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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0 천승세 - 만선 희곡 전문



만선(滿船)              천승세작


[페이지] 001

만선 (전 3막 6장)

나오는 사람들

곰치(49새 어부)

구포댁(48세 그의 아내)

도삼(30세 그들의 아들)

슬슬이(19세 그들의 딸)

성삼(47세 곰치의 친우, 어부)

연철(28세 도삼의 벗,어부, 슬슬이의애인)

임제순(60세 선주)

범쇠(50세 주막의 주인)

마을어부1,2

동네아낙1,2

무당

지서순경

동네사람들 기타 막뒤의 인물 다수

때 현대,여름

곳 남해안에 있는 조그만 어촌


[페이지] 002

[막] 1막

[장] 1장

[무대] 무대 오른편에 낡은 초가. 몇해 동안이나 이엉을 얹지 않은듯 거무스름하게 퇴색한 지붕이

군데 군데 움푹 꺼져있어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한칸 남짓한 마루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방이 하나씩.

우편 방문 앞엔 보잘것 없는 툇마루. 좌편 방에 잇대어 헛간 무대 안쪽에서 돌아나온 명색뿐인

싸리울타리가 밖과 집마당을 경계하면서, 헛간 조금 앞쯤 사립문을 달고 끝난다. 우편 방에 잇대어

무대 앞쪽을 향해 비스듬히 굽은 부엌, 사립문을 나서면 곧 갈림길. 오른쪽 길은 무대 안쪽을 돌아

뚝으로 통하고 왼쪽길은 마을과 통한다. 무대 안쪽 멀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띵러 난 뚝길,

평지보다 높다. 그 뒤론 바다, 먼섬들의 산봉우리들이 배경이 된다. 막이 오르면 저녁, 우편 방

추녀끝에서 좌편 방 추녀 끝으로


[페이지] 002

간 빨래줄에 보잘것 없는 옷 가지가 널려 있고, 마당 한가운데 높은 장대줄엔 잡생선 몇마리가 널려

있다. 세간 하나 없늠 마루가 휭하다. 무대는 잠시 빈채-사이-별안간 울려퍼지는 징소리, 꽹과리 소리,

어부들의 함성들-몇번이고 온 마을을 흔든다. 이때 점점 가까워 오는 사람들의 바쁜 발자국 소리들,

이어 머리위에 가득찬 생선 소쿠리를 인 아낙네들 <허어- 칠산 바다에 부서떼가 밀리다니! 기가 맥혀->

<너무 좋아서 죽진 말게들!> 이런 말을 주고 받는 남정네들, 한결같이 기쁨에 찬 얼굴들로 사립문 앞을

지나 마을로 내려간다-사이-회색이 만연한 곰치, 도삼, 성삼, 들어와 마루에 앉는다. 이때 다시

울려퍼져 오는 징소리, 꽹가리 소리-몇번 흔들리다간 멎는다.

[곰치] (부르짖듯) 저 징소리들을 들어봐! 저 징소리는 죄다 이 곰치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여! 죄다

이 곰치 것이란 말이여!

[성삼] (크게 고개를 끄덕여 대며) 아암! 아암!


[페이지] 003

그라고 말고!

[곰치] (연설조로) 부서떼를 누가 먼저 봤냐? 누가 먼저 발견했냔 말이여? 곰치다! 곰치여! (두

주먹을 모아 가슴에다 대고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으흐흐흐- 이 곰치란 말이다-

[도삼] (열을올려) 하기사 그렇지라우! 지나가는 부서떼는 중선배를 싸고 미처 뛰다가는 그냥 지나간

버리는 수가 있지라우! 고기떼 길 막는데는 아부지 공이 크고말고라우! 아자씨! 안 그라요?

[성삼] 아암! 크고 말고! 원래 칠산바다가 부서들이 놀기에는 적당한 마당이 아니제! 빠질곳이 하도

많어서 섣불리 쫓다간 부서떼 길 터주는 것 밖엔 안되제! (곰치의 등어리를 텅텅 두들겨대며) 잘 했어!

오늘만은 참말로 잘 했어!

[곰치] (으쓱해서) 그래서 곰치 아닌가? 곰치 기술에는 못당해! 당할놈이 없어!

[성삼] 헛 참! 그렇다고 자네가 이렇게 재기여? (장난스럽게)아조 혼자 용더서 날라갈 참이여!

[도삼] (크게 크게) 허허허어!


[페이지] 004

[곰치] (덩달아 따라 웃다간) 부서 맷돌질이란 말이 바로 그말인 것이여! 부서떼 허리를 자루고

나서는 한사코 배를 돌려사쓴단 말여! 그라믄 한떼가 두떼로, 그 다음 밀어닥치는 떼가 또 세떼,

네떼로 한사코 갈리그등? 우선 그렇게 해서 길을 막아 놓고 중선배를 자꼬자꼬 돌려댄단 마시! 그라믄

부서란 놈들은 중선배가 즈그들 묵을 것이나 된줄 알고 중선배만 따라 용쓰고 담박굴 치다가는, 길은

완전히 잊어뿔고는 꼼짝없이 백힌단마시!

[성삼] (감격해서) 호오! 자네를 다시 봐야 쓰겄어! 바른대로 말해서 오늘 처음으로 한가지 배웠네!

부서 맷돌질은 처음 듣는말이여!

[곰치] (더욱 으스대며) 뱃놈이 쉬운거 아니여! 죄다 가죽만 쓴 뱃놈들이제, 참말로 진짜 뱃놈들인지

알어? 곰치만은 달러! (경건한 목소리로) 우리 선친님들 덕이제! 그분들은 참말로 재주가 비상한

어른들이었응께-- (다시 열을 올려) 보소! 앞으로 사나흘은 부서떼는 칠산바다 속에서 옴싹 못하고

백혀 있을 것이시


[페이지] 005

빠질 길 틀라먼 암짝해도 사나흘은 걸려사 쓸 것잉께!

[성삼] (혼자 손가락 셈을 해 가며) 내일도 만선, 모래도 만선, 글피도 만선! (우악스레 곰치의

어깻죽지를 흔들어대며) 이사람아! 이사람아! 기어코 곰치는 살었네!! 한판 멋지게 섰어!!응?!

[곰치] (가슴을 쭉 펴곤 자랑스럽게) 하루에 만선 갖꼬 돼? 하루에 세차례는 만선 부서 펴낼 것인디!

아암! 자신 있어!

[도삼] (어리둥절, 너무 좋아) 허어- 참 힘이 절로 나네거!

[성삼] 갈쑤록 기맥힌 말만 쏟아 나오네 그랴! (하늘을 우러르며 엄숙하게) 하늘이 도우신거여!

하늘이 도와 주셨어!

[곰치] (마루에서 벌떡 일어서며, 흥분된 소리로) 더러운 놈의 빚 싹 청산하고 죽는한이 있어도 배

한척 장만한다! (마당을 서성대며) 장만하고 말고! 기를쓰고 똘망배 한척이라도 장만하고 말꺼여!

(뚝쪽을 향해 손을 내 저으며)칠산 바다엔 부서가 사태 아니냐?


[페이지] 006

옴짝없이 백혔잖냔 말이여!! 허허허- (담배를 태워 물고나선) 몇 십년만에 처음 보는 부서떼여!

사나흘은 배가 터지는 만선! 만선-- (손바닥으로 궁둥이를 철썩 때려붙이고 나선) 곰치도 섰다! 인자

섰어! (감격해서)허허허허-

[성삼] 듣기만 해도 배가 불러서 죽을 지경이시!!

[도삼] 배를 갖어사 해요! 내 배가 있어사 해요!!

[성삼] 아암!! 절절이 옳은 말이시!

[곰치] 염려할 것 없어! 배는 생긴다! 내 배를 갖꼬 말어!

[성삼] (급하게) 곰치!

[곰치] 말하게!

[성삼] 오늘이 몇 접이드라?

[곰치] 다섯접 쪼금 모잘렀어!

[성삼] 그랑께 넉접 넘는구먼! 헛참! 꿈만 같어!

[도삼] 지금 내 정신이 그래요! 꼭 꿈속같이 띵한것이--(독백처럼)뭇이라고 할까? 꼭 얻어 맞은

것처럼 골속이 띵 울고---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러 대다간 고개를 설레설레) 모르겄어!

[성삼] 허허허허어!

[곰치] (도삼을 획 돌아보며, 대견해서) 자식! 자시익!


[페이지] 007

이때 구포댁, 슬슬이 숨이 목에 차서 들어온다. 두사람의 얼굴, 웃음이 반죽 돼 있고

[구포댁] (덥석 곰치의 팔을 붙들고는) 웠따, 도삼이 아부지! 오져서 미치겄오!

[곰치] (꼿꼿이 선 채 헛기침) 헛어엄-

[구포댁] (미친 사람처럼) 멋찐거으! 참말로 멋쩌서 좋겄네여! (허벅다리를 부둥켜 잡고는) 꼭

이만씩한 놈의 부서들이 펄쩍펄쩍 뛰는디 그때마다 이놈의 가슴이 확확 달아 오름시로는---(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며) 시상에! 시상에---

[곰치] (일부러 냉정하게) 수선피우지 말어.

[성삼] (장난스럽게) 나는 요런참에 아짐씨 춤이나 한번 딱 구경하고 싶구만은----(장난스런 눈길로

구포댁을 올려다본다)

[구포댁] 그까짓꺼 춤 한번 못 치겄오? 정말 처볼끄라우? 예에?

[슬슬이] (도삼에게 가 기대 앉으며 기뻐 어쩔줄을 몰라) 오빠! 히잉-

[도삼] (슬슬이의 머리채를 쓸어주며) 흐응- (기쁜 웃음을 씹는다)

[성삼] 아 어서 춰 보시랑께?


[페이지] 008

진장칠놈의 만석덕분에 아짐씨 춤 한번 구경하게 생겼네!

[구포댁] (약간 어색한듯 망설이며) 정말? (바을 까딱 해보이고 나선) 정말? 참마로 쳐라우? (양팔을

덩실해 보이고 나선) 참말?

[곰치] (그런 구포댁을 힐끗 힐끗 쳐다보다 말고는 못 참겠다는듯이) 훗훗훗-

[도삼, 슬슬] (서로 상대편의 어깨에다 머리통을 기대며 웃는다)

[성삼] (안타깝게) 헛 참. 그놈의 춤이 선만 보이고는 남의 간장만 허직거려 놀 참잉가? 아짐씨도

아직 처녀구만? 부끄럼을 그렇게 타내니---

[구포댁] 웠따, 성미도 급하요거! 섣달 그믐 신방에서 정월 초하룻날이라고 애기 울음소리 나는 법이

으디 있다요?

[성삼] 허허허허허- 아짐씨 연설에는 못 당해! 이때, 뚝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징소리.

다섯사람 긴장해서 귀를 기울인다.

[곰치] (성삼에게) 인자 들어올 배가 또 있었등가?

[성삼]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옳체! 뜸막이네 배여!

[곰치] 징소리가 꽤나 배 터지는 만선인 모양인디?

[성삼] 아문- 어련 할라고?


[페이지] 009

너나 없이 오늘은 죄다 부서를 뒤집어 썼는디머!

[구포댁] 그랑께 몇십년만에 처음이지라우?

[곰치] 아암! 첨이고 말고!

[구포댁] 그나저나 얘기나 좀 들어봅시다. 예! 대체 으찌께 해서---

[성삼] (말을 얼른 받아) 곰치 맷돌질에 영락없이 걸렸지라우! 곰치 공이 크요!

[구포댁] 맷돌질이 뭇이여? 고기도 맷돌질 해서 잡는다요?

[곰치] (자랑스럽게) 그랑께 곰치는 보통 뱃놈이 아니제! 허엄!

[성삼] (도삼의 귀에다 바짝) 자네 아부지 지금 용돼서 날라가네! 막 날라간단말여! (도삼의

허벅지를 텅 치고 나선 크게) 허허-

[도삼] 날라가사지라우! 날라갈만도 하지라우!

[성삼] 그래! 그래에-

[구포댁] (혀를 휘휘 내 두르며 놀라는 시늉) 오진거으.

[곰치] (못 마땅한듯) 뭇이 그렇게 놀랠 일이여?

[구포댁] 아니 그람은 놀래지 않고 으짠다요? 몇년동안 잡기로도 겨우 한접 반 씩이나하먼

다행이었는디 부서가 넙접반인디 기맥힐일 아니요?

[곰치] 그까짓꺼-- 내일부터는 하루에 서너차례 배 퍼도


[페이지] 010

모잘러! 앞으로 사나흘 동안에 오십접은 걷어올릴 참인디?

