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강원도 산골에 조그만 집을 짓고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당장 라면을 끓일 가재도구도 풀지 못해서 이웃 주민에게
자장면을 배달시킬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산골이니 당연히 중국집은 없고 아마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콩국수 정도는 배달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 시간쯤 뒤 콩국수가 도착했다.
배고파서였을까. 콩국수 맛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손으로 민 듯 한 쫄깃한 국수하며 콩을 방금 갈아 낸 고소한 맛이라니맛이라니…
콩국수를 가져온 주인은 우리가 그걸 다 먹을 때까지 한쪽에서 묵묵히 담배를 피웠다.
내가 주인에게 앞으로도 배달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무뚝뚝한 강원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여기 오는 데 오토바이로 20분이래요.
기름값도 안 남아요."
콩국수 한 그릇이 삼천 원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저씨, 그럼 배달비를 한 그릇당 천 원씩 더 드릴게요."
주인은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간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한식집이래요.
이건 친구가 사정이 하도 딱하다고 해서리 가져온 거래요.
게다가 도시 사람들 얼마나 현금 많은지 모르겠지만 천 원이 어딘데,
배달하고 어뜨케 그걸 더 받는대요? 공평해야지.
그렇게 돈만 알고 살므는 동네 사람들한테 미안해서리 싫어요."
나는 내가 돈만 아는 나쁜 사람처럼 느껴져 겸연쩍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좀 신선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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