술희 한단(邯鄲)이 무슴 죄(罪)며 / 진인(秦人)이 취(醉)한 잔(盞)의 월인(越人)이 무음 탓고 / 성문(城門) 모딘 불의 옥석(玉石)이 함긔 타니 / 뜰 압희 심은 난(蘭)이 반(半)이나 이우례라 / 오동(梧桐) 졈은 비의 오기럭기 우러 롈 제 / 관산만리(關山萬里) 길이 눈의 암암 발피난 듯 / 청련시(靑蓮詩) 고쳐 읇고 팔도 한을 슷쳐 보니 / 화산(華山)의 우난 새야 이별(離別)도 괴로왜라 / 망부산전(望夫山前)의 석양(夕陽)이 거의로다 / 기도로고 바라다가 안력(眼力)이 진(盡)톳던가 / 낙화(落花) 말이 업고 벽창(碧窓)이 어두브니 / 입 노른 삿기 새들 어이도 그리 건쟈 / 팔월추풍(八月秋風)이 뛰집을 거두으니 / 븬 깃의 싸인 알히 수화(水火)랄 못 면토다 / 생리사별(生離死別)을 한 몸의 흔자 맛따 / 삼천장(三千丈) 백발(白髮)이 일야(一夜)의 기도 길샤 / 풍파(風波)의 헌 배 타고 함께 노던 져뉴덜아 / 강천(江天) 지난 해의 주집(舟楫)이나 무양(無恙)한가 / 밀거니 혀거니 염예퇴(艶預堆)랄 겨요 디나 / 만리붕정(萬里鵬程)을 멀니곰 견주더니 / 바람의 다브치여 흑룡강(黑龍江)의 떠러진 닷 / 천지(天地) 가이 업고 어안(魚雁)이 무정(無情)하니 / 옥(玉) 가탄 면목(面目)을 그리다가 말년지고 / 매화(梅花)나 보내고져 역로(驛路)랄 바라보니 / 옥량명월(玉樑明月)을 녀보던 낫비친 닷
 

  노나라(중국의 동중부에 있던 나라) 흐린 술에 한단(중국의 중서부에 있던 조나라의 서울)이 무슨 죄며 / 진나라 사람들(중국의 서북지방)이 취한 잔에 월나라 사람들(중국의 동남지방)이 웃음을 웃은 탓인가?(무관하다는 뜻) /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시들었구나. / 저물녘 오동잎에 내리는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 이백의 시를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보니 /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 망부 산전에 석양이 되었구나. / 기다리고 바라다가 시력이 다했던가 / 낙화는 말이 없고 창문이 어두우니 / 입 노란 새끼 새들이 어미를 그리는구나. / 팔월 추풍이 띳집을 거두니 / 빈 새집에 쌓인 알이 물과 불을 못 면하도다. / 살아서 이별하고 죽어서 헤어짐을 한 몸에 혼자 맡아 / 긴 흰머리가 하룻밤에 길기도 길구나. /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 하늘이 보이는 강에 지는 해에 배와 노는 별 탈이 없는가? /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뱃사람들이 물살을 조심하던 곳)를 겨우 지나 / 만 리나 되는 멀고도 험한 길을 멀리멀리 견주더니 / 바람에 당겨서 붙게 하여 흑룡강에 떨어진 듯 / 천지는 끝이 없고 물고기와 기러기가 무정하니 / 옥 같은 얼굴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 매화나 보내고자 역마를 바꿔 타는 곳과 통하는 길을 바라보니 / 옥 대들보에 걸린 밝은 달을 옛 보던 낯빛인 듯.
 
 
 
  양춘(陽春)을 언제 볼고 눈비랄 혼자 마자 / 벽해(碧海) 너븐 가의 넉시조차 흣터지고 / 내의 긴 소매랄 눌 위하여 적시고 / 태상(太上) 칠위분이 옥진군자(玉眞君子) 명(命)이시니 / 천상(天上) 남루(南樓)의 생적(笙笛)을 울니시며 / 지하(地下) 북풍(北風)의 사명(死命)을 벗기실가 / 죽기도 명(命)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 진채지액(陳蔡之厄)을 성인(聖人)도 못 면하며 / 유예비죄(縷絏非罪)랄 군자(君子)인들 어이 하니 / 오월비상(五月飛霜)이 눈물로 어릐난 듯 / 삼년대한(三年大旱)도 원기(寃氣)로 늬뢰도다 / 초수남관(楚囚南冠)이 고금(古今)의 한둘이며 / 백발황상(白髮黃裳)의 셔룬 일도 하고 만타 / 건곤(乾坤)이 병(病)이 드러 혼돈(混沌)이 죽근 후의 / 하날이 침음(沈吟)할 듯 관색성(貫索星)이 비취난 듯 / 고정의국(孤情依國)의 원분(怨憤)만 싸혓시니 / 차라리 할마(瞎馬)가치 눈 감고 지내고져 / 창창막막(蒼蒼漠漠)하야 못 미들슨 조화(造化)일다 / 이러나 져러나 하날을 원망할가

 
  햇볕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 푸른 바다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가? / 태상 일곱 분이 신선의 명이시니 / 천상 남루에 생황과 피리를 울리시며 / 지하 북풍의 죽을 목숨을 벗기실까 / 죽기도 운명이요 살기도 하늘이니 / 진과 채에서 당한 횡액을 공자도 못 면하며 / 죄인처럼 묶였으나 죄가 없음을 군자인들 어이 하겠는가? / 오월 서리가 눈물로 어리는 듯 / 삼 년 큰 가뭄도 원한으로 되었구나. / 죄 지은 사람이 고금에 한둘이며 / 고위직의 늙은 신하의 서러운 일도 많기도 많다. / 하늘과 땅이 병이 들어 혼돈(하늘과 땅이 아직 나눠지기 전의 상태)이 죽은 후에 / 하늘이 침울할 듯 천한 사람의 감옥이 비취는 듯 / 유배지에서 나라만 생각하는 충정에 원망스럽고 분한 마음만 쌓였으니 / 차라리 한 눈이 먼 말 같이 눈 감고 지내고 싶구나. / 울적하고 막막하여 못 믿을 쏜 조화로다 /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盜跖)도 셩히 놀고 백이(伯夷)도 아사(餓死)하니 / 동릉(東陵)이 놉픈 작가 수양(首陽)이 나즌 작가 / 남화(南華) 삼십편(三十篇)의 의논(議論)도 하도 할샤 / 남가(南柯)의 디난 꿈을 생각거든 슬므어라 / 고국송추(故國松楸)를 꿈의 가 만져 보고 / 선인(先人) 구묘(丘墓)를 깬 후(後)의 생각하니 / 구회간장(九回肝腸)이 굽의굽의 그쳐셰라 / 장해음운(長海陰雲)의 백주(白晝)에 흣터디니 / 호남(湖南) 어늬 고디 귀역(鬼蚸)의 연수(淵藪)런디 / 이매망량(魑鬽魍魎)이 쓸커디 저즌 가의 / 백옥(白玉)은 므스 일로 청승(靑蠅)의 깃시 된고

 
  큰 도적도 몸성히 놀고 백이도 굶어죽으니 /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 <장자>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 남가(고을 이름. 남가지몽의 옛일에서 한 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음을 일컫게 됨)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 고국의 송추(소나무와 가래나무. 무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꿈에 가 만져 보고 / 선인의 무덤을 깬 후에 생각하니 / 겹쳐진 속마음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 장해음운(병을 발생하게 하는 구름)이 대낮에 흩어지니 / 호남의 어느 곳이 귀역(몰래 남을 해치는 물건. 음험한 사람에 비유하는 말)의 연수(사물이 모여드는 곳, 못과 숲)런지 / 도깨비가 실컷 젖은 가에 / 백옥은 무슨 일로 쉬파리의 깃이 되었는가.
 