[구포댁] (크게 놀라며) 오, 오십접?

[성삼] (자신있게) 합니다요! 할수 있고 말고라우!

[구포댁] (헛소리처럼) 오십접! 오십접--- (정색을 하곤) 꿈은 아니것제?

[곰치] 꿈? 뭇이 꿈이여? 칠산바다 속에 부서가 사태로 들었는디도 꿈이여? 어림없는 소리! 두고봐!

보란 말이여!

[성삼] 다 다아 두고 보기로 하고 우선 목이나 좀 축이세 그랴! (구포댁에게) 아짐씨! 뭇이 빠진

것같소! 딱 한가지가 빠졌는디--

[구포댁] (영문을 몰라) 예에? 뭇이 빠져라우?

[슬슬이] (부시시 일어서며) 엄니는 눈치도 없능갑다--- (언성을 높여) 저 아자씨 말씀이 술 자시고

싶다는 말 아니요?

[구포댁] (그제야) 오 참! 그새 내가 정신을 쏙 빼고 있었다! 어서술 받어와! 외상으로 돌라해!

저녁때 금방 갚아준다고-- 어서 야?

[슬슬이] 야아, 야아.(부엌으로 들어가 큰 양재기를 들고 나와 성삼을 귀엽게 흘기며) 저 아자씨

술배는


[페이지] 011

주전자 같은 것으로는 택도 안 달텡께--

[성삼] 아암-그저 슬슬이 하는짓은 죄다 슬슬 이뿌기만혀!(장난스럽게 슬슬이를 흘기며) 히잉-

[슬슬이] (혀를 날름 해 보이며) 치이- 슬슬이 퇴장-사이-마을어부1 사립문 밖에 나타난다.

[어부1] (고개만 마당쪽을 향해 내밀고) 곰치이-

[곰치] (대수롭지 않은 기색으로) 으째?

[어부1] 자네네가 몇접?

[곰치] (거만하게) 넉접 남어---

[어부1] (놀라며) 웠따메에- 자네가 기중 많이 걷었구먼?

[성삼] (부시시 일어서 사립문께로 걸어가며) 다들 배가 터졌을텐디 뭇이 놀랠 일이여?

[곰치] (기쁜 빛을 띠며) 내가 제일 많어? 응?

[어부1] 아암! 뜸막이네가 석접 남꼬, 우실이네가 두접 남꼬, 용문이네가 딱 석접! 다른배들도 다

그짝잉께 자네네가 젤로 많지 안타고?

[곰치] 호응- 아무렴! 어련할라고---

[어부1] 그나저나 살판났어들--- 몇해만이여? 내일부터는 배가 모자라겄어! 첫물이라 뜸 하제만--자,

나 가네에-


[페이지] 012

[곰치] (황급히) 여봐!

[어부1] (가다말고) 또 뭇잉가?

[곰치] (심각하게) 부서길은 내가 막었네!! 알어? 엉?

[어부1] 엇따 그랬네, 그랬어!(퇴장)

[구포댁] 첫물에 대개 석적씩이먼 뒤집어 썼구먼?

[성삼] 그렇고 말고라우!

[곰치] (혼자소리로) 공을 알어싸서! 곰치 공을 알어사--

[도삼] 그나저나 연철이가 너무 늦는디? 뭇하고 있어? 얼마나 올랐는가 알고싶어 미치겄구만!

[성삼] 글씨 말이여!

[곰치] 부서가 자그만치 넉접이여! 일이 그렇게 쉬운가?--

[구포댁] (그자리에 풀썩 꿇어 앉으며) 후유- 인자부터는 발 뻗고 잘 수 있을랑가? (안도의 한숨)

이때 그물을 메고 풀이 죽은 연철이 들어온다. 네사람 우르르 몰려가 연철을 에워싼다.

[곰치] 그래 을마나 올렸어?

[도삼]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을 해줘사 쓸것 아니라고! 자네 기다리다가 지쳤어!(기대에 찬 얼굴로)

어서 어서 말이나 해 보게!

[성삼] 석장은 올랐제?


[페이지] 013

[구포댁] 저 사람 무담씨 장난치고 싶응께는 일부러 쌍다구 딱 찡그리고 말 않는거 봐! 그라제?

어이? 놀려묵고 싶어서 그러제? (수선스럽게 웃어댄다)

[연철] (아무말 없이 마루끝에 가 앉으며 침통하게) 놀려라우? 맘이 기뻐사 놀릴맘도 생기지라우?

[곰치] (영문을 몰라) 믄 소리여? (와락 연철의 팔을 붙들고) 아니, 믄, 믄소리여? 엉?

[연철] (처절하게) 다, 다 뺏겼오! 아무것도 없이 다 뺏겼오!

[일동] (비명처럼) 뭇이라구?

[곰치] (미친사람처럼) 뺏기다니? 뺏기다니? 뭇을 누구한테 뺏겼단 말이여? 엉?

[연철] (처절하게) 빚에 싹 잽혔지라우! 그것도 빚은 이만원이나 남고-- (절규하듯) 믄 도리로

막는단 말이요?

[성삼] (주먹을 불끈 쥐곤) 죽일놈!

[도삼]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버리며) 아아-

[구포댁] (손바닥을 철썩 철썩 때려가며) 시상에! 믄 소리랑가? 시상에 믄 소리여?

[곰치] (실성한 사람처럼) 그렇게 됐어? 뺏겼어? (신음처럼) 허어!


[페이지] 014

[연철] (사립문 쪽을 가리키며) 쉬잇!

임제순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들어온다. 그뒤로 야릇한 표정의 범쇠 따라들어와선 눈길을 땅에

박은채, 뒷짐을 쥐고 마당을 서성댄다. 긴장해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네사람.

[임제순]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며) 곰치! 오늘 잘혔어! 자네가 제일 많이 했어! 거참 멋있그등!1

[곰치] (건성으로) 예에! 예에!

[임제순] 부서떼도 몇십년만이지만 부서 크기도 처음이여! 죄다 허벅다리 같은 놈들이니--(갑자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해 가지곤) 그라제만 나는 손해여! 이익이 없그등! 천상 널린돈 거둔 것 뿐잉께---

그나마도 일부분만 거뒀으니-- (속 상한다는 듯이) 진장칠놈의 것, 그 돈을 다른 사람한테 줘서 이자만

키웠어도-- 에잇! 쯧쯧-

[범쇠] (여전히 마당을 서성대며) 아암!!

[임제순] 곰치!

[곰치] (넋빼고 서선, 헛소리 처럼) 예에! 예에!

[임제순] 넉접이 빚 반은 있어 줬어! 돈으로야 사천원제한것 이제만 이자를 생각해 보소!


[페이지] 014

[연철] (사립문 쪽을 가리키며) 쉬잇! 임제순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들어온다. 그뒤로 야릇한 표정의

범쇠 따라들어와선 눈길을 땅에 박은채, 뒷짐을 쥐고 마당을 서성댄다. 긴장해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네사람.

[임제순]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며) 곰치! 오늘 잘혔어! 자네가 제일 많이 했어! 거참 멋있그등!!

[곰치] (건성으로) 예에! 예에!

[임제순] 부서떼도 몇십년만이지만 부서 크기도 처음이여! 죄다 허벅다리 같은 놈들이니--(갑자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해 가지곤) 그라제만 나는 손해여! 이익이 없그등! 천상 널린돈 거둔 것

뿐잉께---그나마도 일부분만 거뒀으니--(속 상한다는 듯이) 진창칠놈의 것, 그 돈을 다른 사람한테

줘서 이자만 키웠어요--에잇! 쯧쯧-

[범쇠] (여전히 마당을 서성대며) 아암!!

[임제순] 곰치!

[곰치] (넋빼고 서선, 헛소리 처럼) 예에! 예에!

[임제순] 넉접이 빚 반은 있어 줬어! 돈으로야 사천원제한것 이제만 이자를 생각해 보소!


[페이지] 015

근 반쯤 제해 준 것이나 다름 없는것 아니여?

[곰치] (어이가 없어) 그람 부서 넉접에 사천원 제했단 말잉게라우? 그람 이만원은 그대로 남꼬라우?

[임제순] 물어서 뭣해? 이치가 그렇지 않응가?

[곰치] (기가 차서) 허어-

[성삼] (격분하여) 안됩니다! 그럴수는 없지라우! 돈 사천원에 부서 넉접이 넘어가요?

[임제순] (발끈해서) 아니면 으짤 참이여? 이자를 생각해봐! 놀랠 것이 뭇이여?

[연철] (비꼬는 투로) 놀랠것 하나도 없지라우! 이렇게 될줄 뻔히 알었지라우! (불같은 한숨)

[임제순] 뭇이라고? 저놈이 으따 대고 비양질이여?!

[곰치] (체념조로) 알었음녀--(연철에게) 아무소리 말어! 다들 입을 봉해!

[성삼] 곰치! 입을 봉할때가 따로 있어! (오기스런 안감힘)

[곰치] (신경질 적으로) 시끄러웝!!

[임제순] 곰치!

[곰치] (지친듯) 말씀하시게라우--

[임제순] --- 자네 섭섭할런지 모르겠네만은-- (강경하게) 남은 이만원 청산할때까지 내일부터 배를

묶겄네!


[페이지] 016

묶겄어!

[곰치] (기겁할듯 놀라) 예에? 아니 배, 배를 묶어라우?

[성, 연, 도] 배를 묶다니?!

[구포댁] (펄쩍뛰며) 웠따! 믄 말씀이싱게라우? 아니, 해필이면 이럴때 배를 묶어라우?! 예에?!

[임제순] (단호하게) 나는 두말 않는 사람이여!!

[곰치] (애걸조로) 영감님! 배만은, 배만은!!---

[임제순] (손을 저으며) 더 말 말어! (몇걸음 걸어나가며) 배가 없어서 고기를 못잡어! 배 빌려돌란

사람이 밀린단 말이여!

[곰치] (따라가며) 영감님! 사나흘 안으로 빚 갚지랍녀! 요 참물만 안 놓치먼 되고 말고라우! 제발

배는 풀어주씨요!! 제발!

[임제순] (곰치를 떠밀며) 안돼! 안된다먼! 임제순 재빨리 퇴장. 곰치 그 자리에 우뚝 선채 넋 나간

사람처럼 움직일줄을 모르고, 슬슬이 술 그릇을 들고 들어와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감한 듯

망설이다간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범쇠, 슬슬이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페이지] 017

말고 이내 더 바비 마당을 서성댄다.

[범쇠] (쩝쩝 입맛을 다셔가며) 거 안됐어! 서로가 곤란한 일이라---

[성삼] 곰치! 안되네! 배가 묶여서는 안돼! 기를 쓰고 배는 띄어야 하네! 배만 묶이면 다 죽어!

[연철] (격정적으로) 이런때 배가 묶여? 죽으란 소리보다 더 지독한 말이여! 안되고 말고!

[도삼] 아아- (마룻바닥에 벌렁 누워 버리며 양팔로 얼굴을 감싸 버린다)

[구포댁]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으며) 이고, 이 일을 으째사쓸꼬! 신부방에다 둘러리 색시 넣고는

불을꺼도 분수가 있제, 고기를 고기대로 떼고 느닷없이 이만원을 당장 갚어내라고? 뻔한 짓이제!

이렇게 일을 사내키같이 꼬여 놓고는 배 삯이나 더 두둑하게 받어 처 묵을라고는---

[성삼] (곰치의 팔을 흔들어 대며) 곰치! 정신을 채려! 으찌께라도 방도를 캐사제! 엉?

[곰치] (못 박은듯 서선, 허탈하게) 놔둬어-

[범쇠] 아암! 성삼이 말이 옳아! 한시바삐 방도를 캐사제!


[페이지] 018

(야릇한 표정으로) 방도가 없지는 않컸제--- (성삼을 이윽히 쳐다본다)

[성삼] (생기가 도는 얼굴로) 으찌께 하먼 좋컸오? 응?

[범쇠] (능글맞은 웃음을 물곤) 글씨--- 글씨---

[성삼] (급하게) 아니! 훗딱 훗딱 말을 해 보시랑께?

[구포댁] (사정조로 범쇠에게) 제발 배만 풀리게 도와 주씨요! 은혜는 말 새끼가 돼서라도 갚지라우!

[범쇠] (깊은 생각에 잠기다간, 불현듯 은근한 소리로) 날 따라오게!

