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지 않아서 좋은 것
편리하지 않아서 좋은 것
1995년 한 신문에 "컴퓨터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꿈의 시대가 열린다."라는 미래 예측 기사가 실렸다.
"미래에는 초고속 통신망과 멀티미디어가 보급돼 집에서도 영상 통화나 게임, 항공권 예약은 물론 회사 일도 할 수 있다."라며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처럼 썼다.
그러나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이 예측은 다 이루어졌다.
예상보다 훨씬 더 발전해서 컴퓨터 대신 상상도 못했던 작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해졌다고 우리가 더 좋아졌는가?
물론 무엇인가를 더 빨리 알아내고 같은 시간에 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오히려 잃어버린 것도 많다.
뭐든 검색하면 되니까 생각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얻는 지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단순히 인터넷에 올라온 지식을 쓰는 소모자가 된다.
옛날이면 터덜거리고 걸어 다녔을 길, 아니면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갔을 만한 곳에 성능 좋은 안락한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 빨리 가는 것이 과연 우리 삶의 목표였던가?
휑하니 가면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
음식도 빨리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그런 장소도 늘어났다.
그럼 우리가 빨리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편리라는 이름으로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편리하지 않은 것은 쓸데없는 일인가?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를 깊이 묵상하고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발바닥으로 땅의 감촉을 느끼고,
풍광과 뺨을 스치는 바람을 누리는 것.
음식의 식감과 향취를 아는 것.
이는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생명이다.
세상은 편리해지면서 생명과 멀어진다.
마치 대단한 것을 하는 듯 몰아치지만 사실 내 생명과 별로 관계없는 것들이다.
내가 느끼고 누리는 것이 생명이다.
이 순간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생명이다.
빨리, 또 편리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지금의 생명을 누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편리하지 않을 때 진짜 삶이있을 수 있다.
채정호 님 |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좋은생각 이천십삼년 십이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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