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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 김인겸(金仁謙)

  

 

조 선 영조 때의 문인 김인겸의 작품으로, 영조 39년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으로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작가가,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과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이다. 영조 39년 8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이듬해 7월 8일 경희궁에 들어가 복명(復命)할 때까지의 약 11개월에 걸친 긴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으로, 총 4책 8,000여 구나 되는 대작이다.

정 확한 노정(路程)과 일시(日時)를 적고, 날씨, 자연 환경, 일어난 사건, 작자의 느낌 등을 과장 없이 그대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도처에 날카로운 비판과 유머가 곁들어져 있어 기행 문학의 묘미를 십분 살려 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홍순학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장편 기행 가사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진다.

 

 

◈ 갈래 : 가사.

◈ 연대 : 영조 40년(1764)

◈ 형식 : 3.4(4.4)조. 4음보의 연속체

◈ 성격 : 기행가사. 장편가사(가사 중 최장편임)

◈ 구성 : 추보식 구성

◈ 표현 : 대구법. 직유법. 과장법. 설의법

◈ 주제: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  일본 여행에서의 견문과 여정

◈ 출전 : <가람 문고본(文庫本)>

 

 

◈ 제 1권 :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1763년 8월 3일 서울을 떠나 용인, 충주, 문경, 예

          천, 안동,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 제 2권 :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發船)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

          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赤間關[下關])에 도착하여 머묾

 제 3권 : 이듬해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와다와라(小田原), 시나

          카와(品川)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제 4권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 일동장유가'에서는 김인겸이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8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보고 느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개인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작자의 공정한 비판, 기발한 위트, 흐믓한 해학, 정확한 노정(路程)과 일시(日時)의 기록, 상세한 기상(氣象)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 등이 잘 나타나 있어서 기행문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또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과 비평을 통하여 당시의 외교상의 미묘한 갈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외교사적(外交史的) 자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명 비평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적 정신인 사실적(事實的) 사고(思考)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 본의 관백(關白) 원가중(源家重)이 퇴휴(退休)하고 그 아들인 원가치(源家治)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자 일본 측에서 구호(舊好)를 또 수교하자는 요청이 왔으므로,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여 영조 39년 계미 8월에 통신사를 차출하였다. 이 때 통신사 조엄(趙嚴)을 수행하면서 쓴 글이 '일동장유가'로 4책 8천여 구에 달하는 장편의 기행 가사이다.

 이 작품은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燕行歌)'와 쌍벽을 이루며, 순 국문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장편 기행가사로 일반적인 문학 양식의 개념으로 보면 기행문의 성격을 지닌 광의(廣義-넓은 의미)의 수필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김인겸(金仁謙, 1707-1772) 57세 때인 영조 39년(1763)에 조엄(趙嚴)을 정사(正使)로 한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본문연구>

 

 

 

 

◈ 소활(疎闊) : 성품이 짜이지 못하고 어설픔        ◈ 청명(淸明) : 청렴하다는 명망

◈ 대과(大科) : 문관이 되는 과거

◈ 댱듕 제구(場中諸具) : 과거 볼 때 여러 가지 도구. 곧 공부에 필요한 도구

◈ 유산장(遊山行裝) : 놀러 다니는 옷차림    ◈ 두루 노라 : 골고루 유람하여

◈ 금호(錦湖) : 금강. 곧 공주를 이름      

◈ 북창(北窓) : 서재. '시와 술과 거문고'를 '북창 삼우(北窓三友)'라고 함

◈ 관(關白) : 옛날 일본의 관직명. 여기서는 '토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를 말함

 

 

 

        1단락 - 일본에서 통신사를 청함

 

일 생을 살아감에 성품이 어설퍼서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네. 진사 정도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는데 놓은 벼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과거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자연 찾아 놀러 다니는 옷차림으로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음풍농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냈는데, 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일본의 통치자 토쿠다과 이에시게가 죽고 우리 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청한다네.