범쇠, 후적후적 걸어 나간다. 성삼 생기가 돌아 바삐 따라 나간다. 곰치만 여전히 못 박은듯 선 채

움직일 줄을 모르고, 구포댁 연철, 도삼, 기대에 찬 눈들로 성삼의 뒷 모습을 지켜 본다.-용암-


[페이지] 019

[막] 1막

[장] 2장

[무대] 전장과 같은 무대. 전장의 이튿날 아침, 용명이 되면 불안한 얼굴의 구포댁이 마당을

서성대고 있고, 침통한 표정의 도삼이 마루끝에 앉아 있다. 이때 별안간 울려오는 징소리, 꽹과리

소리-

[구포댁] (떨리는 목소리로) 흥! 범쇠 이노옴!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살제만은 그란다고 개 가죽은

안썼어! (갑자기 귀를 틀어막으며) 저놈의 징소리 그만저만 울렸으면! (한동안 그대로 서 있다간

귀에서 손을떼고) 그나저나 그느 아부지는 믄 일이끄나? 이때까지 낯짝 한번 안뵈고는?

[도삼] (못들은 체, 망연히 뚝쪽으로 귀를 쫑그리고만 있다)

[구포댁] (애가타서) 아니, 믄 일로 요렇케도 소식 한자리 없으끄나? 으째 죽은 사람같이 얼씬도

안하까?

[도삼] (그제야 퉁명스럽게) 아버지가 놀러 댕기시요?

[구포댁] 그랑께 하는 소리 아니여? 반다시 믄 곡절이 붙어서 그랄 테제만은------ (언성을 높여)

속이 안썩어? 지글지글 속이타서 하는 소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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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삼] 지금쯤 멱살이라도 안 잡혔는지 모르겄오! (나직하게) 더러운 놈의 세상!

[구포댁] 멱살? 멱살을 잽혀?

[도삼] 엄니는 꿈꾸고 계시요? 임제순이 성미를 모르셔서?

[구포댁] 그란다고 아침부터 멱살이야 잡을라고? 글씨----- (점점 낯색이 어두워진다)

[도삼] (비통하게) 집안꼴 좋다아- 슬슬이를 사간다는 놈이 없능가------

[구포댁] 니가 으쯔자고 애미 속을 푹푹 썩혀주냐? (얼굴을 감싸며) 제발, 제발 고만 해둬!! 이때

동네 아낙 1.2 숨이 목에차서 들어온다.

[아낙1] (덥석 구포댁의 손목을 잡고는) 어따 구포댁! 제발 나한테 한소쿠리만 얹혀주소! 어이!?

[구포댁] (영문을 몰라 아낙 2를 쳐다보며) 아니 믄 소리여?

[아낙2] (원망스럽게) 인, 사람도! 그렇게 시치미만 뗄랑가?

[구포댁] (어이가 없다는듯) 허참! 내가 도깨비 한테 씨였단말인가?(다급하게) 아니, 대체 믄

소리들여, 응? 내가 믓을 시치미를 떼고 자시고 한단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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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1] (빈 소쿠리를 발 앞에다 아무렇케나 팽게치며) 이것보게! 이래도 몰라?(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인, 사람도--- 이래도 모른체 할 것잉가?

[구포댁] (더욱 기가차서) 허어참! 나 참말로 도깨비한테 머리끄덩 잡히고 끌려가는 모양이시! 아니

쥐뿔도 모를 소리들만 으째 이렇게 해 댄당가들? 그란해도 속이 썩는디!

[아낙2] 구포댁도 그새 변했구먼! 목돈 보먼 방구석에도 시염돋아 나온다고 하드니 참말로 구포댁이

그짝 났네거!

[구포댁] 자꼬 사람속만 썩혀주지 말고 싸게싸게 말들이나 해 보소! 그래 내가 뭇을 시치미 떼? 은제

시염 돋은 방구를 뀌였어? 꿈 같은 놈의 목돈은 또 믓이랑가? 으응?

[아낙1] (소쿠리 안을 손바닥으로 텅텅치며) 여그다가 부서 반접만 띠여 주란 말이여! 암말 말고

어서어-

[아낙2] (소쿠리를 구포댁 앞으로 바싹 들이대며) 자아- 여그도 있네! 우리들이 반접 각꼬 나누면 꼭

되니께 더돌란 말도 않는단 말이여! (수선스럽게 돈을 세어대며) 공짜로 돌란 말이 아니여! 아 돈은

이렇게 있단마시! 보소! 돈이 아니고 코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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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삼]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허어.

[구포댁] (그제야 말뜻을 알아차리곤 기가 막히다는 듯) 이고, 이고 이 속없는 놈의 여편네들아!

시상에 시상에----- (가슴패기를 한 두번 텅텅 쳐대고나선) 아니, 부서를 두고도 으뜬 속 몹쓸년이

자네들 한테만 안 판당가? 으응? 내가 부서를 봤으면 이 손톱에다 장을 지지네! 이 손가락에다 불을

킨단마시!

[아낙12] 아니, 그람--- (크게 놀라며) 그믈 안 담궜단 말이여?

[구포댁] 그믈? 그믈을 담궈? 아니 배가 묶였는디 그믈을 땅바닥에 담궈? 에끼 속없는 여편네들아아-

(비통하게) 요참물에 부서 비늘을 잡어 봤으면 내가 개성쓰네!! 참말?

[아낙2] (그대로 곧이가 안들리는듯) 어따, 구포댁! 연극좀 그만 허소!

[덕삼] 아짐씨들! 아무리 가난하게 사요마는 우리는 그런 연극 못하요!(격정적으로) 배는 묶여있소!

꽝꽝 묶여 있단 말이요!

[구포댁] (얼른 말끝을 채서) 아니, 우리가 그런 몹쓸 것들로 뵤가? 응?

[아낙1] (계면쩍어) 아니제! 아니제! 우덜도 하도 속이 썩어 해본 소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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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다 아는 구포댁 맘씨를--- (안타깝게) 글씨 생각좀 해 보소! 인자사 아침 전인디 꽹과리 소리

듣고도 예사로 알고는 우리 이만 늦장을 피다가 싸묵싸묵 나가 봉께는----

[아낙] (얼른 말을 받아) 두배가 다 부서가 터지는 만선이네 그랴! 뚝은 꼭 시장속 같이 발 디딜데가

없고, 거기다가 돈이 긴 사람들이 한접씩 반접씩 채가는 통에 우덜맹끼로 돈이 짧은 것들은 차례로

안돌아 온단마시! 팔뚝같은 놈의 부서가 들독이니 나는디도 멀거니 구경만 하다가는 번뜩 구포댁네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담박굴쳐서 왔는디---- (꺼질듯이) 후유!

[구포댁] (헛소리 처럼) 만선! 만서언---- 이때, 무거운 소쿠리를 이고(싸게싸게 갑시다예!)(앞

사람들 후딱후딱 걸읍시다예!) 이런 말들을 가쁘게 내 뱉으며 동네 아낙, 남정네들이 마을쪽을 향해

바쁜 걸음들로 사림문 앞을 지나간다. 넋 빼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네사람.-사이-구포댁 실성한

사람처럼 바삐 마당을 서성대기 시작한다.

[구포댁] (간이타게) 가난이 믓잉고?! 이놈의 가난이 대체 믓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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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삼] 바로 이것 아니요? (격정적으로) 펄떡펄떡 뛰는 부서를 눈앞에 두고도 배를 띄우기는 커녕

멀거니 앞산팔고 앉어서는 저 기뻐서 미쳐 날뛰는 소리마저 듣기 싫어 귀를 틀어 막어 사 쓰는 이것

아니여?(야릇한 웃음 뒤에, 허탈하게) 입을 봉하고 살어! 입이 백개라도 꼭꼭 봉하고 살어----

[아낙1] (건성으로) 아문! 아문!! (소쿠리를 힘없이 들어 겨드랑이에다 끼다말고) 아니, 아니?----

(귀를 뚝쪽으로 애써 쫑그린다)

[아낙2] (덩달아 귀를 쫑그리다간) 저 소리가--- 저소리--- (갑자기 희열에 넘친 얼굴로) 배다!

배여! 또 들어 오능가?

가늘게 들려온던 소음, 점점 커지면서 어부들의 똑똑한 함성으로 변한다. 터지기 시작하는 징소리,

꽹과리. 아낙1.2 미친 사람들처럼 허겁지겁 사립문을 나가 버리고 구포댁과 도삼의 얼굴은

처절할이만치 일그러진다.

[구포댁] (새삼 떨리는 목소리로) 느그 느그 아부지는 믄 일이여?

[도삼] (아랑곳 하지않고) 기가 맥혀서! 이것이 믄 꼴이여?

[구포댁] 이렇게 속이 썩고는 못살어! 못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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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삼] (침통하게) 은제는 잘 살았오? 저 슬슬이년만 아니라도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뱃놈생활 싹

집어 치울라고 했는디!

[구포댁]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쉬잇!

[도삼] (못 본체) 두 눈이 청청한 이 오래비가 저것을 그대로 술집년 맨들 수는 없고말고! 아암!

(우악스레 손마디를 꺾어가며) 보자! 요참물에 오십접만하면 이만원은 끄떡없응께! 슬슬이년 빚에

팔려가진 않을 것이고----

[구포댁] (바싹 다가들며) 아니, 니가 미쳤냐? 미쳤어? (간이타서 속삭인다) 저것이 들으면 으짤라고

오가리 깨지는 소리로 지랄이여? 응?

[도삼] 들으면 으짠다우? 천상 알고 말것인디!

슬슬이 물동이를 이고 사립문을 들어선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감한듯 헛간벽에 가만히

붙어선다.

[구포댁] 뭇이라고? 그것이 말이여 막걸이여? 그래, 말만한년이 그 소리를 듣고 배겨나? (부엌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있단 말이여! 슬슬이가 있어! 주둥이 좀 덮어! 제발, 제발로!

[도삼] (귀찮다는듯 벌떡 일어서며) 아니, 그것이 믓이라고 쉬쉬할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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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이만원에 지가 팔려 가지만 안허먼 그만 아니라고?! (격하게) 씨알도 쉬쉬할 필요가 없어! 이

오래비가 있단 말이여!!

[구포댁] 그 팔려간단 소리 그만 하랑께! 말이 없어서 팔린단 말만 갖꼬 지랄이여!

[도삼] 허참! 팔려가고, 갈보가 되고 간에 그렇게만 안되면 그만 아니요!

이때 슬슬이 심한 충격을 받은듯 비틀대다 머리위의 물동이를 놓쳐버린다. 물동이가 깨지는 소리에

두 사람 흠칫 놀라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이윽고 구포댁 황급히 헛간

모퉁이로 달려간다. 그제야 정신이 든듯 재빨리 나오던 슬슬이 구포댁과 딱 마주친다.

[구포댁] (어쩔줄을 몰라) 아니, 니가?!

[슬슬이] 소, 손이 쑥 빠져붐시러 그냥 낼쳐 깨지구만----- (앉아 오가리 조각을 줍는다)

[구포댁] (엉뚱하게) 정지에 있는 줄 알었드니---- 은제 들어왔든? 응?

[슬슬이] (딴전을 피우며) 금방 들어 오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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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그제야 안심이 된듯) 후유- 으짜다가 아침부터 오가리는 깨고 야단이냐? 뱃사람들 한테는

아침 운수가 기중 중한 것인디---- (깨진 오가리 조각들을 발로 쓸어버리며) 고만 둬! 그까짓껏 줏어

믓할래----

[슬슬이] (침통한 얼굴로 한동안 발밑만 쳐다보고 섰다가) 엄니! (글썽해진 눈으로 구포댁을

쳐다본다)

[구포댁] (당황해서) 으, 으째?

[슬슬이] (별안간 설레 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 아무것도---- (말끝을 흐려 버리며 바삐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구포댁] (불안해서) 아니! 야아! (몇걸음 쫓아 가다가는 어두운 낯색으로 서 버린다)

[도삼] 야아! 슬슬아!

[슬슬아] (소리만) 예에.

[도삼] 믄 지랄났다고 한 여름에 정지문은 첩첩이 닫고 지랄이여 (언성을 높여) 아부지 봤디?

[슬슬이] (역시 소리만) 못 봤어라우. 범쇠 영감만 보고-----

[구포댁] (짐짓 놀라며) 범쇠? 아니, 으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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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이] (소리만) 시암 가에서----

[구포댁] 그래 믄 말이라도 하디야?

[슬슬이] (부엌에서 나와 우편 방 툇마루에 앉으며) 아무 말도-- (고개를 내 젓는다)

[구포댁] (퉁명스럽게) 진장칠놈의 영감탱이가 시암에는 뭇났나고 와? 청승맞게!