 
 
  북풍(北風)의 혼자 셔셔 가 업시 우난 뜻을 / 하날 가튼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 목란추국(木蘭秋菊)에 향기(香氣)로운 타시런가 / 첩여(婕妤) 소군(昭君)이 박명(薄命)한 몸이런가 / 군은(君恩)이 물이 되여 흘너가도 자최 업고 / 옥안(玉顔)이 꽃이로되 눈믈 가려 못 볼로다 / 이 몸이 녹가져도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이요 / 이 몸이 싀여져도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이라 / 노가디고 싀어지여 혼백(魂魄)조차 흣터지고 / 공산(空山) 촉루(髑髏)가치 님자 업시 구니다가 / 곤륜산(崑崙山) 제일봉의 만장송(萬丈松)이 되여 이셔 / 바람비 쁘린 소리 님의 귀예 들니기나 / 윤회(輪回) 만겁(萬怯)하여 금강산(金剛山) 학(鶴)이 되어 / 일만(一萬) 이천봉(二千峯)의 마음껏 소사 올나 / 가을 달 발근 밤의 두어 소리 슬피 우러 / 님의 귀의 들니기도 /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일다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 하늘 같은 우리 임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 목란추국(목란과 가을국화)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 첩여 소군(한나라 때의 반첩여와 궁녀)이 박명한 몸이런가. / 임금의 은혜가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 임금의 얼굴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 녹아지고 죽어서 혼백조차 흩어지고 / 공산 해골같이 임자 없이 굴러다니다가 / 곤륜산 제일봉에 매우 큰 소나무가 되어 있어 / 바람 비 뿌린 소리 임의 귀에 들리게 하거나 / 윤회 만겁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 임의 귀에 들리게 하는 것도 /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결사] :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 제 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고 싶다고 함
 

  한(恨)이 뿔희 되고 눈믈로 가디 삼아 / 님의 집 창 밧긔 외나모 매화(梅花) 되여 / 설중(雪中)의 혼자 픠여 침변(枕邊)의 이위난 듯 / 월중소영(月中疎影)이 님의 옷의 빗취어든 / 어엿븐 이 얼굴을 네로다 반기실가 / 동풍(東風)이 유정(有情)하여 암향(暗香)을 불어 올려 / 고결(高潔)한 이 내 생계 죽림(竹林)의나 부치고져 / 뷘 낙대 빗기 들고 뷘 배랄 혼자 띄워 / 백구(白溝) 건네 저어 건덕궁(乾德宮)의 가고지고 / 그려도 한 마음은 위궐(魏闕)의 달녀 이셔 / 내 무든 누역 속의 님 향한 꿈을 깨여 / 일편(一片) 장안(長安)을 일하(日下)의 바라보고 / 외오 굿겨 올히 굿겨 이 몸의 타실넌가 / 이 몸이 전혀 몰라 천도(天道) 막막(漠漠)하니 / 물을 길이 전혀 업다 복희씨(伏羲氏) 육십사괘(六十四卦) / 천지만물(天地萬物) 상긴 뜻올 주공(周公)을 꿈의 뵈와 / 자시이 뭇잡고져 하날이 놉고 놉하 / 말 업시 놉흔 뜻을 구룸 우희 나난 새야 / 네 아니 아돗더냐 어와 이 내 가삼 / 산(山)이 되고 돌이 되여 어듸 어듸 사혀시며 / 비 되고 믈이 되어 어듸 어듸 우러 녤고 / 아모나 이 내 뜻 알 니 곳 이시면 / 백세교유(百歲交遊) 만세상감(萬世相感) 하리라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 삼아 / 임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 눈 속에 혼자 피어 베갯머리에 시드는 듯 / 드문드문 비치는 달그림자가 임의 옷에 비취거든 / 불쌍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 동풍이 유정하여 매화향기를 불어 올려 / 고결한 이내 생애 죽림에나 부치고 싶구나. /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혼자 띄워 / 한강 건너 저어 건덕궁(옥황상제가 거처하는 곳)에 가고 싶구나. / 그래도 한 마음은 조정에 달려 있어 / 연기 묻은 도롱이 속에 임 향한 꿈을 깨어 /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 외로 머뭇거리며 옳이 머뭇거리며 이 몸의 탓이런가. / 이 몸이 전혀 몰라 하늘의 이치가 아득하여 알 수 없으니 /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 천지 만물 생긴 뜻을 주공을 꿈에 뵈어 / 자세히 여쭙고 싶구나. 하늘이 높고 높아 /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 산이 되고 돌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 아무나 이내 뜻 알 이 곧 있으면 / 영원토록 사귀어서 영원토록 공감하리라.

[출처] 만분가 - 조위|작성자 고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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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 연대 : 조선 연산군 때 

◈ 작자 : 매계(梅溪) 조위(曺偉) 

◈ 갈래 : 충일가사, 유배가사

◈ 형식 :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의 유배가사

◈ 성격 : 충신연군지사

◈ 특징

① 우리 나라 최초의 유배 가사이자 충신연군지사이다.

② 임을 잃은 여성을 화자로 설정하여 호소력을 높였다.

③ 화자 자신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신선에, 임금(성종)을 옥황상제에 비유했다.

④  '두견, 구름, ‘천층랑(험한 물결)’, ‘뜰 앞에 심은 난’, ‘외기러기’, ‘강천에 지는 해’ ‘명월’ 등의 다양한 자연물을 통해 유배지에서의 화자의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 주제 :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노래 /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 / 유배당한 현실에 대한 원망과 연군의 정

◈ 의의 : 유배가사의 최초

◈ 발표 : 1498년(연산군4)



짜임


* 서사 : 임과 이별한 시적 화자의 처지와 욕구

  - 적소에서 왕에게 흉중에 쌓인 말씀을 실컷 호소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고 하는 동기

* 본사 : 사화로 인해 전일의 영화가 현재의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황제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자기를 굴원에 비유)

    본사1 : 유배 생활의 처지와 임에 대한 그리움

    본사2 : 시적 화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원망과 슬픔

    본사3 : 유배 생활하는 처지와 운명에 대한 체념

* 결사 : 임의 사랑에 대한 회의와 번민

   -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 제 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고 싶다고 함




 

  1498년(연산군 4) 매계(梅溪) 조위(曺偉) 지은 가사로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지은이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한 내용으로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의 '천문(天問)'과 비슷한 점으로보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철의 '사미인곡'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만분가‘는 한편으로는 임을 잃은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는 한편,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정서를 아울러 표출하는 특징을 갖는 유배 가사로 작가가 귀양간 처지를 천상 백옥경에서하계로 추방된 것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지배체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지배체제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왕권이었고, 그 왕권에 순응할 때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기회였다. 그래서 어떤 유배가사라도 왕권에 도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왕으로부터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의유배가사는 왕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해와 감상2◈


  '만분가'는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인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작자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비분 강개한 심정을 임금인 성종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중국의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죄없이 ?i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듯이 자신도 죄없이귀양와 있다는 것이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희생된 문신(文臣)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유배가사의 효시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가 있는 작자는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 등이 모두 '만분가'의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유배가사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루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분가'는유배가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과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작품

◈ 유배 문학

정서 ‘정과정’ / 정철 ‘사미인곡’ ‘속미인곡’

안조환 ‘만언사’ / 김진형 ‘북천가’ / 송찬규 ‘북관곡’


알아 두기

◈ ‘만분가’의 의의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유배가사이다.


[본문 학습]

<천상(天上) 백옥경(百玉京) 십이루(十二樓) 어듸매오.

옥황상제가 산다는 하늘 위의 궁궐-임금이 계신 곳

오색운(五色雲) 깁은 곳에 자청전(紫淸殿)이 가려시니 >

 장애물                       신선이 산다는 궁궐-임금이 계신 곳

<   >부분 : 임금과 화자의 거리가 천상과 지상만큼 멀리 떨어져 있음

천문(天門) 구만 리를 꿈이라도 갈동말동

먼 하늘

>차라리 쉬여지여 억만 번 변화하여

          죽어져서 -정철 속미인곡

남산(南山) 늦은 봄에 두견(杜鵑)의 넋이 되어

임금이 계신 곳     한의 이미지 / 시적화자의 분신

두견 : 밤에 우는 새로 한번 울면 피를 토할 때까지 우는 새. 임을 이별하고 우는 여인에 주로 비유됨. 죽어서라도 임과의 공간적 거리를 줄이고자 하는 화자의 내면 의지를 두견을 통해 표현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三淸) 동리(洞裡)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신선이 사는 고을 안                      시적화자

삼청 : 옥청, 상청, 대청

* 두견 , 구름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임과의 공간적 거리감을 해소할 수 있는 시적 화자의 상상의 표현

바람에 흘리 나라 자미궁(紫微宮)1)에 나라 올라

                    천제의 거처, 자궁, 황궁-임금이 계시는 궁궐

바람 : 화자를 대상에게로 데려다 주는 매개체

옥황(玉皇) 향안(香案)2) 전에 지척(咫尺)에 나아 안자

임금이 있는 곳/ 시적화자의 지향처

흉중(胸中)에 싸힌 말삼 쓸커시 사로리라 >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하게 된 사연을 하소연 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  <  >부분 : 윤회를 통해서라도 임에게 고하고 싶은 마음

◈서사 : 임과 이별한 화자의 처지와 욕구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天地間)에 느저 나니

유배생활에 대한 탄식

황하수(黃河水) 말다만난 초객(楚客)의 후신(後身)인가

                   맑다마는  초나라 때 사람, 굴원을 가리킴

상심도 가이 업고 가태부의 넉시런가

          끝이없고   한나라 때의 가의

한숨은 무스 일고 형강(荊江)3)은 고향이라 >

 억울함 답답함           유배지를 가리킴

<  >부분 :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운명에 대한 한탄

십 년을 유락(流落)하니 백구(白鷗)와 버디 되어

십년을 유배생활로 돌아다니니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루난 듯 괴난 듯

                         얼루는 듯, 아양부리는 듯

남의 업슨 님을 만나   금화성4) 백옥당의  

남다른 임을 만나서 신선 적송자가 득도한 금화성 백옥당이 꿈속에서까지 향기롭다.