 

 

◈ 젼셔(典牲暑) : 나라의 제사에 쓰는 동물을 기르던 곳     ◈ : 사신의 일행

◈ 젼별(餞別) : 잔치를 베풀어 작별함                                   ◈ 모닷  : 모였네

◈ 안마(鞍馬) : 안장을 얹은 말                                             ◈ 뫼아 들어 : 모여들어

◈ 우탄(嘆) : 슬피 탄식함                                                  ◈ 불워기 : 부러워하기

 

       2단락 - 만조 백관들과의 작별 모습

 

이 때가 어느 때인고 하면 계미년(1763) 팔월 삼일이라. 경복궁에서 임금님께 하직하고 남대문으로 내달아서  관우의 사당 앞을 얼른 지나 전생서에 다다르니, 사신 일행을 전송하려고 만조 백관이 다 모였네. 곳곳마다 장막이 둘러쳐 있고 집집마다 안장을 얹은 말이 대기하고 있도다.  전후 좌우로 모여들어 인산인해가 되었으니  정 있는 친구들은 손 잡고 장도를 걱정하고  철모르는 소년들은 한없이 부러워하네.

 

 

 

                                                  ◈ 상마포(上馬砲) : 말에 오르라는 신호

◈ 졀월(節鉞) : 깃대와 도끼 모양의 물건. 생살권을 상징함    ◈ 젼(前陪) 군관(軍官) : 길을 인도하는 군관

◈ 국셔(國書) : 임금의 친서                                                ◈ 일산(日傘) : 양산

◈ 슌시(巡視) 녕긔(令旗) : 군중(軍中)에서 쓰는 깃대 이름    ◈ 칩더니 : 올라 타니

◈ 가치옷 : 때때옷                                                      ◈ 지로 나쟝(指路羅將) : 길을 인도하는 하급 군인

◈ 마두셔자(馬頭書子) : 역졸과 역의 기록을 맡은 군총

 

     3단락 - 사신 일행이 출발하는 광경

 

 석 양이 거의 되니 하나하나 이별하고 출발 신호에 따라 차례로 떠나갈 때에, 절과 부월 앞을 인도하는 군관이 국서를 인도하고 비단으로 만든 양산과 순시 영기가 사신을 중심으로 모여 섰다. 나 역시 뒤를 따라 역마에 올라 타니, 때때옷을 입은 지로 나장이 깃을 꽂고 앞에 서고 마두서자가 부축하고 쌍두마를 잡았구나. 청파역졸이 큰 소리로 외치는 권마성은 무슨 일인가? 아무리 말려도 정해진 의식이라고 굳이 하네. 수염이 허옇게 센 늙은 선비가 갑자기 사신 노릇함이 우습고 괴이하니 남 보기에 부끄럽다. 

 

 

 

      4단락 - 부산항 출발 광경

 

거 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하고 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아무 것도 아니 보이고, 바닷가에 있는 군영 각 항구의 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다.

 

 

 

       5단락 -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남

 

 선 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태산 같은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돗대는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 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 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6단락 - 바다의 장관

이 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인생 천지간에 이런 구경이 또 있을까? 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위 아래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가?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7단락 - 폭풍에 시달린 끝에 대마도에 당도함

배 안을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선실에 도로 들어와 눈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거늘 다시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는 남았구나. 홰선 십여 척이 배를 끌려고 마중을 나왔네. 그제서야 돛을 내리고 뱃머리에 줄을 매어 왜선에 줄을 던지니 왜놈이 그것을 받아 제 배에 매어 놓고 일시에 노를 저으매 배가 편안하고 조용하게 움직여 좌수포로 들어가니 시간을 오후 3-5 쯤 되었고 짐을 실은 배는 먼저 와 있다.

 

 

     8단락 - 대마도의 풍광과 인가의 모습

 

포 구로 들어가며 좌우를 둘러보니, 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의 모습이 몹시도 아름답다. 소나무, 삼나무, 대나무, 잣나무, 귤유 등감 등이 모두 다 등청일세. 왜인 종자 여섯 놈이 검도정에 앉아 있구나. 인가가 드믈어서 여기 세집 저기 네집. 합하여 헤아리면 오십 호가 넘지 않는다. 집 모습이 몹시 높아서 노적더미 같구나.