[도삼] (풀죽은 소리로) 슬슬이가 있응께는 슬슬 기어 왔겄 제머-----

[구포댁] (독살스런 눈으로 도삼을 쏘아보며) 믓이여? 믓이라고?

[도삼] (난처한듯) 원! 오늘 아침에는 으째 그렇게 쐐기같이 톡톡 쏘기만 하요?

[구포댁] 너사말고 오늘 아침에는 으째 배암 섯바닥같이 널름 널름 비양질만 하냐?

[도삼] 저놈의 하늘좀 보씨요! 우중충하니 꼭 방귀참는 씨엄씨 낯짝 같어 각꼭는----

[구포댁] 인- 능청맞은 놈!

[도삼] 허허허-내참--- (가라앉은 소리로) 엄니, 생각좀 해 보쑈. 그래 집구석 돼가는 꼴이라니 기가

맥히고, 남들은 새벽부터 그믈을 담구는디 우리는 믓이란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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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한그믈 속에 한접반씩은 암짝해도 들어 올릴텐디 아부지는 배임자한테 사정하러 가서 소식

한자리 없고--- (침통하게) 이거 기맥힐 일 아니여?

[구포댁] 누가 아니라냐!! (꺼질듯) 후유.

[슬슬이] 이랄때는 똘망배 하나만 있어도 한나절이면 퉁시리가 터질텐디!

[도삼] 누가 아니라냐? 그저 똘망으로 잡고기 담어 올려서는 읍에다가 파는 것이 제일이여!

(열을내서) 새우, 짱애, 운저리 하다못해 반장게라도 여섯퉁시리만 해봐----(불만 스럽게) 사흘안에

밀린 배삯 치르기로 도장 눌러야 겨우 배를 풀어 줄텐디 밀린 배삯이 이만원이여! 이만원이 누 애기

이름이여? 더구나 사흘안에? 배를 띄운 띄운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나마라도 묶이면 꼼짝없이

죽어사 쓰고---- 그라고---- (슬슬이에게) 이것아! 너는 너는---- 이고 복장 터진다!

[구포댁] (다급하게) 도삼아!!

[도삼] (못들은척) 우리 형편에 남의 중선배를 띄우는 것이 애사당초 엉뚱한 짓이제----틀리고 말고!

도삼, 어이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립문께로 가는데 성삼 숨이 차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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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이 울음을 씹는 얼굴로 우편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도삼] (반갑게) 아자씨! 어서 오씨요!

[성삼] 곰치는 이때 안들어 왔능가?

[도삼]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예예! 한나절이 되사자 오실랑가 원------

[구포댁] 아자씨도 도삼이 아부지를 못 보셨오?

[성삼] 아침에 감깐 보고는 못 봤지라우---- (화가 치밀어) 그나저나 기가차서 죽을 일이시! (도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 사람아! 남들은 만선부서를 벌써 두배, 세배를 퍼내는디 이것이 믄 꼴이여?

[도삼] 벌써부터? 참말이라우?

[성삼] 아암! 참말이다마다! 칠산 앞 바다에 허벅다리 같은 부서떼가 사태라네. 사태! 요상스런

일이제! 몇십년 뱃놈으로 썩었지만 칠산 바다에 부서떼가 밀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여! 요참물 같은 부서

풍년은 한번도 없었어!

[구포댁] (희비가 반죽된 야릇한 얼굴로) 듣기만 해도 오저 죽겄오!

[도삼] 어허- 이것을 그냥 듣고만 있어사 해?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탁탁 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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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내말이 바로 그거란 마시! 임제순이 속도 칡넝쿨이제, 아 이럴때사 말고 배를 풀어사 쓰는

법이시! 속는단 셈치고 두고 보면 될꺼 아니여? 지길헐 배는 묶어놓고 사흘안으로 배삯 청산하라니 그

작자 속이 사람 속이여? (가슴패기를 치며) 이고 답답해서!

[구포댁] (안절부절 못하며) 그나저나 이 양반이 믓 일이꼬?

[성삼] 뻔한 일이지라우! 계약서에다 지장이나 누르고 할랴치먼 한참 되지라우!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고 나선) 그나저나 슬슬이 땀세---- 깐닥하먼 그놈 그믈에 들고 맙니다! (고개를 내 저으며)

돈보다 상전이 어디있어------

[구포댁] (재빨리 말끝을 채서) 웠따! 아자씨! (우편 방을 손가락질 하며 나직하게) 있단 말이요,

있어!

[성삼] (혀바닥을 쑥 내밀을 놀라는 시늉을 해 보이고 나선 일부러) 내말은 슬슬이가 얌전하단

그말이지라! (더큰 소리로) 일도 슬슬 자 하겄다, 맘씨도 슬슬곱겄다, 얼굴도 슬슬 곱겄다---- 아,

그래서 슬슬이랑께는, 내가 믄 못할 소리를 했오? (눈을 찡긋, 어깨를 움칠해 보이며 웃음을 참는다)

[구포댁] (허리를 애써 가누며) 호호호- 아자씨 넉살에는 얼음속 굼뱅이도 춤춘당께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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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바로 서선) 속이 썩는 판에 참말로 한판 멋지게 웃었네거-----

[성삼] (쓸쓸하게) 더러 웃기도 해사지라우------

이때, 징소리, 꽹과리 소리, 어부들의 함성, 다시 울려오고 뚝으로 가는 마을 사람들 부산하게

사립문앞을 지나간다. 성삼, 안절부절 못하다가 바삐 사립을 나가 오른쪽 길로 사라져 버린다. 도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내 성삼을 따라 퇴장-사이- 범쇠, 사립문 앞에서 머뭇머뭇 하며 집안 동정을

살피다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조심스레 마당으로 들어선다.

[범쇠] (멋적게) 아짐씨, 혼자 계싱갑만?

[구포댁] (퉁명스럽게) 야, 나혼자 있오!

[범쇠] 헤헤헤- 아짐씨 말소리는 은제 들어도 얼음짱같이 차기만 하당께-----

[구포댁] (냉정하게) 그라믄 으짠다우? 속이 썩어 죽겠는디 장작불을 땐다고 말소리가 펄펄

끊을고라우? 치아!

[범쇠] 허허허- 원, 말씀도 모질게도 끊어부르시네 잉----

[구포댁] (귀찮다는 듯이) 그란디 믄 일로 오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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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참에는 시암에 나오셨드라는디----

[범쇠] (놀라며) 아니, 그것을 으찌께 아시요?

[구포댁] (야유조로) 우리 슬슬이가 그랍디다! 흥!!

[범쇠] (멋적어서) 오오! 그, 그랬지라우----- 그냥 지나가다가 한번 기웃거려 봤지라우--- (갑자기

정색을 하고) 아짐씨!

[구포댁] 으째 그라시요?

[범쇠] 헛참! 아짐씨가 감정을 훅- 멎고 말씀 하셔야제 내 말문이 터지제 그렇게 쏘기만 하시먼---

(은근하게) 안그라요?

[구포댁] 엇다, 귓구멍에 미영씨 안 백혔응께 말이나 싸게싸게 하소 그래! 듣고 있으면 됐제

통치마라고 믓을 훅 벗고 말고 한다우?

[범쇠] 갈수록 기맥힌 말만 해대니---- (정색을 하고) 아짐씨! 내가 긴요하게 여쭐 말씀이 딱 한가지

있는디-----

[구포댁] (매정하게) 말 안들어도 빤히 알어라우---- (손을 내 저으며) 당최 더 말씀 마쑈예!

[범쇠] (바싹 구포댁에게 다가들며) 아짐씨! 그라시지 말고 내 말을 찬찬히 들어 보씨요! 내가

한가지도 서운한 소리는 안합니다--- 아문이라우!

[구포댁] 웠다. 찰엿 맹키로 끈덕지기도 하요! 싸게싸게 말해 보쑈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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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사 생각이 난듯 우편 방을 향해) 야아, 슬슬아!

[슬슬이] (소리만) 예에!

[구포댁] 동네 내려가서 아부지나 한번 찾어 볼테냐?

[슬슬이] 예에.

슬슬이 방에서 나와 질시의 눈빛으로 범쇠를 쏘아 보고 보고 나선 사립문을 나간다. 범쇠, 슬슬이의

풍만한 둔부에 탐욕스런 눈길을 박은채 정신 나간듯 서 있다.

[구포댁] (못 마땅해서 그러고 서 있는 범쇠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아자씨?

[범쇠] (흠칫 놀라) 예에, 예에!

[구포댁] 남의 딸년은 으쨌다고 그렇게 불쓰고 쳐다보시요? (흘겨보고 나선) 흥!!

[범쇠] 히히히 (마루끝에 가 앉으며) 아짐씨!

[구포댁] 웠다. 그놈의 아짐씨 닳아 지겄오! (노골적으로 화를 내선) 어서 말이나 하지 않고는 믓

났다고 불러 대기만 해싸?

[범쇠] (약간 기가 질려) 저--- 저어---- 생각해 보셨오?

[구포댁] (독살스럽게 쏘아보며) 믓이라우? 믓을 생각해라우? (날카로운 목소리) 다시는 말하지

마쏘예? 빛 이만원에 달덩이 같은 내 딸년을 팔으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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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쇠] 판다 생각하면 쓸 것이요? (은근하게)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만---- (정색을 해서)

내가 당장 이만원 내 놓지라우?

[구포댁] (기가 막히다는듯) 허 참! 인자는 아조 공갈협박을 노시네거! 이만원이 아니라 금싸래기를

뿌린다 해도 못하겄어!

[범쇠] (다급하게) 아짐씨! 이놈 맘은 그것이 아니지라우! (한참 말설이다간 용기를 내서) 나는 나는

슬슬이를 내 안사람으로 맞고 싶단 말이지라우!

[구포댁] (깜짝놀라) 믓이라우? 안 사람?

[범쇠] (어색하게 손바닥을 비비적 거리며) 슬슬이가 눈에 꼭 들어서느은-----

[구포댁] 아니, 아자씨네 집에만도 색씨가 셋에다가---- (기가차서) 아자씨 한테는 안 사람이 믄

물건인 것 같소 잉? (악에 받친 소리로) 아무리 없이 산다고 그래 우리 슬슬이를 그저 잡아묶고

싶어서? 흥!!

[범쇠] (정색을 하고) 아니, 이 여편네가 나중에는 못할 소리가 없네? (스스로 노기를 걷곤) 아짐씨!

(은근하게) 끝내 그말 참이요?

[구포댁] (완강하게) 아문!!(단호하게) 절대 안돼! 부서가 사태여!


[페이지] 036

[범쇠] (한동안 구포댁을 쏘아보다간) 흥!!부서가 사태여?

[구포댁] 아문 이라우!

[범쇠] 흥! 부서떼가 사태나먼 믓해? 배를 띄울지도 으짤지도 모르는 판에 물속에서 노는 부서떼가

날개달고 날아와? 걸어서 들어올 것이여? 말이 오십접이제 사흘안에 이만원? 흐흥!!

[구포댁] 누가 아자씨 비양질 하는 소리 듣고 싶다 하요? 어서 핑 내려가시기나 해! 어서라우!

슬슬이 들어 오먼은 괜히 눈치 채는디! 어서라우! 아, 어서 내려 가시랑께? (닭쫓는 시늉)

[범쇠] (한두 걸음 밀려가며) 아니, 아니?

[구포댁] 말은 다 끝났응께 핑 가시라는 디 믓이 잘 못했오? (손을 내 저으며) 어서, 어서

가시게라우!

[범쇠] (말을 못을 박아) 그래 두고봐! 두고 보먼 알것제! 흥!! 부서떼가 사태? 흥!!

범쇠, 투덜대며 사립문을 나가려 할때 곰치와 연철이 들어온다.


[페이지] 037

연철이만 범쇠에게 까딱해 보일뿐, 곰치와 범쇠는 서로 본체 만체 머믓거리다간, 범쇠 도망치듯 왼쪽

길로 퇴장해 버리고 곰치 오기스러운 안간힘을 쓰며 마루 끝에 와 앉는다. 연철은 큰 다래끼를 들었다.

[연철] (다래끼를 내려 놓으며) 어이구 무거워!

[구포댁] (다래끼 속을 들여다 보고나선 눈이 휘둥그래쟈서 두 사람을 쳐다본다)

[연철] 잡은 고기지라우!

[구포댁] (새삼스레) 옴매 내 정신 좀 보게! (곰치에게 다가가며) 아니, 아침도 안 잡숫고는 으디

갔다 인자사 오시요?