꿈조차 향기롭다

추상적 대상의 감각화 (존재론적 은유)

오색실 니음 졀너 의 옷슬 못 하야도

                     성종 임금 / 님의 옷 - 정철 사미인곡에 영향

바다 가튼  님의 은혜 추호(秋毫)나 갑프리라


백옥 가튼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직희더니

결백함을 통해 억울함 호소 / 백옥- 단단함, 지조와 결백 의미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섯거치니

서울              시련/ 무오사화

일모수죽(日暮修竹)5)에 취수(翠袖)도 냉박(冷薄)할샤

해질 무렵에 밋밋한 대나무를 의지하여 서니 푸른 옷소매가 차갑구나

유란(幽蘭)을 것거 쥐고 님 계신 듸 바라보니

난꽃의 별명. 초란. / 지조와 절개 상징

약수(弱水)6)리진듸 구름길이 머흐러라.

장애물                      장애물    험하구나.

◈본사1 : 유배 생활의 처지와 임에 대한 그리움

다 썩은 닭긔 얼굴 첫맛도 채 몰나셔


초췌(憔悴)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러컨쟈.


천층랑(千層浪)7) ?가온대  백 척간8)에 올나더니

험한 물결 /과장                          불길하고 위험한 상황

무단(無端)한 양각풍(羊角風)이 환해(宦海)9) 중에 나리나니

아무 까닭없는/     회오리 바람 -무오사화를 의미함

끝없는-무단(無斷)

억만장 소희 ?져 하? ?흘 모?노다

과장

노나라10) 흐린 술희   한단(邯鄲)11)이 무슨 죄며

               노나라와 조나라의 한단은 서로 무관하다는 의미

진인(秦人)12)이 취? 잔에   월인(越人)13)이 우음 탓고

진인과 월인은 전혀 무관하다는 뜻             웃음을 웃은 탓인가?

성문(城門) 모딘 불옥석이 ?? ?니

              무오사화

? 압희 심은 이 반이나 이우레라.

            시적 화자           시드는구나


오동 졈은 비에 외기러기  우러 ?? 제

저물녘 오동잎에 내리는 비 / 감정이입

관산(關山) 만릿길이 눈에 암암 ?피? 듯


청련(靑蓮)시 고쳐 ?쉼? 팔도 한을 슷쳐 보니

이백의 시. 이백은 호를 스스로 ‘청련거사’라 했음

화산(華山)14)우? 새야 이별도 괴로왜라

                감정이입의 소재

망부(望夫) 산전에 석양이 거의로다

임금을 기림

기드로고 ?라다가 안력(眼力)이 진(盡)톳던가


낙화(洛花) 말이 업고 벽창(碧窓)이 어두으니


입 노른 삿기 새어이도 그리 건쟈.

임금을 그리는 화자     임금

팔월 추풍(秋風)이 ?을 거두우니

   임금의 은총을 상실하게 된 화자의 처지

?? 깃에 ?인 알이 수화(水火)를 못 면토다.

      동병상련의 처지 /  시련,무오사화


생리사별을 한 몸에 흔자 맡아

살아서 이별하고 죽어서 헤어짐

삼천장 백발(白髮)이 일야에 기도 길샤.

과장법 / 근심과 고뇌     하룻밤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자연적 배경/            물놀이하던    과거에 대한 회상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양(無恙)한가

                   배와 노     아무탈이 없는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15)를 겨우 지나


만 리 붕정(鵬程)16)을 머얼리 견주더니

      멀고도 험한 길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 강17)에 떨어진 듯


천지 가이없고 어안(魚雁)이 무정(無情)하니

                   물고기와 기러기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그리움의 대상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驛路)를 바라보니

시적화자/ 지조와 절개의 매개체

옥량 명월(玉樑明月)을 옛 보던 낯빛인 듯

옥 대들보에 걸린 밝은 달-과거에 아는 존재이자 그리움의 대상을 비유.  임금을 떠오리게 되는 연상의 매개체

양춘(陽春)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임금의 은총/ 유배 이전으로의 복귀

벽해(碧海)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태상(太上) 칠위 분이 옥진군자(玉眞君子) 명(命)이시니

가장 뛰어난 것. 천자       신선을 가리킴

천상 남루에 생적(笙笛)을 울리시며

                생황과 피리

지하 북풍(北風)의 사명(死命)을 벗기실까


죽기도 명(命)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진채지액(陳蔡之厄)18)성인도 못 면하며

             공자가 진과 채나라 땅에서 당한 횡액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잡혀 갇인 몸음 죄가 아님. 곧 죄없이 잡혔다는 뜻



오월 비상(飛霜)이 눈물로 어리는 듯

          서리

삼 년 대한(大旱)도 원기(寃氣)로 되었도다

           가뭄

초인남관(楚囚南冠)이 고금(古今)에 한둘이며

초나라 사람 종의과 남관을 쓰고 갇혔다 해서 ‘죄수’의 뜻으로 쓰임

백발황상(白髮黃裳)에 서러운 일도 하고 많다

고위직의 늙은 신하

건곤(乾坤)이 병이 들어 혼돈(混沌)19)이 죽은 후에


하늘이 침음(沈吟)20)할 듯 관색성(貫索星)이 비취는 듯

                              천한사람의 감옥. ‘관색구성’의 준말

고정의국(孤情依國)에 원분만 쌓였으니

유배지에서 나라만을 생각하는 충정애

차라리 할마(?馬)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한 눈이 먼 말

창창막막(蒼蒼漠漠)하야 못 믿을쏜 조화(造化)로다

                                         하늘의 이치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盜?)도21) 성히 놀고 백이(伯夷)22)도 아사(餓死)하니


동릉(東陵)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중국 호남성 악양현에 있는 땅이름

남화(南華) 삼십 편에 의론(議論)도 많기도 많구나

‘남화진경’의 준말. ‘장자’의 딴 이름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고을이름, 남가지몽의 옛일에서 한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음을 일컫게 됨.

고국 송추(故國松楸)를 꿈에 가 만져 보고

고국의 소나무와 오동나무

선인 구묘(丘墓)를 깬 후에 생각하니

선산, 무덤

구회간장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갈피갈피 여러 글이로 겹쳐진 속 마음/ 구곡간장(九曲肝腸)

장해음운(?海陰雲)23)에 백주(白晝)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鬼??)의 연수(淵藪)24)런지

                몰래 남을 해치는 물건. ‘음험한 사람’을 비유

이매망량(?魅??)25)이 실컷 젖은 가에

도깨비들과 둑어사니들

백옥(白玉)은 무슨 일로 청승(靑蠅)의 깃이 되고

                             쉬파리, 금파리  집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목란추국(木蘭秋菊)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첩여(?如)26) 소군(昭君)27)이 박명(薄命)한 몸이런가




군은(君恩)이 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임금의 총애

옥안이 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임금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28)같이 임자 없이 구니다가

비참한 화자의 처지                    굴러 다니다가

곤륜산(崑崙山) 제일봉에 만장송(萬丈松)이 되어 있어

                             시적화자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


윤회(輪回) 만겁(萬劫)29)하여 금강산 이 되어

                          시적화자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억울함과 답답함, 임에 대한 그리움의 호소

님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 본사 : 참혹하고 억울한 유배생활에 대한 임금의 처분을 바라는 내용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지조와 절개

설중(雪中)에 흔자 피어 침변(枕邊)에 이우는 듯

                              베갯머리

윌중소영(月中疎影)30)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성긴 그림자로 곧 외로운 그림자를 의미 / 시적화자의 분신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자기 위안과 호소

동풍이 유정(有情)하여 암향(暗香)을 불어 올려

화자의 마음을 아는 존재    매화향기 -임을 향한 화자의 마음, 지조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저

죄가 없음, 결백함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흔자 띄워


백구(白溝)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한강을 이름              천자의 궁궐/임금이 계신 곳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높고 큰 문이라는 뜻으로 대궐 또는 조정

내 묻은 누역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연기를 씌어 검어진 도롱이 속에, 곧 가난하여 누추한 곳에서

일편장안(一片 長安)을 일하(日下)에 바라보고


외로 머뭇거리며 옳이 머뭇거리며 


이 몸의 탓이런가


이몸이 전혀몰라  천도막막하니

            하늘의 이치가 아득하여 알 수가 없으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섬긴 뜻올


주공(周公)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이 되고 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가 되고 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 알이 곧 있으면


백세교유(百歲交遊) 만세상감(萬世相感)하리라.


