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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쌤의 나라말, 우분투, 국어교육 곽성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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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한 살 때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난 좀 도벽이 심한 편이었다.
부모님 도장이 찍힌 가정통신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집에 두고 온 어느 날
나는 집까지 갈 엄두도 못 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활짝 열린 가방과, 그 안에 든 가정통신문.
순간 도벽이 꿈틀댔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스리고는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 그 가정통신문을 꺼내 이름을 바꿔 썼다.

몇 시간 뒤, 내 도벽의 희생자가 된 아이는 가정통신문이 없어졌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그 아이는 선생님의 장식용 주걱으로 맞고 말았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방에 없다는 말이 변명으로 들린 것이다.
그렇게 그 사건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왜 부르셨냐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왜 그랬니?"라고 반문하셨다.
쿵! 누군가 내 머리를 내리친다면 이런 기분일까.
죄송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가만히 내 볼을 쓰다듬으셨다.

나를 책망하는 손길이 아니었다.
쓰다듬으며 내 눈물을 닦아 주실 뿐이었다.
선생님깨서 입을 여셨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도 아니었고, 당장 그 아이에게 사과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실수였어. 실수였으니까 괜찮아. 조금씩 고치면 돼."

그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했는지….
고치기 힘들던 도벽은 선생님의 포근한 다독임으로 싹 없어졌다.
그 시절 따뜻함으로 어린 나의 도벽을 없애 준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좋은생각 이천팔년 시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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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곽성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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