[곰치] (그 말엔 스늉도 앗고) 믄 일로 왔다 가능고?----

[구포댁] (망설이다가) 그냥--- 놀러 왔다 갔지라우----

[곰치] 놀러? 흥! 슬슬이 땀새 슬슬 기어왔다 가는 것이겄제!

[연철] (헛소리 처럼) 슬슬이 땀새?---- (영문을 몰라) 아니 범쇠 영감이 으째 슬슬이 땀새? ----

[구포댁] (엉뚱하게) 영감탱이가 으찌께 끈덕진지 오뉴월 찰엿이랑께!

[곰치] (격정적으로) 미친놈! 그래 이 곰치가 죽어 나자빠진 줄 알어? 곰치가 죽어? 흥!!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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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그란디 오늘 말을 들어 봉께는 영감속은 달습디다.

[곰치] 달러? 뭇이?

[구포댁] (민망스럽게 연철의 얼굴을 살피며) 글씨---- (용기를 내서) 하기사 연철이는 우리집 식구

같응께는 말을 해도 상관 없겄제머----

[연철] (억지로) 아, 아문이라우-----

[구포댁] (다짐하듯 연철에게) 꼭 봉합시다 잉? 하도 챙피스런 말이라서----

[연철] (불안에 저린 얼굴로) 그 사람이라우?

[곰치] 연철이가 아니라 동네 굿을 한다 해도 챙피할것 없어! 그렇게 안되먼 그만이재머, 그래 그놈

속이 믓이 으짜더라고?

[구포댁] 영감 마음은 우리 슬슬이를 예펜네 삼고 싶다는 것이여!

[곰치] (크게 놀라) 뭇이라고?

[연철] 예편네? (말문이 막혀) 어허허- (침통한 얼굴로 감전 당한듯 서 있다)

[구포댁] 술집 계집 만드는 것이 아니람시러 펄쩍펄쩍 뛰드니 입이 닳아저라 사정사정 하는 것을

내가 하도 독살스럽게 함께로 코가 쑥 빠저서는-----

[곰치] (깊은 생각에 잠기며) 하긴 범쇠만 나무랄 일이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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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언성을 높여) 그라제만 이 곰치가 아직은 두눈이 멀뚱하단 그말이여! 이만원땀세 내가

져?(노기를 띠어) 미친놈! 쓸개 빠진놈!! 흥!

[연철] (곰치에게 우루루 다가가선 살기찬 음성으로) 아자씨! 그래 그놈의 영감을 가만 둬요? 그런

말을 씨불대는 그놈의 주둥이를 그냥둬요? (주먹을 불끈쥐어 허공을 내젓는다)

[곰치] (무뚝뚝하게) 그런소리 하먼 못써! 저놈 욕심이 그런것을 믄 죄 지었다고 죽여? (태연하게)

내버려둬! 내가 이기면 그만이여! 지면 할 수 없어! 이겨 사제!!

[연철] 그라제만 그런 말을 (심한 고통을 참고 섰다)

[구포댁] 그나저나 임영감 만나 보셨오?

[곰치] 누가 놀러 댕겼어?

[구포댁] 원, 말도 모지게도 하요거! 일이 으찌께 됐냔 그 말이제---- 은제 임영감 만나고 은제

고기잡고----

[곰치] 오늘 같은 날 배를 안타고, 이 곰치가 배겨날 것 같어? 중선배를 못타먼 남의 똘망배라도

끼어 타야제--- (광석으로) 나도 오늘 배 탔다! 중선배에 부서는 아니어도 똘망배 타고 고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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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쪽을 향해 자꾸 손가락질을 해 대며) 느그들만 고기 잡았어? 응!!

[구포댁] 속 끓이지 마쑈예--- 이라지 마쑈예--- (연철에게) 우리 배는?

[연철] 내일 모래까지 뱃삯 치르기로 하고--- (똑똑히) 배는 풀렸오!

[구포댁] (좋아 펄쩍 뛰며) 응!! 풀렸어!!

[곰치] 내일 배 푼다! (생기가 돈 얼굴로 야릇한 웃음) 으흐흐!

[구포댁] 내일사 풀어? 이고 속 터져! 남들은 아침절에 두배를 푸는디!

[곰치] 그것을 누가 몰라? (안타깝게) 간쪽이 썩어 문들어진다! 그래 몇 십년만에 처음 백힌

부서떼를---- (주먹으로 마루를 텅 치며) 이것을 그냥----그냥 남의 그물 속에다만 처 넣어주고 있단

말여!!

[구포댁] (덩달아 몸을 부르르 떨며) 이고 속 터져! (옷 고름으로 두 눈을 꾹 누르고 나선) 시상에!

바다에다 목숨 붙여 묵꼬 삼시러는 좋은 일이 있었어? 물줄같은 아들들만 셋이나 지사지내고-----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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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벽력같이) 또 그소리! 미쳤어? (발악적으로) 시끄럿!!

[구포댁] 속이 타서 그란하요? 몇년동안 배 붙여 묵음시로 죽고 살고 해야 배 삯 질러넣다 지치고는

목구멍 풀칠이나 으찌께 하다 봉께는 이만원 빚만지고 부서떼가 사태 났다는디도 멀뚱하게 보락꼬

앉아만 있을랑께는 속이 썩어 그라제머!

[곰치] (처절하게) 뱃놈 한 세상 그래서 똥 보다 더 더러운 것이란 말이다! 팔뚝에 심줄이 사내키

같이 꼬였어도 돈을 뫄아 봤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재며) 내 배도 없이 남의 배에 얹혀 묵고 사는

팔자에 사설은 믄 사설이란 말이여?

[연철] (곤란한 입장을 회피하기라도 하려는듯) 저어---- 도삼이는 으디 갔지라우?

[구포댁] (힘 없는 목소리로) 뚝에 나갔는디----

[연철] (망설이다간) 슬슬이는?

[구포댁] 즈그 아버지 찾으러 나갔었는디--- 동네에, 있겄제, 으째서?

[연철] (당황해서) 아, 아니라우! 나좀 나갔다 올랍니다--- (빠른 걸음으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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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 없다간 갑자기 곰치의 팔을 붙들고) 예에? 도삼이 아부지!

[곰치] (건성으로) 으째 그려?

[구포댁] (애걸조로) 요참물에 빚만 빼먼 아조 뭍으로 나가서는 땅이나 파묵꼬 삽시다! 예에?

[곰치] (두 눈을 부라려 뜨곤) 뭇이라고? (벌떡 일어서며) 미친 소리!!

[구포댁] (따라 일어서며) 아조 그랍시다 예에?

[곰치] (오나강하게 뿌리치며) 미친 소리 마럿!! 내가 눈속에 흙들 때까지 그물을 놓나 봐라! 그물을

놔? 바다를 떠나? 어림없는 소리 마라! 기여코, 기여코 똘망배 하나라도 장만하고 말 것잉께!

[구포댁] (악에 받쳐) 그람 몽땅 죽잔 말이요? 이렇게 눈치 보고만 살다가 밟혀 죽잔 말이요?

[곰치] 죽어? 아니 이 곰치가 으째 죽어? 곰치는 안 죽는다!!

[구포댁] (기진해서 체념조로) 후유- 당신 맘대로 하쑈그랴!! 당신 고집 대로만 하잔 말이여!

(울먹이는 소리) 날이 갈수록 그저 밤낮으로 아른그리는 것이 죽은 아들놈들 얼굴이고--- (비명처럼)

못살어! 못살겄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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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그 소리 싹 집어치지 못해? (구포댁의 코 앞에다 손가락 삿대질을 해대며) 내가 여기를 떠?

이것아! 생각좀 해봐라! 삼대가 다 물속에서 죽었어! 곰치가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에는 차라리 배를

갈르고 말꺼여!

[구포댁] 그래, 내가 뭇이라고 했길래 이 수선이요? 삼대가 아니라 십대라도 물귀신 만들먼 씨언

할거 아니요? (양 무릎 사이에다 얼굴을 묻으며) 이고오-내가 뭇하러 저 새끼를 낳등고? 뭇한다고 늙은

년이 또 아들을 퍼 내질렀어?

우편 방속에서 갓난애 울음 터진다. 구포댁 비틀비틀 방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곰치 넋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때 마을 사람 몇명이 꽹과리와 징을 두들기면서 덩실덩실 춤을 춰가며 사립문

밖에 나타난다 그들은 (곰치! 어서 나오게! 아 춤을 춰!) (이 좋은 날 으째 멀뚱하게 서 있어? 어서

나와 춤을 추세에! -춤을-) 곰치에게 이런 말을 던지며 오른편 길로 사라져 버린다. 곰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들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고 있다말고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마당을 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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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시작한다. 쳇바퀴 돌듯 미친듯이 마당을 돌고 있던 곰치 뚝쪽을 향해 못 박은듯 우뚝 선다. 그의

얼굴은 처절할이만치 일그러진다.

[곰치] (갑자기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이, 이놈의 부서들아! 그저 옴싹달싹 말고 있거라아!

(두 팔을 들어 합장하곤) 곰치가 배띄울 때까지 옴싹말고 있어- 달싹말고 있으란 말이여! 이놈의

부서들아-

흡사 미친 사람처럼 곰치 뚝을 향해 넓죽 젊죽 절을 환다. 이때, 들어오는 성삼, 도삼, 슬슬이가

움칠 놀라서며, 타는듯 아픈 시선을 곰치에게 박고 침통한 얼굴들로 말이 없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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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장] 1장

[무대] 전막과 같은 무대, 전막으로부터 십여시간후의 그날 밤. 막이 오르면, 정이 겨운 여름밤의

분위기 무대에 슴슴히 배에 흐르고 잠시 비어 있는 무대-사이-슬슬이 조심조심 우편 방에서 나와

마당으로 내려선다. 초조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나선 거푸 꺼질듯한 한숨만 내쉰다. 슬픔과 불안이

반죽된 슬슬이의 얼굴.

[슬슬이] (망연히 밤하늘을 바라고 서선) 하나님도 너무하셔! 우리가 믄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려주시까?!(점점 비통하게) 수신님도 너무하셔! 오빠들만 셋이나 불러가시고는 뭇이 또 못마땅해서

일마다 트시기만 하실까?! (처절하게) 아, 아-

이때 들어오던 연철 우뚝서며 슬슬이를 정시 하다말곤, 헛간 벽에 바싹 붙어서며 귀를 쫑그린다.

[슬슬이] (옷고름으로 몇번 눈 두덕을 찍어대고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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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에 내가 차라리 사내로 태어 났드라면---- (주먹을 불끈쥐고) 물귀신이 되드라도 아부지를

도와드릴 수 있을텐디! (갑자기 풀이죽은 목소리로) 나는, 나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여자여--- 아부지,

오빠, 엄니 온 식구들 맘속에다 불을 질러주고 있는 하찮은 여자여--- (경건하게) 나는 믿어! 나땜세

속을 태우시고 있느 아부지 맘도, 오빠 맘도, 엄니 맘도 죄다 죄다 나는 알어! (한동안 얼굴을 감싸곤

깊은 슬픔에 잠기다간, 부스스 고개를 들고) 아아- 내가, 내가 범쇠 영감한테?! (몇 걸음 바빠 걸어

나가다간 우뚝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만약, 만약에 일이 틀리면 나는 범쇠영감한테?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이까?! 아아-(다시 얼굴을 감싸버리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연철, 비통한 얼굴로 따라 얼굴을 감싸다간, 뭣에 놀란 듯 재빨리 마당 가운데 나와 서며 타는듯

격정적인 눈길로 슬슬이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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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가라앉은 목소리로) 슬슬이!!

[슬슬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음마?! (당황해서) 아니----

[연철] (다가서며) 슬슬이!!

[슬슬이] (한두걸음 뒤로 물러 서며) 아니 은제 왔오?

[연철]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다간) 바, 방금 왔어.

[슬슬이] (부러 환한 낯색을 해가지고) 아직 안 오셨기에 멀뚱하니 하늘 보락꼬 서 있는 참인디----

[연철] 내가 조금 늦었제? (무겁게) 그래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슬슬이] (설레설레 도리질을 해대며) 그냥--- 그냥--- (돌아서며 하늘속에 눈길을 박고) 아무

생각도 안했어---- 으째 안오싱가 하고는 기다리는 참인디----

[연철] (따지듯) 참말? 참말로?

[슬슬이] (돌아선 채) 참말이여라우-

[연철] (다가가 슬며시 뒤로 안고는) 슬슬이!!

[슬슬이] (흠칫 놀라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으짝고! 누가 볼라고는!!