◈결 :임의 사랑에 대한 회의와 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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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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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분가

                        조  위


천상 백옥경 십이루 어디멘고

오색운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렸으니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차라리 죽어져서 억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이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삼청 동리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바람에 흘리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흥중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의 후신인가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의 넋이런가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  

남 없는 님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꿈조차 향기롭다

옥색실 이음 짧아 님의 옷을 못하 여도

바다 같은 님의 은혜 추호나 갚으리라 

백옥같은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치니 

일모수죽에 취수도 냉박하구나

유란을 꺾어 쥐고 님 계신 데 바라보니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리 되었구나

천층랑 한가운데 백 척간에 올랐더니  

무단한 양각풍이 환해 중에 내리나니

억만장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이울었구나

오동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 보니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 산전에 석양이 거의 로다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이 다했던가  

낙화 말이 없고 벽창이 어두우니

입 노란 새끼새들 어미도 그리는구나  

팔월 추풍이 띠집을 거두니

빈 깃에 싸인 알이 수화를 못 면하도다 

생리사별을 한 몸에 흔자 맡아

삼천장 백발이 일야에 길기도 길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양한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만 리 붕정을 머얼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 강에 떨어진 듯

천지 가이없고 어안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를 바라보니   

옥량명월을 옛 보던 낯빛인 듯

양춘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벽해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태상 칠위 분이 옥진군자 명이시니

천상 남루에 생적을 울리시며  

지하 북풍의 사명을 벗기실까

죽기도 명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하며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오월 비상이 눈물로 어리는 듯

삼 년 대한도 원기로 되었도다   

초수남관이 고금에 한둘이며

백발황상에 서러운 일도 하고 많다   

건곤이 병이 들어 흔돈이 죽은 후에

하늘이 침음할 듯 관색성이 비취는 듯 

고정의국에 원분만 쌓였으니

차라리 할마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창창막막하야 못 믿을쏜 조화로다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도 성히 놀고 백이도 아사하니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남화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고국 송추를 꿈에 가 만져 보고

선인 구묘를 깬 후에 생각하니   

구회간장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장해음운에 백주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의 연수런지

이매망량이 실컷 젖은 가에 

백옥은 무슨 일로 청승의 깃이 되고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하늘 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목란추국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첩여 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군은이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안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같이 임자 없이 굴러 다니다가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이 되어 있어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

윤회 만겁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님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설중에 흔자 피어 참변에 이우는 듯 

윌중소영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동풍이 유정하여 암향을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저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흔자 띄워

백구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내 묻은 누역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외로 머뭇거리며

이몸의 탓이런가 이몸이 전혀몰라

천도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섬긴 뜻올  

주공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아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 알이 곧 있으면

백세교유 만세상감하리라.



[ 핵심 정리 ]

* 지은이 : 조위(1454-1503, 매계.梅溪) - 성종 5년 문과 급제, 성종의 총애를 받음.  호조

        참판,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겸 부제관(연산군때). 연산군때 [성종실록] 편찬

        도움. 연산군 4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무오사화를 만나 의

        주에서 잡혀 흡천에 유배. 연산 9. 49세로 유배지에서 병사

* 구성 : 서사, 본사, 결사

        - 서사 : 적소에서 왕에게 흉중에 쌓인 말씀을 실컷 호소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고

                  하는 동기

        - 본사 : 사화로 인해 전일의 영화가 현재의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

                 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황제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자기를 굴원에 비유)

        - 결사 :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 제 뜻을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평생을 함께 사귀고 싶다고 함

* 주제 :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

* 의의 : 작자가 1498년(연산군4)의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전남 순천(順天)으

        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

        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오

        래된 유배가사이다.



[ 이해와 감상 ]

- 해설 1 -

  조 선 연산군 때 조위(曺偉)가 지은 유배가사. 국한문혼용체.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이며,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루고 23조, 24조 등도 더러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잡동산이 雜同散異≫ 제44책에 수록되어 전한다.

  작자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유배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지은 가사이다. 유배가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지은이가 사화에 연루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에서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屈原)의 〈천문 天問〉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 해설 2 -

  ' 만분가'는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인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 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작자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비분강개한 심정을 임금인 성종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죄 없이 쫓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듯이 자신도 죄 없이 귀양 와있다는 것이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희생된 문신(文臣)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유배가사의 효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 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 가있는 작자는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 등이 모두 '만분가'의 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유배가사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루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분가'는 유배가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과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텅 빈 성엔 [조각달] 떠 있고

천 년의 구름 아래 바위는 늙었네.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天孫)*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돌계단에 기대어 길게 휘파람 부노라니

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 이색 <‘부벽루’>

* 천손 :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을 가리킴.


(나) 귓도리 져 귓도리 에엿브다 져 귓도리

 어인 귓도리 지는 [달] 새는 밤의 긴 소릐 쟈른 소릐 절절(節節)이 슬픈 소릐 제 혼자 우러 녜어 사창(紗窓) 여왼 잠을 살드리도 깨오는고야

 두어라 제 비록 미물(微物)이나 무인동방(無人洞房)에  내 뜻 알리는 너뿐인가 하노라.

 - 작자 미상 <사설시조>


(다)  천층랑* 한 가운데 백척간에 올랐더니

 ⓐ무단한 회오리 바람이 환해* 중에 나리나니

 억만 장(丈)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것네.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고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뜰 앞에 심은 난(蘭)이 반이나 시들었네.

 오동 저문 날 비에 외기러기 우러옐 제

 관산 만리 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 한을 스쳐 보니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望夫) 산전(山前)에 석양이 거의로다.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眼力)이 다했던고

 낙화 말이 없고 벽창(碧窓)이 어두우니

 입 노란 새끼 새들 어미를 그리누나!

 ⓒ팔월 추풍(秋風)이 띠집을 거두니

 빈 깃에 쌓인 알이 물불을 못 면하네.

 생리 사별(生離死別)을 한 몸에 혼자 맡아

 삼천 장(丈) 백발이 일야(一夜)에 기도 길샤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벗들아!

 강천 지는 해에 배는 탈이 없는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만 리 붕정(鵬程)을 멀리곰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딪쳐 흑룡강에 떨어진 듯

 천지 가이 없고 어안(魚雁)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년지고

 매화나 보내고져 역로(驛路)를 바라보니,

 옥량* [명월]을 예 보던 낯빛인 듯

 ⓔ양춘을 언제 볼고 눈비를 혼자 맞아

 벽해 넓은 가에 넋이 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눌 위하야 적시는고.

                              - 조위 <‘만분가’에서>

*천층랑 : 험한 물결.  *환해 : 관리의 사회.  *옥량 : 옥대들보.


1. (가)~(다)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연물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②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무상감에 젖어 있다.

③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④ 과장된 표현으로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⑤ 화자의 시선이 내면에서 외부로 옮아가고 있다.



2.  (가)~(다)의 ‘달’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의 ‘조각달’은 결핍의 의미를, (나)의 ‘달’은 충만의 의미를 담고 있다.

② (가)의 ‘조각달’은 쓸쓸한 상황을, (다)의 ‘명월’은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③ (나)의 ‘달’은 정적인 느낌을, (다)의 ‘명월’은 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④ (가), (나)의 달은 관념적 존재이나, (다)의 달은 실제적 존재이다.

⑤ (가)~(다)의 달은 모두 차가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3. (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초월적 존재에 기대어 소망을 이루려 하고 있다.

② 공간적 배경이 시작(詩作)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

③ 세월의 흐름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④ 인간사와 자연을 대비하여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⑤ 구체적 행위를 통해 화자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4. 수업 시간에 (나)를 바탕으로 평시조 짓기를 하려고 한다. 주어진 조건을 가장 잘 반영하여 지은 것은?

<보기> 

※ 원시(原詩)의 주제 의식을 살릴 것.

※ 비유적 표현을 사용할 것.

① 가을 밤 달빛 아래 귀뚜리 귀뚤귀뚤

   떠나 간 내 님 얼굴 살며시 떠오르네.

   무정타 떠나간 내 님 소식 한 자 없나뇨.

② 집 떠난 석 삼 년에 내 마음 둘 데 없어

   동산에 난 초승달에 고향 소식 묻자 하니

   무심타 저 구름 속에 문 닫고 들어가네.

③ 지나는 바람에 님인가 여겨 나서 보니

   감나무 가지 사이 달빛만 환하구나.

   두어라 달빛 속에나 내 님 모습 보리라.

④ 집 잃은 두견이 무슨 미련 저리 많아

   이 골짝 저 골짝 오명가명 슬피 우나.

   저 두견 내 마음 같아 골골이 울고 가네.

⑤ 꽃 피면 온다 하던 어여쁜 우리 님아

   꽃 져도 아니 오니 차가운 방 홀로 지키네.

   긴긴 밤 잠 못 이룬 채 나무 되어 서 있네.

 

 

5. <보기>의 내용을 참조할 때, (다)의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조위는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전라도 순천으로 유배 가게 되었다. 그는 끝내 유배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는데, 이때에 임금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을 그린 작품이 바로 ‘만분가’이다.

① ⓐ : 작자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조정에 불어  친 정치적 파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② ⓑ : 무오사화 당시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로 볼 수 있다.

③ ⓒ : 임금의 사랑을 잃고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작자 자신의 처지로 해석할 수 있다.

④ ⓓ : 무오사화의 화(禍)를 면하기 위해 작자 자신과 동료들이 함께 피난했던 상황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 : 유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작자 자신이 유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답>

1. ①    2. ②    3. ①    4. ⑤    5.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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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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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과 《유한라산기》


최익현(崔益鉉 : 1833 순조 33∼1906)

한말의 애국지사.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 경기도 포천 출신. 대(垈)의 아들.

6세 때 입학하여 9세 때 김기현(金琦鉉)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고, 14세 때 벽계(蘗溪)에 은퇴한 성리학의 거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격몽요결(擊蒙要訣)》·《대학장구(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 등을 통하여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으며, 이항로의 '애군여부 우국여가(愛君如父 憂國如家)'의 정신, 즉 애국과 호국의 정신을 배웠다.

