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못하는 것
꿈꾸는 정원사/나는 선생이다! / 2010. 1. 27. 15:29
나는 직업상 거의 날마다 말을 탑니다.
말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기에 저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내가 만난 말 중에 아픈 기억으로 남은 말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제주도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녀석은 체격이 건장하고 혈통도 좋아 모두 기대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지요.
훈련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한곳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유독 그곳만 지나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거부 반응이 너무 심해 훈련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고집이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녀석과 씨름하다가 '오늘은 끝을 보자.'라는 생각에 이제껏 참았던 오기를 부렸습니다.
채찍으로 때리고 소리 지르며 실랑이를 벌이던 중 갑자기 녀석이 앞발을 번쩍 들고서 뒤로 주춤거리더니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안장에 앉아 있던 나는 운좋게 욽타리 아래로 굴러떨어져 말에 깔리는 사고는 피했지만 말은 넘어지면서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로 그 말은 은퇴해야 했지요.
그러다 우연히 말 전문가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말이 거부할 때는 먼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인지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인지를 구분해야 하는데,
말의 99퍼센트는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뒤늦은 후회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끔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잘못을 나무랄 때도 나는 그 말을 떠올립니다.
'그래,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직 하지 못해서일지도 몰라.' 하며 감정을 추스르지요.
내게 깨달음을 준 그 말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렵니다.
-좋은생각 이천구년 팔월호, 김현승 님(가명) l 경남 창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