[연철] 누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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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은 없어(격정적으로) 슬슬이! 나는 슬슬이 없이는 못살아! 누구도 우리들 사이를 훼방치지는

못해! (와락 힘을 주어 껴안는다)

[슬슬이] (정신없이 몸을 맡기고 서 있다간 불현듯 몸뚱이를 빼며) 통도 커라 누가 보면 으짤라고!

[연철] (아랑곳 없이 더 깊이 껴안으며) 자! 보라고 해! 다들 보라고 하란 말이여!

[슬슬이] 이고 숨통이야! 어서, 어서 노씨요예? (애교있게 연철을 흘기며) 오늘은 이상해야?!

[연철] (슬며시 손을 풀고 침착하게) 이상할 것 씨알도 없어! 뭇이 이상해?

[슬슬이] 호랭이 같이---- 호랭이 같이--- (귀엽게 흘겨 보고 나선 수줍어서 옷고름을 만지작

거린다)

[연철] 호랭이가 아니라 사자가 되서라도 이기고 말것이여! (비장하게) 이기고 말어!

[슬슬이] (어리둥절 해서) 믄 말이요? 뭇을 이겨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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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뚫어져라 슬슬이를 쳐다보며) 그람 지란 말이여?

[슬슬이] (영문을 몰라) 아니,뭇을 지고 이기고 한다우? (불안한 얼굴로) 예에?

[연철] (다시 와락 껴안으며) 자아! 보라고해 범쇠영감한테 보라고 해!

[슬슬이] (기겁하게 놀라) 예에? 범쇠? (조심스럽게 연철의 가슴을 떠다 밀며) 범쇠?! (불안한

얼굴로 서서히 뒷걸음질 치며) 그것을! 그것을?

[연철] 다 알어! 다 알고 있어!

[슬슬이] (울쌍이 돼서) 난, 난 몰라!

[연철] 슬슬이, 모르고 알고 아무 문제가 아니여! (말에 힘을줘) 우리는 이긴단 말이여! 이기고

말어!

[슬슬이] 쓰러지듯 연철의 가슴에 안기며 비명처럼) 나는 으짜먼, 으짜먼 좋아?! 예에?

[연철] 뭇을 으째? 우리 둘이는 아무일 없어! 아니, 곰치 아자씨도 도삼이도, 우리들은 죄다 아무

걱정 없어! 우리는 안져! 절대 안져!

[슬슬이] 그라제만--- 그라제만 앞 일을 으찌께 안다우?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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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독백조로) 누구의 죄도 아니여! 세상이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여! 우리는 이놈의

세상하고 싸워서 이기면 되는 것이란 말이여! 발이 터지고 팔목이 부러져도 그저 이기는 길 밖에 없어!

[슬슬이] (감격해서) 아아! 그랬으면---- (머리를 연철의 가슴에 묻는다)

[연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렇게 돼! (서서히 걸어 뚝쪽을 향해 서선) 칠산 바다를 봐! 바다는

못 속여!! 백가지 만가지 일을 다 속여 묵어도 물은 못 속여! 저 칠산바다 속에는 부서떼가 사태로

들어 백혔어! 한물에 만선 끗떡없고 하루먼 세배는 만선 부서를 풀 수 있어! (획 돌아서며 생기를

띠고) 슬슬이, 배는 풀렸어! 내일 새벽에는 배가 떠! 이래도 근심을 할 것이여? (달려와 슬슬이의

손목을 쥐고) 슬슬이 바다는 못 속여! 우리는 이겨!

[슬슬이] (너무 기뻐서 넋나간 사람처럼) 참말? 참말 이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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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참말이다마다! 자아! (슬슬이의 팔을 잡아 당기며 이윽히 얼굴을 들여다 본다)

[슬슬이] (연철의 어깨위에 얼굴을 얹고) 나는 만약 일이 톨리먼 그만 주, 죽어 버리고 말꺼여?

[연철] 아니, 일이 틀리기는 왜 틀려? 방정맞은 소리 말어? 그라고 뭇이라고? 죽어? (슬슬이의

얼굴을 장난스러운 얼굴로 들여다 보다간) 에끼! 요놈의 주둥이를! (손으로 슬슬이의 입술을 꽉

꼬집는다)

[슬슬이] 아야! (곱게 흘기며) 음마?!

[연철] 뭇이 음마여? 응? 자아 인자는 슬슬 화를 풀고---

[슬슬이] (역시 흘기며) 음마?-------

[연철] 그라고 슬슬 웃어 봐!

[슬슬이] 음마?! (한동안 연철의 얼굴을 쳐다 보다간 피식웃어 버리며) 얼척 없어서---

[연철] (귀여워서 죽겠다는 듯이) 이고 요것이! (와락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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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만선이다아- 만선이다아- 곰치를 누가 당해! 격정적인 곰치의 잠꼬대 소리, 좌편 방에서

터진다. 두사람 흠짓 놀라 당황하다간 이내 어두운 얼굴들로 좌편 방을 응시하고 섰다.

[연철] (속삭이듯) 슬슬이! 들었제? 곰치 아자씨 잠고대 소리 들었제? 봐! 목이 터져라 만선이라고

소리 치시지 안해?

[슬슬이] (고개를 끄덕여 대고 나선, 꺼질듯한 한숨) 휴유-

[연철] (엄숙하게) 아문!! 바다는 못 속여! (힘차게 슬슬이 껴안는다)

[슬슬이] 그래! 알았어! 알었어라우---- (깊이 가슴을 파고 든다) -서서히 용암-

[막] 2막

[장] 2장

[무대] 전장과 같은 무대, 전장의 이튿날 이른 새벽 용명이 되면 곰치 회색이 만면하여 마당을

서성대고 있고 도삼과 연철, 그물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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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허참, 날씨 좋다아! 오늘같은 날은 그물척 한참 시들다 깨도

그물속이 터지게 부서떼가 들어 백힐 것이여!

[연철] (그물에서 손을 떼고) 그란디 이놈의 앞 바람이 과히 마음에 안드요야!

[도삼] 앞 바람이 불먼 고기떼가 갈린다는 말도 있제---

[곰치] 고기떼가 갈려? 흥! (생기가 도는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곰치가 돛 날리는디

부서떼가 갈려? 칠산바다 부서떼는 몽땅 담어 올릴 참인디!

[연철] (손바닥을 펴 허공에 세워 보고는) 이만한 앞 바람이먼 상관 없겄어!

[곰치] (얼른 말을 받어) 아암!! 되려 고기잡이에 좋을 앞 바람이다. 이까짓 것 아무리 불어 봐야

실가지 하나 못 건드릴 놈의 것--- 이런 앞 바람을 돛이 타야제 배도 기름칠 한것 같이 슬슬

미끄러지는 버이고---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생기가 돌아) 그나저나 날씨는 기중 좋은 날이여!

[도삼] 참! 오늘은 돛 달을 필요 없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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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아문! 돛 없어서도 배만 잘 흐르것는디여.

[곰치]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다간) 쌍돛 달자!

[도삼] 쌍돛이라우?

[곰치] (결의에 찬 목소리로) 아암!

[연철] 바람이 살살 붕게로 돛은 외돛도 필요 없겄소만--

[곰치] 모르는 소리! 오늘은 부서떼를 깊숙이 몰아사 쓰넨! 마침 오늘부터는 부서떼가 나갈길

트느라고 용 쓸때니까 슬슬 끌고 가다가는 몽땅 걷어 올려사 써! 금쪽같은 부서들을 으짠다고 남의

그물속에 나눠넣을 것이여?

[도산] 혹시 앞바람이 세질때를 생각해사지라우! 돛 가지고 가야 괜히 짐만 돼제머---

[연철] 앞 바람 끝에는 반다시 비바람이 뿌리는디----

[곰치] (발끈 해서) 쓰잘때 없는 소리들 말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디 무슬 안다고 씨불씨불--

(희열의 미소를 머금고는) 곰치 쌍돛 따라 부서야 여북 있어? (미친 사람처럼) 으흐흐- 눈에 선하다!

눈에 훤하다. 허벅다리 같은 부서로 지국층 만선이 눈에 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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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 아자씨 말씀을 들응께는 그것도 그런법 합니다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힘이 절로 나네거!

[곰치] (자랑스럽게) 내가 가죽만 쓴 헛깨비 뱃놈인 줄 알어?

[연철] 아문이라우! 동네가 다 알어주는 아자씨인디---

[도산] (무뚝뚝하게) 아부지 기술보다는 고집을 더 많이들 알어주제---

[곰치] 뭇이여? 고집? 흥!!

[도삼] (엄숙하게) 아부지!

[곰치] (노여워서) 말이나 해!

[도삼] (침착하게) 아부지 괜히 남의 중선배 부림시러 기죽고 살 필요없이 집이고 뭇이고 싹 팔아서

뜰망배라도 내배를 띄우고 삽시다!

[곰치] 똘망배? 아문! 종고말고! 그라제만 뱃놈은 역시 선배를 타사 쓰는 것이여!

[도삼] 그까짓놈의 캐캐묵은 생각 싹 집어치워야 합니다. 사정이 허락 않는디 뭇 났다고 기분대로만

중선배를 띄워라우?

[곰치] 그란해도 똘망배라도 준비해서 쓰겄다! (서서히 고개를 내저으며) 그라제만 그놈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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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들도 만선해서는 끼우뚱 끼우뚱 배 부리는 맛은 역시 중선배란 말이여! 그맛에! 중선배를 못놔!

[도삼] 그것이 틀린 말이란 말이요! 배에다 기계나 달고, 고기 떼를 훤히 보면서 비행기가 위에서

떠서는 날씨도 다 탐지하고----

[곰치] (잼싸게 말끝을 채서) 미친소리 하고 자빠졌다! 믄 지랄 났다고 배에다가 비행기를 싣고

댕겨? 아니, 고기 실을 자리도 모자란디 비행기를 실어? 기계를 달어?

[도삼] (불만스럽게) 고기 잡는 거시 뭇이라우? 기왕이먼 많이 잡어서 돈도 벌고 고생도 않고 살어사

쓸 것 아니요?

[곰치] 아암! 고기는 많이 잡어사제!! 그것을 누가 몰라?

[도삼] 바로 그 말이제라우? 그랄라고 기계도 놓고 비행기도 싣고 하는것이제머! 날씨도 제대로

몰라서는 무작정 나갔다가 엉띄한 놈의 바람 만나서는 죄다 빠져 죽고--- (열을 올려) 이래도라우?

얼쪽같은 놈의 중선배 그까짓 것을 하늘같이 믿고


[페이지] 057

는 죽어라 고기 잡어봐야 안됩니다. 안돼요!

[연철]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아문! 자네말이 옳아! 다른 것은 으짠다 치고라도 우선 날씨만은

알어사 쓸 것 아니라고?

[곰치] (강경하게) 뱃놈이 그런소리 하먼 못써! 고기를 많이 잡고 적게 잡는 것도 다 운이여!

지랄났다고 비행기가 뜨고 말고해 그놈의 비행기는 뭣에다 쓰는 것이여?

[도삼] 날씨를 판단 하는 것이지라우!

[곰치] (기가 막히다는듯) 뭇이라고? 아니 하늘이 하는 짓을 비행기가 으찌께 알어! 뱃놈이 물을

무서워 해서는 못쓰는 것이여!

[도삼] (그말엔 아랑곳 없이) 외국 사람들은 레이다로 물속에 있는 고기를 다 봐요!

[연철] (안타깝게) 적어도 그렇게 해서 고기를 잡어사제! 우리들은 은제 그렇게 될것잉고?

[곰치] (격분해서) 이놈들! 그런 소리하먼 못써! 그래, 뱃놈이 그믈줄을 잡고 눈이 썩어라 물을 쳐다

봐사제 믄 놈의 기계로 물속을 본단 말이여! 물에 나간 뱃놈이 한량들이라고 그럴새가 으디 있단

말이여!


[페이지] 058

그런말 곧이 듣고 맘쓰먼 못써! 속편한 놈들이 지어만든 말을 갖꼬 느그들이 괜히 들떠서는----(고개를

설레설레) 큰일이다. 큰일! 대를 일 뱃놈들이 저따위 말들을 씨불대고 있으니! 쯧쯧-

[도삼] (어이가 없어) 아니, 헛 말인 줄 아시요?

[곰치] 헛말이 아니먼 참말이여?

[연철] 아자씨! 그말은 참말이지라우! 다른 나라에서는 다 그렇게들 해서 고기를 잡지라우?