1855년(철종 6)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출사한 이후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신창현감(新昌縣監)·성균관직강·사헌부장령·돈녕부도정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1870년(고종 7)에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수봉관·지방관·언관으로 재직시 불의와 부정을 단호히 척결하였으며, 1868년에는 경복궁(景福宮) 재건을 위한 대원군의 비정을 비판, 시정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상소를 통해 우리는 그의 강직성과 우국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또, 1873년에는, 1871년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대원군이 그 위세를 몰아 만동묘(萬東廟)를 비롯한 많은 서원의 철폐를 단행하자, 그 시정을 건의하는 <계유상소(癸酉上疏)>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상소를 계기로 대원군의 10년 집권이 무너지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고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면암은 호조참판에 제수되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권신들은 대원군 하야를 부자이간의 행위로 규탄하였다. 이에 <사호조참판겸진소회소(辭戶曹參判兼陳所懷疏)>를 올려 민씨 일족의 옹폐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상소의 내용이 과격, 방자하다는 이유로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873년부터 3년간의 유배 생활을 청산하면서 <유한라산기>를 지었다. 이후, 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우국 애민의 위정 척사의 길을 택하였다. 그 첫 시도는 1876년 <병자지부소(丙子持斧疏)>를 올려 일본과 맺은 병자수호조약을 결사 반대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이 상소의 여파로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나 그 신념과 지조는 꺾지 않았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날 때까지 약 20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 시기는 일본과의 개국 이래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운동·청일전쟁 등 여러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때였다. 기나긴 침묵 속에서 그는 역사적 위기 상황을 극복할 방법, 항일 투쟁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후 그는 언론 수단에 의한 개인적·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집단적·무력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위정 척사 사상도 배외적인 국수주의로부터 자주 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그의 항일 구국 이념은 1895년 을미사변의 발발과 단발령의 단행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오랜만의 침묵을 깨고 <청토역복의제소(請討逆復衣制疏)>를 올려 항일 척사 운동에 앞장섰다. 이 때 여려 해에 결쳐 고종으로부터 호조판서·각부군선유대원(各府郡宣諭大員)·경기도 관찰사 등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는 오로지 시폐의 시정과 일본을 배격할 것을 상소하는 것으로 그 소명을 다하고자 하였다. 당시 올린 상소는 1896년 <선유대원명하후진회대죄소(宣諭大員命下後陳懷待罪疏)>, 1898년 <사의정부찬정소(辭議政府贊政疏)>와 재소, <사궁내부특진관소(辭宮內府特進官疏)>와 재소, 1904년 <사궁내부특진관소>의 삼소·사소, <수옥헌주차(漱玉軒奏箚)>, <궐외대명소(闕外待命疏)>와 재소·삼소·사소 등이 있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곧바로 <청토오적소(請討五賊疏)>와 재소를 올려서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할 것과 망국조약에 참여한 박제순(朴齊純) 등 오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 수단에 의한 위정 척사 운동은 집단적·무력적인 항일 의병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1906년 윤4월 전라북도 태안에서 궐기하고,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려 의거의 심정을 피력하고 궐기를 촉구하는 <포고팔도사민>의 포고문을 돌리고 일본 정부에 대한 문죄서 <기일본정부(寄日本政府)>를 발표하였다. 7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진충보국(盡忠報國)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지 대마도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우국 애민 정신과 위정 척사 사상은 한말의 항일 의병 운동과 일제 강점기의 민족 운동·독립 운동의 이념으로 계승되었다.

그의 학문은 성리학에 기본을 두고 있는 이항로의 학문을 이어받아, 이기론(理氣論)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심보다는 애국의 실천 도덕과 전통 질서를 수호하는 명분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기론은 이항로의 설을 조술하고 스승의 심전설(心專說)을 계승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이념은 역사적 현실에 바탕을 둔 실천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구국 애국 사상으로, 또 민족주의 사상으로 승화, 발전할 수 있었다.

저서는 《면암집》40권, 속집 4권, 부록 4권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제향은 모덕사(慕德祀 : 충남 청양군)와 포천·해주·고창·곡성·순화·무안·함평·광산·구례 등에서 봉향되고 있다.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

<해제>

이 글은 최익현이 제주도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던 해 봄에 한라산을 유람하고 그 진면목을 밝혀 적은 한라산 탐승기로 《면암집》권 20 '기(記)' 부분에 한문으로 실려 있다.

<본문>

최익현(崔益鉉)

민태식(閔泰植) 옮김

고종(高宗) 10년 계유년(癸酉年) 겨울에, 나는 조정에 죄를 지어 탐라(耽羅)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하루는, 섬사람들과 산수(山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말하기를,

"한라산의 명승은 온 천하가 다 아는 바인데도 읍지(邑誌)를 보거나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구경한 이가 아주 적으니, 이는 못 가는 것인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인가?"

하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이 산은 4백 리에 뻗쳤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서, 5월에도 눈이 녹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정상에 있는 백록담(白鹿潭)은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으로, 아무리 맑은 날이라 할지라도 항시 흰 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세상에서 영주산(瀛洲山)이라 일컫는 곳으로서,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에 들어가는데, 어찌 범상한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하므로,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놀랐다.

그 후, 고종 12년 을해년(乙亥年) 봄에, 나라의 특별한 은전(恩典)을 입어 귀양살이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래서 한라산을 찾을 계획을 하고, 이기남(李琦男) 선비에게 길을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일행은 어른이 10여 명에 짐꾼 5, 6명이 뒤를 따랐다.

3월 27일, 남문(南門)을 출발하여 10리쯤 가니 길가에 시냇물이 흐르는데, 이는 한라산 북쪽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여서 바다로 들어가는 시내였다. 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 벼랑을 따라 수십 보를 내려가니, 양쪽 가에 푸른 암벽이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그 가운데에 큰 돌이 문 모양으로 걸쳐 있는데, 그 길이와 넓이는 수십 인을 수용할 만하며, 높이도 두 길은 되어 보였다. 그 양쪽 암벽에는 '방선문등영구(訪仙門登瀛丘)'란 여섯 자가 새겨져 있고, 또 옛 사람들의 제품(題品)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라산 10경(景) 중의 하나이다. 문의 안팎과 위아래에는 맑은 모래와 흰 돌들이 잘 연마(鍊磨)되어 그 윤기가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하였고, 수단화(水團花)와 철쭉꽃이 좌우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데, 바야흐로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어, 이 또한 비길 데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이런 풍경에 취해 한참 동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다시 언덕으로 올라와 동쪽으로 10리쯤 가니 죽성(竹城)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즐비(櫛比)한 인가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날이 저물어 어느 큰 짐에 숙소를 정했다. 하늘이 컴컴하고 바람이 자는 게 비가 올 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짐꾼에게 날씨를 물었더니, 어제 초저녁보다 오히려 더 심하다는 대답이었다. 또, 바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술 한 잔과 국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일행의 의사를 어기고 말을 채찍질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돌길은 험하고도 좁았다. 5리쯤 가니 큰 언덕이 나타나는데, 이름이 중산(中山)으로, 대개 관원들이 산을 오를 적에 말에서 내려 가마로 바꾸어 타는 곳이었다.

여기에 이르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비치어 바다와 산들이 차례로 자태를 드러내기에, 짐꾼을 시켜 말을 돌려 보내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서 올라갔다. 집 주인 윤규환(尹奎煥)은 다리가 아파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일렬로 내 뒤를 따랐다.

한 줄기 작은 길이, 나무꾼과 사냥꾼들의 내왕으로 약간의 형태는 있었지만, 갈수록 험준하고 좁아서 위태로웠다. 구불구불 돌아서 20리쯤 가니, 짙은 안개는 다 걷히고 날씨가 활짝 개었다. 그러자 일행 중 당초에 가지 말자던 사람들이 날씨가 좋다고 하므로, 나는

"이 산 구경을 중도에서 그만두자고 한 것이 모두 그대들이었는데, 어지 조용히 삼가지 않는가?"

하였다. 여기서 조금 앞으로 나가니, 바위 틈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굽이굽이 아래로 흘러간다. 평평한 돌 위에 잠시 앉아 갈증을 푼 뒤에, 물줄기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 비탈진 돌길을 넘고 돌아서 남쪽으로 가니, 고목을 덮은 푸른 등나무 덩굴과 어지럽게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리고 길을 막아서 앞으로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데를 10여 리쯤 가니, 가느다란 갈대가 숲을 이루었는데, 그 아름다운 기운이 사람을 엄습해 왔으며, 또 앞도 확 트여서 바라볼 만하였다.

다시 서쪽으로 1리쯤 가니, 우뚝 솟은 석벽이 대(臺)처럼 서 있는데, 뾰쪽하게 솟은 것이 수천 길은 되어 보였다. 이는 삼한(三韓) 시대의 봉수(烽燧) 터라고 하지만,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없고, 또 날이 저물까 염려되어 가 보지 못하였다.

