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부를 주저할까?
음식점에서 막 메뉴를 고른 뒤였다.
점원이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홍보물을 펼쳐 보였다.
“제3세계 어린이 단체를 후원하는데요. 도와줄 생각이 있으신지요?” 흘끗 보니 특별히 눈에 띄는 사진도, 통계 자료도 없었다. “아… 다음에 할게요.”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거리에 전시된 커다란 아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을 뒤덮은 자줏빛 멍과 상처.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자 관계자가 말을 건넸다.
“마포구에 사는 여덟 살 00에요. 가정 폭력 때문에 저렇게 됐어요. 5천 원만 후원해 주시면 곧 바로 치료비로 쓰인답니다.”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두 번의 기회, 한 번의 기부.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호주의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우리가 기부를 주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내 눈에 보여야 불우하다
한 실험에서 첫째 집단에는 기부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 정보를, 둘째 집단에는 일곱 살 말라위 소녀의 사진과 정보를 주었다. 그러자 두 번째 집단이 훨씬 많은 돈을 기부했다. 마음은 추상적인 정보보다 구체적인 정보에 더 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우리가 먼저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만약 중국이 대지진으로 멸망해도, 중국과 멀리 떨어진 곳의 유럽의 대부분은 아무일 없다는 듯 여가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관심은 종종 가족이나 동료, 소규모의 종족 집단에만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높은 비율이 중요하다
여기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보자.
수많은 르완다 난민에게 기부할 경우, 1만 명 중 1천 5백 명을 도울 때와 3천 명 중 1천5백 명을 도울 때,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같은 인원이지만 대부분 후자를 선택했다. 50%라는 비율이 10%라는 비율보다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다.
집에 돌아와 음식점에서 기부를 거절했던 어린이 단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5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25명의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예방 접종을 할 수 있고, 시력 상실을 예방하는 비타민 A를 4백 개나 구입할 수도 있는 것. 결제 버튼을 누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기부할 때는 ‘주저’가 가장 큰 외면이라고. 보이는 곳에 있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든, 한 명을 위한 것이든 수십 명을 위한 것이든 상관없다고. 돕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우는 건 똑같으니 말이다.
-좋은생각 이천구년 십이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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