[곰치] 그것들이 뱃놈들이여? 돈 많은 놈들 놀음이제? 나 원 별소리를 다 듣겠네! 아니 물속에서

노는 고기를 으찌께 봐? 즈그들은 그렇게 해서 고기잡고 나는 중선배 몰고 고기잡고 해서 누가 더 많이

잡는가 시합을 하자고 해봐라! 뻔한 일이제! 곰치를 당해? 흥!!

[연철] (갑갑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며) 이고, 해골이여으-

[도삼] (체념조로) 그런다고 칩시다---- (언성을 높여) 그나저나 기왕 이렇게 원시적으로 고기를

잡을라먼 차라리 죽을 염려도 없고 속 편한 내 뜰망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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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릴 생각을 해야 해요!

[곰치] 원시적이가 믄 말이여? 모를 소리를 그만해! 뜰망배라도 내것 띄우자는 말에는 나도

찬성한다마는---- (단언하듯) 들어둬! 첫째 뱃놈이 물을 무서워 해서는 못써! 그리고 니가 한 소리는

똥개 앙알대는 소리같이 알아 듣지도 못 하것다마는 그것은 다 돈 많은 돔들 한량놀음이여! 뱃놈은

돈이 남으먼 튼튼하게 중선배나 하나 짜고, 그물이나 한벌 사둬야 해! 비행기? 뭐? 렛따? 흥!! 듣고

보4도 못한 헛 소리여! 뱃놈이 그런 헛소리하먼 못써! (어슬렁어슬렁 마당을 서성대다간 힐끗 하늘을

쳐다 보고는) 날쌔 참말로 좋다.

[도삼] (끼질듯이) 후유- 이때, 징소리, 어부들의 함성 뚝 쪽에서 들려온다. 곰치 감진당한듯 우뚝

설때, 생기가 돈 얼굴로 성삼 등장

[곰치] (초조하게) 남은 벌써 배 띄우는디 임영감은 으짠 일이여? (불안한 얼굴로) 그새 그 영감맘이

또 변한 것은 아니까?----

[성삼] 곰치! 아니, 뭇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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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랑빨랑 서둘지 않고!

[곰치] (그제야 정신이 든듯) 오, 성삼. 어서 오게!

[성삼] 그래 꿈은 잘 꿨어?

[곰치] 아암! 말해서 뭇해? 허벅다리 같은 부서로만 배가 터지는 만선이었어! 암짝에도 스무접은

했어!

[성삼] (놀라서) 스무접?

[곰치] 아암!

[성삼] (우악스럽게 곰치의 얼굴을 두들겨 대며) 허어 됐네! 됐어! 그말 한번 멋찌네! 됐어어-

[곰치] 그것 뿐인 줄 알어? 그것도, 그것도 이 곰치만 했어! 다른 배들은 기껏해야 두 서너접이고---

(배를 쭉 내밀며 거만하게 뒷짐을 진다)

[성삼] 흐음- 그것 참! 대길 징조일세! 자고로 뱃놈 고기는 꿈이 잡는단 말도 있잖는가?

[곰치] 아암!!

[성삼] 하옇든 제발 만선이 돼서 돌아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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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늙은 나비 한테 슬슬이도 안 보낼 것이고.---

[곰치] (단호하게) 농담 말어!

[연철] (불만에 찬 시선으로 성삼을 쏘아본다)

[곰치] 성삼이, 날쌔 좋지?

[성삼] 기가 맥히게 좋네! 부서잡이에는 그만이여!

[곰치] 아암!

[도삼] 아자씨! 돛 가지고가야 짐만 돼것지라우?

[성삼] 바람이 좀 세지는대 돛은 필요없겄어!

[곰치] (벽력같이, 도삼에게) 말어! 암말 말고 어서 말어!

[성삼] 곰치! 돛은 필요 없겄어! 이만한 바람이먼 괜히 짐되네!

[곰치] 염려 말게! 다 죽어 나자빠져도 이 곰치는 안그래? 남들이 다 못하는 일도 곰치는 해내! 다

속이 있어서 가져가는 것이시! (정색을 하고 도삼에게) 돛을 달어!

[도삼] (나직막하게) 아부지 하고 나하고는 뜻이 맞는 날이 없어! (불만스런 표정으로 돛을 단다)

[곰치] 저 놈이? (힐끗하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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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자아- 그럼 자네 꿈대로 배가 터지는 만선일쎄? 응? 나도 얼른 가 봐사 쓰겄어! 다들 잘

해보소 (나가려 한다)

[곰치] 아니 으디를 가는거여?

[성삼] (어색한듯 머리를 긁적 거리며) 실은 자네네 배가 은제 풀릴지도 모르겄꼬 해서 오늘은

뜸막이네 배를 타기로 했어!

[곰치] 뜸막이네 배? 아니 으째 그 배를 타?

[성삼] 아무배먼 으째? 맘은 자네 간 쪽인디!

[곰치] (퉁명스럽게) 가소! 가!

[도삼] (서운해서) 임영감만 올라오시먼 곧 우리배도 뜰것인디!

[연철] (불만 스럽게) 해필이먼 범쇠 영감네 배를 타요?

[성삼] 범쇠고 놋쇠고 내가 그 영감 얼굴보고 탄당가? 얹혀묵은 놈 아무배나 타고 하루벌이 좀 하는

것이제!

[곰치] (신경질적으로) 가란마시! 빨리 가란마시! 보소! 내배가 기중 많이 올릴탱께!

[성삼] 듣기만 해도 오저서 죽겄어! 아암! 그재사제!

[곰치] 어서 가보게! 배 뜨먼 으짤라고!

[성삼] (곰치의 등을 두들겨 대며) 자 그라믄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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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세! (연철과 도삼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대며) 자알들 해 보시게잉? 이번 배는 달러! 으찌께 해서

풀린 배인디--- 그저 곰치 말대로 칠산바다 부서는 몽땅 걷어! 몽땅! (나가려다 말고는 어두운

낯빛으로) 그나저나 한시바삐 배가 풀려 사쓸것인디! 눈으로 보고 가야 맘이 놓이겠네만---- 임영감 곧

올라올 것이지! 그람 물에서 만나세! 가네에-

[곰치] 어이, 어이----

[도삼 연철] 먼저 가시게라우-

성삼 바삐 퇴장

[곰치]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라) 아니 남들은 벌써 뜨는디 이거 으찌께 된 판이여? (바삐 마당을

서성대며) 몇 접 그저 뺏기능갑다! 그저 뺏겨! 먼저 담그는 그물은 그물코가 터졌다고 부서가 안

백힐것이여?

[연철] (애가타서) 아문이라우! 이러다가는 한나절이 되사자뜨게 될랑가? (우악스럽게 손 마디를

꺾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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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그 방정맞은 소리 하지말어! (이때 징소리. 짐승처럼 꼿꼿이 선채 귀를 기울이다간 바삐

마당으로 서성대며) 뜸막이네 배도 뜨는구나! (손바닥을 펴 허공에 세워보곤) 이까짓 바람으로는 안돼!

바람이라고 숫탉날개치는 것만도 못해서는 (불만스럽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쩝쩝 입맛을

다셔댄다)

[도삼] (영문을 몰라) 그라믄 바람이 더 불어사 쓴단 말이요?

[곰치] (연설조로) 이치가 이런 것이다. 부서란 놈들은 중선배가 즈그들 묵을 것이나 된줄알고 미쳐

따라 댕기그등? 배가 너무나 느리먼 놓쳐? 바람이 참대쪽같이 몰아칠때? 쌍돛 달고 미끄러져 봐라!

[연철] (흥분해서 다급하게) 그래서요?

[곰치] 부서떼 허리를 딱 잘라서 두 떼를 내놓고 대고 깊은 바다로 백힌단 말이다. 부서떼 길 터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되려 부서떼 길을 막는 결과가 되뿌러! 으째서 그라냐? (침을 꿀꺽 삼켜대고

나선) 뱃전 가에로 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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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떼 한테 한주먹 두 주먹 운저리 새끼들을 뿌려줘봐! 그렇게 해서 한다래끼만 뿌려주먼 부서떼는

중선배 가에서 떠날줄을 모른단 말이다. 배만 떠 있으먼 사나흘은 꼼짝 안해!

[연철] (감탄해서) 허어-

[곰치] 누구한테 이런말 하먼 못써! (회상에 잠기는듯) 다아 우리 선친네 덕이제--

[연철] 아문이라우! 누구한테 말을 할 것이요!

[곰치] 어지께 기쓰고 뜰망배 탄 것도 다 그 운저리새끼 잡으려고 그런것이여! (갑자기 정색을 해

가지고) 그나저나 이거 큰일났어! 아니, 이 영감이 으짠 일이여?

[연철] (사립쪽을 가리키며) 쉬잇-

임 제순 영감이 들어온다. 흰 모시 저고리 바지에 금테 안경을 썼다. 손엔, 계약서인 듯 종이 두장을

들었다. 기쁨에 넘친 세사람들의 얼굴

[곰치] (연방 넓죽넓죽 절을 하며) 어서 오시게라우!

[임제순] 준비는 다 됐어?

[곰치] (희열에 들떠) 아문이랍녀!

[임제순]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곤, 뱅그르 돌아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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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맥힌 날이여! 날세 좋다아-

[곰치] (덩달아) 부서 잡을라고 하늘하고 짰지랍녀!

[임제순] 으음- (그자리에 쭈그려 앉으며) 앉게여! 그라고----

[곰치] (따라 앉으며 연방) 예에! 예에!

[임제순] 보자아- (종이를 펴 들며 조끼 주머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쓴다) 내가 요참에는 참말로

자네땀세 망하는 것 같은 마음 뿐이여! 배를 빌려돌란 사람이 집 마다에 밀리는디도 딱 잡아 뗐어!

자네땀세 말이여! (응큼한 눈으로 힐끗 곰치의 눈치를 살핀다)

[곰치] (머리를 조아리며) 모를 리가 있겄읍녀?

[임제순] 아문- 공을 알어사----(은근하게) 요참물은 뻔한 것잉게 접세나 두둑허니 줄 것으로 믿고

한일이고---허엄-

[곰치] (곤란한듯, 희비가 교차하는 표정으르) 에에! 예에---- (머리를 긁적거린다)

[임제순] 보자아- 계약서를 이렇게 썼네, 열 엿세니까 내일 이시! 좀 짧내만은 내일 저녁까지 밀린

배삯 이만원을 치르기로 돼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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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어안이 벙벙해서) 너, 너무나 시일이 짧읍니다요! 나는 오늘부터 사흘 안으론지 알었지라우!

[임제순] 무슨소리? 어지께 자네하고 합의한 것인께 계약날은 어지께여야 되지 안컸어?

[곰치] 글씨라우- 글씨라우----

[임제순] (벌떡 일어서며) 뭇이여? 씨- 자네가 그런다먼 나다 파계하고 다시 배를 묶겄어!

[곰치] (황급히 일어서 임 제순의 팔을 잡고는) 아닙니다!! 영감님 말씀이 옳지랍녀! 예! 예!

[임제순] (서너번 헛기침을 해내고 나선) 으음- 아문- 그래사제!! (계약서를 펴들곤) 나는 찍었응께

자네나 찍어(인주를 꺼내) 자아!!

[도삼] 도장갖꼬 올끄랍녀?

[곰치] (급하게) 오냐! 어서 갖고와!

[임제순] 가만- 도장은 안돼! 도장은 파먼 또 있제만 지장은 시상에 하난께 지장을 눌러줘!

[도삼 연철] (기가차서) 후유-

[곰치] (꾹 지장을 찍나선) 자, 인자는 됐지라우? (얼굴에 희열의 미소가 번진다)

[임제순] 으음- (계약서 한장을 곰치에게 내밀며) 자, 이것은 자네가 갖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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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계약서 한장을 소중히 조끼주머니에 넣곤) 꼭 지켜사 써! 이참에는 가차 없응께!

[곰치] (자신 만만하게) 염려 마시게라우!

[임제순] (흡족해서) 아문! 말은 분명해사 쓰는 것이니---

[곰치] 아문이랍녀!

[임제순] 자아- 그라믄 (손을 번쩍들곤) 뜨게! (한동안 손을 들고 잔뜩 위엄을 부리고 섰다간 서서히

퇴장)

[도삼] (격분해서) 여시같은 영감탱이! 이번 계약이 무너져도 자기는 이익잉께! 천상 널린 돈은 걷기

마련이고 걸린돈은 크기 마련잉께! 어어? (곰치의 손에서 계약서를 받아 읽어보곤 눈이 휘둥그래져서)

계약 불이행시는 일체의 재산몰수라? 이거 집이고 뭇이고 싹 잡혔구먼! 아부지! 여기다가 무턱대고

지장을 눌르셨오?