다시 몇 걸음 더 나아가니, 가느다란 골물이 흐른다. 물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니 빙설(氷雪)이 가파른데, 잡목들이 뒤엉켜 있어 머리를 숙이고 기어가느라고 몸의 위험이나 지대가 높은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렇게 기다시피 6, 7리를 가니 비로소 상봉(上峯)이 보이는데, 흙과 돌이 서로 섞이고 평평하지도 비탈지지도 않으며 원만(圓滿)하고 풍후(yn厚)한 봉우리가 가까이 이마 위에 있었다. 거기에는 초목은 나지 않았고 오직 파릇한 이끼와 덩굴만이 바위에 깔려 있어서 앉아 쉴 만하였으며, 전망이 넓게 트여서 해와 달을 옆에 끼고 비바람을 다스릴 만할 뿐 아니라, 의연히 세상의 일을 잊고 홍진(紅塵)에서 벗어난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짙은 안개가 몰려오더니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등성이를 휘감았다. 나는 괴이하게 여겼지만, 이 곳까지 와서 한라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골이 되고, 섬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굳게 먹고 곧장 수백 보를 전진해 가서 북쪽 가의 우묵한 곳에 당도하여 상봉(上峯)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이르러, 갑자기 가운데가 움푹 파인 구덩이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백록담(白鹿潭)이었다. 주위가 1리를 넘고 수면이 담담(淡淡)한데, 그 반은 물이고, 반은 얼음이었다. 홍수나 가뭄에도 물이 붇거나 줄지를 않는다 하는데, 얕은 곳은 무릎까지,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찼으며, 맑고 깨끗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으니, 은연(隱然)히 신선이 사는 듯하였다. 사방을 둘러싼 산각(山角)들도 높고 낮음이 다 균등하였으니, 참으로 천부(天府)의 성곽(城郭)이었다.

석벽에 매달려 백록담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잠시 동안 휴식(休息)을 취하였다. 모두 지쳐서 피곤(疲困)했지만, 서쪽을 향해 있는 봉우리가 이 산의 정상이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나 따라오는 사람은 겨우 셋뿐이었다. 이 봉우리는 평평하게 퍼지고 넓어서 그리 까마득하게 높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위로는 별자리를 바라보고 아래로는 세상을 굽어보며, 좌로는 해돋이를 바라보고 우로는 서양(西洋)을 접했으며, 남으로는 소주(蘇州 : 쑤저우), 항주(杭州 : 항저우)를 가리키고, 북으로는 내륙(內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옹기종기, 큰 것은 구름장만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하게 보이는 등 풍경이 천태 만상이었다.

'맹자'에 "바다를 본 자는 바다 이외의 물은 물로 보이지 않으며,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 했는데, 성현의 역량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 소동파(蘇東坡)에게 이 산을 먼저 보게 하였다면, 그의 이른바

허공에 더 바람을 다스리고, [憑虛御風]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 [羽化登仙]

라는 시구가 적벽(赤壁)에만 알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자(朱子)가 읊은

낭랑하게 읊조리며 축융봉을 내려온다. [朗吟飛下祝融峯]

라는 시구를 외며 백록담 가로 되돌아오니, 짐꾼들이 이미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놓았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데, 물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나는 일행을 둘러보며 말하기를,

"이 맛은 금장옥액(金漿玉液)이 아니냐?"

하였다. 북쪽으로 1리쯤 떨어진 곳에 혈망봉(穴望峯)과 옛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 있다 하는데, 해가 기울어 가 보지 못하고, 산허리에서 옆으로 걸어 동쪽으로 석벽을 넘는데, 벼랑에 기미처럼 붙어서 5리쯤 내려갔다. 다시 산남(山南)으로부터 서지(西趾)로 돌아들다가 안개 속에서 우러러보니, 깎은 듯이 하늘에 치솟아 있는데, 기괴하고 형형색색인 것이 석가여래가 가사(袈裟)와 장삼(長衫)을 입은 형용이었다.

20리쯤 내려가니 이미 황혼(黃昏)이 되었다. 내가

"듣건대, 여기서 인가까지는 매우 멀다 하여, 밤 공기도 그리 차지 않으니, 가다가 길거리에 피곤해서 쓰러지는 것보다 차라리 노숙하고서 내일 홀가분하게 가는 것이 어떤가?"

하니, 일행 모두가 좋다고 하였다. 바위에 의지해서 나무를 걸치고 모닥불을 피워 따뜻하게 한 뒤에, 앉은 채로 한잠 자고 깨어 보니, 벌써 날이 새어 있었다. 밥을 먹고 다시 출발했는데, 어젯밤 이슬이 마르지 않아 옷과 버선이 다 젖었다. 얼마 후, 길을 잃어 이리저리 방황하였는데, 그 고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어서 어제에 비하면 평지를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10리를 내려와서 영실(瀛室)에 이르니,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우뚝우뚝한 괴석(怪石)들이 웅위(雄偉)하게 늘어서 있는데, 모두가 부처의 형태였으며, 백이나 천 단위로는 헤아릴 수사 없었다. 여기가 바로 천불암(千佛巖) 또는 오백 장군(五百將軍)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산남(山南)에 비하면 이 곳이 더욱 기이하고 웅장하였다. 산 밑에 시내 하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는데, 다만 길가에 있기 때문에 얕게 드러나 있었다. 풀밭에 앉아서 얼마쯤 쉬다가 이내 출발하여 20리를 걸어 서동(西洞)의 입구를 나오니, 영졸(營卒)들이 말을 끌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인가에 들어가서 밥을 지어 요기(療飢)를 하고, 날이 저물어서 성으로 돌아왔다.

백두산이 남으로 4천 리를 달려 영암(靈巖)의 월출산(月出山)이 되고, 다시 남으로 달려 해남(海南)의 달마산(達摩山)이 되었으며, 달마산은 또 바다로 5백 리를 건너뛰어 추자도(楸子島)가 되었고, 다시 5백 리를 건너서 이 한라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산은 서쪽으로 대정현(大靜縣)에서 일어나 동으로 정의현(旌義縣)에서 그치고, 가운데가 솟아올라 정상이 되었는데, 동서의 길이가 2백 리이고, 남북의 거리가 1백 리를 넘는다.

어떤 이는 이 산이 지극히 높아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만해서 한라산이라 부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 산의 성품이 욕심이 많아서, 그 해 농사의 풍흉(yn凶)을 관장(官長)의 청탁(淸濁)으로 알아서, 외래 선박이 정박(碇泊)하면 번번이 비바람으로 패실하게 하므로 탐산(耽山)이라 이른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이 산의 형국이 동쪽은 말, 서쪽은 곡식, 남쪽은 부처, 북쪽은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나, 다 근거(根據) 없는 말들이다. 그 중에서 오직 형국설(形局說)만을 가지고 그 유사점을 찾아본다면, 산세가 구부러졌다가 펴지고 높았다가 낮아지는 것이 마치 달리는 듯한 것은 말과 유사하고, 위암(危巖)과 층벽(層壁)이 죽 늘어서서 두 손을 마주잡고 읍하는 듯한 것은 부처와 유사하며, 평평하고 광막한 곳에 산만하게 활짝 핀 듯한 것은 곡식과 유사하고, 북을 향해 껴안은 듯한 곱고 수려한 산세는 사람과 유사하다. 그래서 말은 동쪽에서 생산되고, 곡식은 서쪽이 잘 되며, 불당은 남쪽에 모였고, 인걸은 북쪽에 많다던가…….

 

Posted by 부엉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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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가

홍순학

 

 

 

  총 3,924구로 된 장편 기행 가사로 고종 3년(1866)에 고종이 왕비를 맞이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중국에 사신을 보낸 진하사은겸주청사행(進賀謝恩兼奏請使行)에, 지은이 홍순학이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가서 북경에 갔다가 온 130여 일 간의 여정과 견문을 노래한 작품이다.

 가 사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편인 까닭으로 노정이 자세하고 서술 내용이 풍부하며, 치밀한 관찰력으로 대상을 자세하고도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생동감을 준다. 고사 성어나 한자의사용을 억제하고 순 한글로 기록하여 서민 계층의 독자를 겨냥한 것은 조선 후기 가사의 한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와 더불어 조선 후기 기행 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 갈래: 가사[양반가사, 후기 가사, 기행 가사, 사행 가사(使行歌辭)]

◈ 연대: 1866(고종 3년)

◈ 별칭: '병인 연행가(丙寅燕行歌)', 북원록(北轅錄)', '연행록(燕行錄)'

◈ 율격: 4·4조, 4음보격을 기조로 한 가사체

◈ 성격: 사실적, 비판적, 묘사적, 서사적. 보고형식

◈ 서술상 특징

    * 치밀한 관찰력으로 대상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 형식은 운문이나 내용은 관찰, 보고로서 산문에 가깝다.

    *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생동감을 준다.

    * 고사 성어나 한시 구절보다는 소박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 견문 중심으로 기술되어 전체적으로 사고의 깊이가 떨어진다.

◈ 필자의 태도

    * 문화적 우월 의식과 오랑캐에 대한 경멸감.