 

 

 

      9단락 - 왜인들의 머리 치장과 옷차림

 

구 경하는 왜인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그 중의 남자들은 머리를 깎았으되 뒤통수만 조금 남겨 고추상투를 하였고, 발벗고 바지 벗고 칼 하나씩 차고 있으며, 여자들의 치장은 머리를 깎지 않고 밀기름을 듬뿍 발라 뒤로 잡아매어 족두리 모양처럼 둥글게 감았고, 그 끝은 둘로 틀어 비녀를 질렀으며 노소와 귀천을 가리 않고 얼레빗을 꽂았구나. 의복을 보아하니 무 없는 두루마기 한 동으로 된 옷단과 막은 소매가 남녀 구별 없이 한가지요, 넓고 크게 접은 띠를 느슨하게 둘러 띠고 늘 쓰는 모든 물건은 가슴 속에 다 품었다. 남편이 있는 여자들은 이를 검게 칠하고 뒤로 띠를 매었고, 과부, 처녀 , 계집아이는 앞으로 띠를 매고 이를 칠하지 않았구나.

 

 

10단락 - 강호(江戶)로 가는 도중 비를 만나 고생함

 

 점 심 먹고 길 떠나서 이십 리를 겨우 가서 날이 저물고 큰 비가 내리니 길이 끔찍하게 질어서 미끄러워 자주 쉬어야 하기에, 가마 멘 다섯 놈이 서로 돌아가며 고대하되 갈 길이 전혀 없어서 둔덕에 가마를 놓고 한참 동안 머뭇거리면서 갈 뜻이 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천지가 어둑어둑하고 일행들은 간 곳이 없고 등불은 꺼졌으니, 지척을 분간할 수 없고, 넓고 넓은 들 가운데서 말이 통하지 않는 왜놈들만 의지하고 앉았으니, 오늘 밤의 이 상황은 몹시 외롭고 위태하다. 가마꾼이 달아나면 낭패가 오죽할까. 그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보이고, 가마 속에 있던 음식을 갖가지로 내어 주니, 저희들끼리 지껄이며 먹은 후에 그제서야 가마를 메고 조금씩 나아가는데 곳곳에 가서 이러하니 만일 음식이 없었더라면 필연코 도주했을 것이다. 삼경쯤이나 되어서야 겨우 대원성에 들어가니 머리가 아프고 구토하여 밤새도록 몹시 앓았다.

 

 

 

  11단락 - 강호의 번성한 모습

 

16 일에 비옷을 입고 강호(동경)로 들어갈 때에 왼편은 마을이요, 오른편은 바다(태평양)로다. 산을 피하고 바다를 향해 있는 들판이 옥야 천리로 생겼는데 높은 누각과 집들은 사치스럽고 사람들이 번성하다. 성곽의 높고 장한 모습과 다리와 배의 대단한 모습이 대판성 서경보다 3배는 더하구나.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이 몹시 장하고 숫자가 많으니 어설픈 붓끝으로는 이루 다 적지 못하겠도다. 삼십 리 오는 길이 빈틈없이 인파로 이어져 있으니, 대체로 헤아려 보면 백만이 여럿이로구나. 여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기가 명고옥(나고야)과 한가지다.

 

 

 

     12단락 - 실상사에 묵으면서 그 곳에서 일어난 역사를 회고함

 

 

실 상사로 들어가니 여기도 무장주일세, 처음에 덕천 가강(도쿠카와 이에야스)이 무장주의 태수로서, 풍신 수길이 죽은 후에 그 가계를 없애 버리고, 이 땅(강호)에 도읍을 정하여 강하고 풍요로우며, 일을 계획함이 신중 은밀하며 법령도 엄격하고 생각하는 것도 깊어서 왜국을 통일하니, 아무튼 제 무리에서는 영웅이라고 하겠도다. 덕천 가강이 죽은 후에 자손이 이어져서 이 때까지 누려 오니 복력이 기특하다. 17일에는 비가 개지 않아서 실상사에서 묵었다.

 

 

 

 

 

 

출처 - 장석봉의 국어터닦기


Posted by 곽성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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