    * 선진 문물에 대한 부러움 및 경이감

    *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한 신기함

  

 

홍 순학이 지은 이 작품은 중국을 다녀 온 내용을 적은 것으로, 중국에 가는 목적이 주로 사행(使行)이었으므로 이런 내용을 가진 작품들을 가리켜 사행 가사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양반 가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후기 가사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작품의 길이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내 용은, 고종의 왕비를 책정한 일로 고종 3년(1866)에 중국에 사신을 보낸 진하사은 겸주청사행(進賀謝恩兼奏請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 온 것을 노래한 가사 작품이다. 일행이 4월 9일 서울을 출발하여 6월 6일 북경에 당도하고 40일 간의 부경 체류 후 8월 23일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30여일 간의 여정에서 보고 들은 바를 기술하였다.

 작 품의 시작은 서울을 떠나 모화관, 무악재, 홍제원, 녹번, 박석, 구파발, 창릉내, 고양, 파주목, 임진강, 진서루, 장단부, 송도, 만월대, 선죽교, 청석관, 금천, 청단역, 돌여울, 평산부, 곡산부, 중화참, 총수관, 서흥부, 검수관, 봉산군, 사인암, 황주, 월파루, 중화부, 이천역, 대동역, 평양에 이르며, 평양에서 연광정, 부벽루, 대동문, 청류벽, 전금문, 영명사, 칠성문, 기자문 등을 돌아본 뒤 순안현, 숙천부, 안주성, 만경루, 백상루, 청천강, 박천, 가산, 샛별령, 납청정, 정주성, 북장대, 곽산군, 선천부, 위검정, 동림진, 차련관, 철산, 서림진, 양채관, 용천, 청류암, 석계교, 소곶관 등을 거쳐 의주 들어가 취승당과 통군정을 구경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다음이 교과서에 실린 부분인데, 압록강 도강 장면에서 시작하여 구련성, 금석산, 온정평을 거쳐 봉황성에 이르러 보게 된 호인(好人)의 인상, 남녀의 모습, 옷차림, 가옥 구조, 식생활, 짐승치기, 육아법, 베짜기 등을 묘사한 것이다.

 그 뒤에는 북경에 이르기까지의 도정과 북경에서 보고 느낀 점을 담고 있고, 다시 돌아오는 노정을 따라 중국 풍물의 묘사가 이어진다. 압록강을 건너기까지는 고국의 산천과 거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있게 묘사하였으며, 도강 이후는 중국의 제반 풍물·세태·자연 풍치 등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려 내었다.

 

 

본 관 남양(南陽). 자 덕오(德五). 1857년(철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수찬관을 거쳐 1866년(고종 3)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장편의 기행가사(紀行歌辭) 《연행가(燕行歌)》를 지었다. 대사헌 ·대사간 ·예조참의를 지내고 1884년 감리인천항(監理仁川港) 통상사무가 되고 이듬해 인천부사(仁川府使)를 겸임하였으며, 그 뒤 협판교섭(協辦交涉) 통상사무를 지냈다.

 

 

♧ 편방: 한쪽을 치우친 곳, 곧 우리 나라                   ♧ 가례봉: 민치록의 딸을 왕비로 책봉한 일

♧ 상국: 청나라 ♧ 쥬청: 임금께 상주하여 청원함      ♧ 상: 사신의 수석. 정사(政使)

♧ 뉴 승상: 우의정 유휴조를 말함                             ♧ 셔시랑: 예조시랑 서당보를 말함

♧ 어: 삼사(三使)에 드는 사람으로, 왕명에 의해 특별한 임무를 띠고 파견되는 임시직

♧ 셔장관: 삼사의 하나로서, 여기서는 지은이 자신을 가리킴

♧ 겸집: 겸직의 잘못                                               ♧ 사복 판 : 말[馬]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판사

♧ 어영 낭청: 조선시대 군부를 맡아보던 관청의 당사관

♧ 쇼년 공명: 일찍 출세함

  

 

아 아, 하늘과 땅 사이에 남자 되기가 쉽지 않다. 변방에 위치한 나라에 사는 내가 중국 보기를 원했더니, 고종 3년 3월에 가례 책봉이 되오시니, 국가의 큰 경사요 백성의 복이라. 청나라에 청원하기 위해 세 명의 사신을 뽑아 내시니, 정사에는 우의정 유후조요, 부사에는 예조 시랑 서당보로다. 일행 중에 어사인 서장관은 직책이 소중하구나. 겸직으로 사복 판사와 어영 낭청을 하였으니, 이 때의 나이가 이십오 세라 이른 출세가 장하구나.

▶ 가례 책봉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기쁨

 

 

♧ 도강: 강을 건넘

♧ 방물: 감사나 수령이 임금께 바치던 그 고장의 산물, 여기서는‘청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봉물’을 말함

♧ 다담상: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차린 상                      ♧ 젼별: 잔치를 베풀어 작별함

♧ 상별곡: 조선의 12가사 중 하나로 남녀간의 그리움을 노래한 것

♧ 장계: 감사나 출장 관원이 임금에게 보고하는 글        ♧ 더리고: 떨뜨리고. 거만하게 뽐내고

♧ 거국지회(去國之懷): 나라를 떠나는 감회                   ♧ 그음업셔: 한이 없어

♧ 홍상: 여인이 입는 붉은 치마, 곧, 아름다운 여인을 비유함

♧ 뉵인교: 여섯 사람이 메는 가마

♧ 장독교: 뒤는 벽처럼 되고, 양 옆은 창이며, 뚜껑은 지붕처럼 된 가마

♧ 등 : 미리 준비하고 기다림                                   ♧ 젼 : 벼슬아치의 행차 때 앞을 인도하는 하인

♧ 토인:‘통인’의 오자(誤字)                                           ♧ 좌견: 말에 다는 긴 고삐

♧ 공형:‘삼공형’의 준말. 호장, 이방, 수형리를 이름         ♧ 급창: 관아에서 부리던 사내 종

♧ 마두: 역마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 셔 : 각 역에서 일하던 벼슬아치

 

여 름 5월 7일이 압록강을 건너는 날짜로 정해졌네. 가지고 갈 물건을 점검하고 여행 장비를 잘 정돈하여 압록강가에 다다르니 송객정이 여기로구나. 의주 부윤이 나와 앉아서 다담상을 차려 놓고, 세 사신을 전별하는데 구슬프기도 한이 없다. 한 잔 한 잔 또 한잔으로 서로 앉아 권고하고, 상사별곡 한 곡조를 차마 듣기 어려워라. 장계를 봉투에 넣어 봉한 후에 떨뜨리고 일어나서, 나라를 떠나는 감회가 한이 없어서 억제하기 어려운 중 여인의 꽃다운 눈물이 마음 속의 회포를 더하게 하는구나. 육인교를 물려 놓으니 장독교를 대령하고, 가마 앞 통인이 하직하니 일산과 말고삐만 있고, 삼공형과 급창이 물러서니 마두와 서자만 남았구나.

 

♧ 소션: 자그마한 배                                               ♧ 요요고: 멀어 아득하고

♧ 광 : 햇살의 빛깔                                            ♧ 비치 못 : 비하지 못할

♧ 츌셰: 세상에 내어남

♧ 시: 부모나 조부모가 살아 계시어 모시고 있는 사람. 또는 그 처지

♧ 이측: 부모의 곁을 떠남                                       ♧ 이위졍: 부모님 곁을 떠나는 정

역: 여행의 괴로움                                           ♧ 양국지경: 두 나라의 경계

♧ 난화스니: 나누었으니                                         ♧ 구연셩: 만주 압록강 연안에 있는 옛 성

♧ 통군졍: 평안 복도 의주군 압록강변에 있는 정자 이름           ♧ 쥬금: 조금

♧ 무인지경: 사람이 없는 곳                                    ♧ 울밀: 나무가 빽빽하고 조밀함

♧ 발인의 : 버린 땅에                                         ♧ 왕왕: 끝없이 넓고 깊음

♧ 호포지환: 호표지환(虎豹之患)의 오기인 듯. 호랑이와 같은 맹수에게 당하는 해(害)

 

 

 한 조각 자그마한 배를 저어 점점 멀리 떠서 가니, 푸른 봉우리는 겹겹으로 쌓여 나를 보고 즐기는 듯, 흰구름은 멀리 아득하고 햇살의 빛깔이 참담하다. 어디에도 비하지 못할 이내 마음 오늘이 무슨 날인가?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부모님을 모시고 자라나서 평소에 부모님 곁을 떠나서 오래 있어 본 적이 없다. 반년이나 어찌할 것인가? 부모님 곁을 떠나는 마음이 어려우며, 경기도 경계를 백 리 밖으로 벗어나 다녀 본 일이 없다. 허약하고 약한 기질에 만 리 여행길이 걱정일세, 한 줄기 압록강이 두 나라의 경계를 나누었으니 돌아보고, 돌아보니 우리나라 다시 보자. 구련성에 다다라서 한 고개를 넘어서니 아까 보던 통군정이 그림자도 아니 보이고, 조금 보이던 백마산이 봉우리도 아니 보인다. 백여 리나 되는 사람 없는 곳에 인적이 고요하다. 위험한 만 겹의 산중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며 적막한 새 소리는 곳곳에 구슬프고, 한가한 들의 꽃은 누구를 위해 피었느냐? 아깝도다. 이러한 꽃 두 나라가 버린 땅에, 사람도 아니 살고 논밭도 없다 하되, 곳곳이 깊은 골짜기에서 닭과 개 소리가 들리는 듯, 끝없이 이어지는 험한 산세 범과 표범에게 해를 입을까 겁이 난다.

 

 

♧ 쥬방: 음식을 만들거나 차리는 곳                             ♧ 즁화: 길을 가다가 먹는 점심

♧ 귀튼: 귀하던                                                          ♧ 죨지: 갑자기. 뜻밖에

♧ 진지거 :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갔다 함         ♧ 만반 진슈: 상에 가득히 차린 귀하고 맛있는 음식

♧ 겻반: 곁들인 반찬                  

♧ 건양쳥: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가지고 가던 양식을 관장하는 부서

♧ 감식: 달게 먹음                                                     ♧ 가이업시: 가엾게

♧ 금셕산: 만주 구련성 북쪽에 있는 산                        ♧ 온졍평: 만주 구련성 북쪽에 있는 온천지대

♧ 일셰: 날의 형세                                                     ♧ 돈: 노천(露天)

♧ 군막: 진중에 치는 장막                                          ♧ 삿리: 갈대로 엮어서 만든 자리

♧ 가방: 겨울에 외풍을 방지하기 위해 방 안에 장지를 들이어 조그맣게 막는 아랫방

♧ 역관: 통역을 맡은 관리                                   

♧ 비장: 조선조 지방 장관이나 사신을 수행하는 관원의 하나

♧ 방장: 관아의 육방의 분장                                       ♧ 드러부니: 들이부니

♧ 명식:‘명색(名色)’의 오기인 듯                                 ♧ 염천: 몹시 더운 날씨

♧ 경과기: 지내기가                                               ♧ 화톳불: 모아 놓은 장작 등에 놓은 불

밥 짓는 곳에서 상을 차려 점심을 가져오니, 맨 땅에 내려 앉아서 점심을 먹어 보자. 아까까지 귀하던 몸이 어이하여 갑자기 천해져서, 오락가락하던 일등 명창과 수청하던  기생은 어디 가고, 상에 가득한 좋은 반찬이나 곁들인 반찬도 없지마는, 건량청에서 준 밥 한 그릇을 이렇듯이 달게 먹으니, 가엾게 되었지만 어찌 아니 우스우랴. 금석산을 지나가니 온정평이 여기로구나, 날의 형세가 황혼이 되니 한데서 잠자리를 정하자. 세 사신이 자는 곳은 군사들 쓰는 장막을 높이 치고, 삿자리를 둘러 막아 임시로 꾸민 방처럼 하였으되, 역관이며 비장 방장 불쌍하여 못 보겠다. 사방에서 외풍이 들이부니 밤 지니기가 어렵도다. 군막이라고 말은 하지만 무명 한 겹으로 가렸으니, 오히려 이번 길은 오뉴월 더운 때라, 하룻밤 지내기가 과히 어렵지 아니하나, 동지섣달 긴긴 밤에 바람과 눈이 들이칠 때 그 고생이 어떠하랴? 참혹하다고들 하데그려, 곳곳에 피운 화톳불은 하인들이 들러앉고, 밤새도록 나팔 소리를 냄은 짐승이 올까 염려함이로다.

 

문: 지명                                                        ♧ 목 : 죽 벌려 박아서 만든 울의 긴 말뚝

♧ 봉황셩장: 봉황성의 우두머리.                            ♧ 이마: 인마(人馬)

♧ 범문신: 여러 가지를 묻고 단단히 일러서 경계함.‘범문’은‘변문’의 오기

♧ 녹창: 여자가 거처하는 방                                   ♧ 쥬호: 붉은 문

♧ 화: 화려한 집                                                 ♧ 란: 곱게 채색한 난간               

♧ 호인: 오랑개, 만주 사람                                     ♧ 괴려: 이치에 어그러져 온당치 않음

느리쳐셔: 땋아 늘어뜨려                             ♧ 당실: 중국에서 나는 명주실

♧ 당긔: 댕기                                                        ♧ 말이: 마래기, 중국 청나라 때 관리들이 쓰던 모자

♧ 아쳥: 검푸른 빛                                                 ♧ 반물: 짙은 남빛

젼: 바지나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꿰어 무릎 아래에 매는 물건

♧ 회목: 손목이나 발목의 잘룩한 부분                     ♧ 회: 입은 옷의 매무시가 경첩하고 가뜬함

♧ 슬갑: 추위를 막기 위해 무릎까지 내려오게 입는 옷

날 이 밝기를 기다려서 책문으로 향해 가니, 나무로 울타리를 하고 문 하나를 열어 놓고 봉황성의 장이 나와 앉아 사람과 말을 점검하며, 차례로 들어오니 묻고 경계함이 엄숙하고 철저하다. 녹색 창과 붉은 문의 여염집은 오색이 영롱하고, 화려한 집과 채색한 난간의 시가지는 만물이 번화하다. 집집마다 만주 사람들은 길에 나와 구경하니, 옷차림이 괴이하여 처음 보기에 놀랍도다. 머리는 앞을 깎아 뒤만 땋아 늘어뜨려 당사실로 댕기를 드리고 마래기라는 모자를 눌러 쓰며, 일 년 삼백 육십 일에 양치질 한 번도 아니하여 이빨은 황금빛이요 손톱은 다섯 치나 된다. 검은 빛의 저고리는 깃이 없이 지었으되, 옷고름은 아니 달고 단추 달아 입었으며, 검푸른 바지와 짙은 남빛 속옷 허리 띠로 눌러 매고, 두 다리에 행전 모양으로 맨 것을 타오구라 이름 하여, 발목에서 오금까지 가뜬하게 들이끼우고 깃 없는 푸른 두루마기 단추가 여럿이요, 좁은 소매가 손등을 덮어 손이 겨우 드나들고, 두루마기 위에 덧저고리 입고 무릎 위에는 슬갑이라.

 

 

♧ 너: 넣는                                                  ♧ 부시: 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쇳조각

♧ 한 빗치라: 한 모습이라                                ♧인: 소국 사람

♧ 지져귀며: 수군대며                                     ♧ 치거실러: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려

♧ 가림:‘가르마’의 방언                                 ♧ 슈식: 뎌자의 머리에 꽂는 장식품

♧ 도화분: 도홍색을 띠어 불그스레한 백분        ♧ 반: 반쯤 취한

♧ 아미: 미인의 눈썹                                       ♧ 살:  귀밑머리.뺨 위 귀 앞쪽에 난 머리 털

♧ 단슌: 여자의 붉고 고운 입술                        ♧ 군영:구멍

♧ 귀여리: 귀고리                                        ♧ 졔도: 제정된 법규

♧ 수구: 소맷부리                                           ♧ 동: 옷소매 끝에 이어서 다는 헝겊

 

곰 방대와 옥 물뿌리 담배 넣는 주머니에, 부시까지 들고 뒷짐을 지는 것이 버릇이라. 사람마다 그 모양이 천만 사람이 한 모습이라. 소국 사람 온다 하고 저희끼리 수군대며 무엇이라고 인사 하나 한 마디도 모르겠다. 계집년들 볼 만하다. 그 모양은 어떻더냐. 머리만 치거슬러 가르마는 아니 타고, 뒤통수에 모아다가 맵시 있게 장식하고, 오색으로 만든 꽃은 사면으로 꽂았으며, 도화색 분으로 단장하여 반쯤 취한 모양같이 불그스레 고운 태도 눈썹 치장을 하였고, 귀밑머리 고이 끼고 붓으로 그렸으니, 입술 아래 연지빛은 붉은 입술이 분명하고, 귓방울 뚫은 구멍에 귀고리를 달았으며, 의복을 볼 것 같으면 사나이 제도로되, 다홍빛 바지에다 푸른빛 저고리요, 연두색 두루마기를 발등까지 길게 지어, 목도리며 소매 끝동에 꽃무늬로 수를 놓고, 품이 너르고 소매가 넓어 풍채 좋게 떨쳐 입고,

 

 

♧ 옥수: 옥 같은 손                 ♧ 금지환: 금 가락지                    ♧ 외: 한 짝만으로 된 것

려: 동그랗게 여러 겹으로 포개어 감아                                 ♧ 수당혀: 수를 놓은 당혜. 당혜 - 가죽 신

♧ 청여: 청나라 여자              ♧ 당여: 한족(漢族)의 여자            ♧ 두 치짐: 두 치쯤

♧ 동히고: 흩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게 묶고                                  ♧ 위둑비둑: 뒤뚱뒤뚱

친: 후세에 남긴              ♧ 쥬룽쥬룽: 옹기종기(의태어)       ♧ 잇그은다: 이끈다

가다: 깎아다가               ♧ 모슴: 모숨. 한 줌 안에 들 만한 수량

하스되: 땋았으되           ♧ 당: 중국산 명주실                 

♧ 복쥬감토: 복주감투. 중이나 늙은일들이 추위를 막기 위하여 쓰는 모자의 일종

: 여러 가지 고운 빛깔 ♧ 공단: 두껍고 무늬가 없는 비단

라기: 배래기. 한복에서 옷소매 아래쪽의 둥그런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