[곰치] (태연하게) 무턱대고 눌러? (비장한 목소리로) 다아알어! 하옇든 눌러야 해 (언성을 높여)

두고 보먼 안다! 곰치는 안 죽는다! 곰치는 스고 말어!

[연철] 영감 너무해! 임영감 너무 한단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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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침착하게) 못써! 원망하먼 못써! 배 풀어준 것만도 오지게 생각해사--- (갑자기 수선을

피운다) 어서! 어서! 어서들나서! 곰치 부랴부랴 그물을 지고 나서고, 도삼이 돛을 메고 나선다.

연철은 다래끼를 들었다. 갓난애를 업은 구포댁, 슬슬이 등장, 침울한 표정의 구포댁에 비해 슬슬이의

얼굴은 한결 밝다. 슬슬이 연철에게 뜻있는 시선을 주다가 슬며시 외면해 버린다.

[곰치] (나가려다 말고) 으디를 쏴 댕겨?

[구포댁] (허탈하게) 무담씨 속이 지랄같아서는 뚝에 나가 볼라고 앉어 있었제머----

[곰치] 아니, 으째? 이좋은 날에, 부서떼가 사태났겄다. 배가 풀렸겄다. 이참에 반다시 우리도 설

것인디 뭇이 으째서? (감격적인 목소리로) 이것아! 웃어! 배가 터지는 만선으로 오마!

[연철] 너머나 좋으셔서 그라시겄제머!

[구포댁] 야아! 맘은 기뻐서 죽것어! 그람시러도 한편으로는 잉---- 한편으로는 잉--- (고개를

하늘로 향해 쳐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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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무담씨 복장이 터질라하고---

[곰치] 이놈의 예펜네가 믄 사설이여? (둘이에게) 어서들 나서!

[도삼] (구포댁에게 다가가 양 어깨에 손을 얹곤) 엄니! 다알어! 괜한 걱정하시지 말어!

[구포댁] (힐끔힐끔 곰치의 눈치를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 그래, 이놈아! 날이 좋고 별것이

다 좋을때라도 니가 배만 타면 무담시 이렇게 선뜩선뜩 가슴이 저린단 말이여! (울먹이며) 그래, 니가

으찌게 이 애미속을 알어? 어림도 없어어--- (돌아서며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나서) 도삼이 니도

오늘 꼭 타야 써?

[곰치] 저런 미친것 하는 소리 좀 보게? 주둥이가 터져 뭉개져야 알겄어? (노기 등등하여) 도삼아!

빨리 못 나서? 엉?

[구포댁] 주둥이가 터진 실밥이 돼도 맘대로 씨불대기나 해 봤으먼 좀 풀리겄는디 그도 못하고---

그라지 안할라고 했다가도 저놈이 그믈만 지고 나서 먼가슴이 선뜩선뜩하니 미치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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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삼] 엄니! 내가 배 안타게 생겼오? 생각좀 해봐 집안꼴을---- (슬슬이를 쳐다보고 나서) 나

오래비가 그냥 볼라고 앉어 있겄오?

[슬슬이] (어두운 얼굴로 돌아서며 꺼질듯이) 후유-

[곰치] 도삼아! (어서 나서라는 고개짓)

[도삼] 엄니! 딱 이번만 배타고 인자는 더 안타! 뜰망배라도 내 배 부리기 전에는 안타!

[곰치] (그런 도삼이를 못마땅하게 흘기며) 미친놈! 어서 썩 나섯!

[연철] (부러 명랑하게) 자아- 갑시다! 도삼이 얼른 가세! 부서떼가 우리 기다리다가 진갑 지내겄오!

(구포댁 앞에 다가가) 저 하늘 좀 보씨오! 이렇게 좋은 날에 부서는 사태로 들어 있겄다.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한판 멋지게 섭니다! 스고말고라우!

[곰치] 아암!

[구포댁] (점점 밝은 얼굴이 되어 하늘속으로 눈길을 박는다)

[곰치] 자아- 어서들 나서자!

세 사람, 생기가 도는 얼굴들로 활기있게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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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뒤에 나가던 연철, 타는듯한 눈길로 슬슬이를 쳐다보며, 모르게 손목을 꼭 쥐었다 논다. 슬슬이

연철의 뒷 모습에 시선을 못박고 섰고, 구포댁은 흡사 정신나간 사람처럼 하늘속을 우러르고 있다.

[슬슬이] (구포댁에게 기대며, 희열에찬 목소리로) 엄니! 인자는 우리도 떳떳하게 살 수 있대야!

그렇게 되고 만대야!

[구포댁] (헛소리처럼) 참말? 참말?

[슬슬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으음!

[구포댁] 지먼 소용없어! 이겨사제---

이때 뚝으로부터 요란하게 울려 퍼져오는 징소리, 세 사람의 함성들, 곰치의 출어 신호인듯-

몇번이고 무대위에 번져 온다.

[구포댁] (별안간 정색을 하고) 떴구나---- 슬슬아! 어서 찬물 한 보세기 떠 온나이! 어서!

[슬슬이] (찬물을 떠와 구포댁 앞에 놓고나서) 아아! 배는 떴어!

[구포댁] (뚝 쪽을 향해 용황상제 수신니임! 우리 용삼이, 덕삼이, 몽삼이, 이 죄많은 년이


[페이지] 073

다아다 잡아 묵었지라우- 시상에 청대같은 아들로만 셋이나 물속에서 죽었지라우- 웠따, 수신님

고견현명하신 용황상제 수신님- 우리 도삼이 만선돼서 무사히 돌아오게 호박불 연지불 다 키어주셔서

물길 천리 물길 만리 태평하게 하여 줍소사아- 구포댁, 정성스레 절을 하며 빈다. 슬슬이 마침내

구포댁을 따라 넓죽넓죽 절을 하기 시작할 때 점점 멀어져가는 징소리 꽹과리소리 흔들려 온다.

-서서히 용암-


[페이지] 074

[막] 2막

[장] 3장

[무대] 전장과 같은 무대. 전장으로 부터 십팔시간 후의 그날 초저녁. 거센 비바람소리, 고막을

찢을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용명되면, 사색이 다 된 얼굴의 구포댁을 에워싸고 성삼, 임제순, 범쇠,

침울한 표정들로 있다. 무대는 농도짙은 비애의 분위기.

[임재순] (발광하듯) 미쳤어! 내가 미쳤어! 그래 으짜자고 그 기맥힌 배를 오늘사 말고 내줬단

말이여! (안타깝게) 내 아까운 배! 어이구 내 배!!

[성삼] 원 영감님도! (침통하게) 기다려 봐사제라우! 곰치는 반다시 살어 옵니다요! 예에!

[임재순] 곰치가 죽든살든 내가 알바 있어? 그 배가 내 배중에서는 기중 좋은 배란 말이여!

[성삼] 영감님! 곰치가 오먼 시험쳐 올랍디여? 배타고 오겄지라우---

[범쇠] (구포댁에게, 가만히) 아짐씨! 너머 상심마씨요! 믄 방도가 있겄지라우! (음흉스런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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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흥! 방도라우? (기진해서) 이고!

[범쇠] 아문!

[성삼] 아니, 사람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디 속밸소리 그만 하씨요!

[범쇠] 속밸소리? 아니! 이 사람이 믄 말을 이렇게 해? (벌떡 일어서며 한참 성삼을 쏘아본다)

[임제순] 속 편한 소리들 싹 집어쳐-

[범쇠] (아무말이 없는 성삼을 잡아 먹을듯이 노려 보다간 급히 사립문으로 나가버린다)

[구포댁] (성삼의 어깨를 우악스레 잡아 흔들며) 예 아자씨! 말이나 좀 씨언하게 해주시란 말이요?

그래 영- 도삼이 탄배를 못 보셨단 말이요? 예에---

[성삼] 우리배는 범섬 앞바다에서 잠깐 그물을 담궜다가 뜰막이가 하도 걷자걷자 해서 그냥

돌아와뿔지 안했오? 봤으먼 봤다하제 뭇 났다고 그짓말을 할 것이요?

[구포댁] 그람 이양반은 으디로 갔단 말이여? 시상에 눈이 뒤집혀서 환장을 했제! 이런 일이 으디 또

있으까!

[임제순] 그놈의 곰치 성미땜새--- 그놈의 우실이네 배도 소식이 없으니! 앳참 속이 썩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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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아니 우실이네도 안 들어왔오?

[임제순] 바람이 뚝을 쓸게 생겼는디 으디로 들어와? 반다시 믄 수가 붙었어! 들어올 배라먼 진작

들어왔어! (간이 타는듯 바삐 마당을 서성댄다)

[구포댁] (가슴을 텅텅치며) 이고, 이고오- 도삼어으! 이고오-

[임제순] 이놈의 곰치한테 배 붙여주고 나서는 믄 좋은 일이 한 가지도 없으니! 아이고 미치겄어!

[성삼] 곰치도, 도삼이도, 연철이도, 배도 죄다 옵니다! 반다시 오고 말고!!

(지서순경, 종이 한장과 연필을 들고 등장. 세 사람 우르르 달려가 순경을 에워싼다.

[세사람] 아니, 으찌께 됐오?

[순경] (극히 사무적으로) 본서에 연락중입니다!

[임제순] 아니, 인자사 연락중?

[순경] (임제순 알아보고, 고개를 끄떡해 보이며) 예에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몇 시간 전에 배가

떳으니깐요. 기다려야지우---

[성삼] (풀이죽어) 그것 참---

[순경] 승선자 이름좀 대 주쑈.

[구포댁] 우리 쥔 양반하고 아들이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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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 이름으로 대 주셔야제.

[구포댁] 쥔 양반은 곰치고 아들은 도삼이지라우!

[순경] (적으며) 곰치?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구포댁] 야아! 이름이 우습지라우! 그 복쟁이 새끼 잡어 묵음시로 곰곰하는 눈 툭 불거진 고기

있지람녀! 바로 그것이지라우!

[순경] (웃음을 참으며) 예, 예 알었읍니다. 배 이름은?

[임제순] 영일호! 선주는 나요!

[순경] 예에. (적고나서) 곧 소식이 있을 것잉께 기다려들 보씨요! (퇴장)

[성삼] (담배를 태워물고 나선) 곰치는 옵니다! 만선배끄니라고 늦어지는 것이것제--- (그러면서도

어두워진 주위를 불안하게 휘둘러 본다)

[임제순] (조끼 주머니에게 시계를 꺼내보며) 기가맥혀! 여덟시네 그랴! (이때 슬슬이 무당과 함께

들어온다. 무당, 헛간 쪽에서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고 방문이며 마루, 장대들을 툭툭 건들며 마당을

돌아다닌다. 네 사람, 마루끝에 앉아 긴장된 얼굴들로 무당만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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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두 손을 하늘높이 쳐들며 두 눈을 꼭 감고 있다간, 별안간 고개를 살레살레 내 저으며) 이거

큰일 났구나아- 부수심청 꽃방석을 느그들이 상좌하여, 물길만리 수만리, 어족백관 대노하니 느그 신세

산말이라

[성삼] (나직하게) 뭇이라고?!

[임제순] (신음처럼) 으음 난리 났구먼! 괘가 저렇게 나오면 틀렸어어-

[무당] (그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거기는 가지마라! 불길속에 산화문, 이쪽으로 오너라 용황상제

영화문, 일각이 제상수라 백화시녀 두등등등- (갑자기 그자리에 서며) 뭇이라고?

[구포댁] (기겁해서) 나 암 말도 않했는디라우!!

[성삼] (황급히) 아짐씨! 아짐씨 한테 그라는 것이 아니요! 굿함시러 하는 짓인디--- 쯧쯧쯧-

[구포댁] (흠칫 놀라며) 오오! 내가 믄 정신이 있겄오---

[무당] 잡소리를 하지마라, 잡귀신이 눈불쓰고 물귀신이 남불쓴다아- (막대기를 이마 앞에다 세우고

연방 돌아가며) 백화시녀 출영이요오- (구포댁에게) 누구?

[구포댁] (다급하게) 도삼이라우!

[무당] (도삼, 도삼, 떡도삼아! 활개피고 드러누워 떡메같이 업혀가다, 백화시녀 널 부른다아-

(구포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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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

[구포댁] 곰치라우! 연철이라우!

[무당] 들불곰치 공공공 복쟁이 배 터진다아. 잠 오먼 눈씻고 혼 나거먼 기등잡고오- (헛간 쪽으로

걸어가 새끼 토막을 주워 제몸에 칭칭감고 나오며) 잠귀신, 터럭손, 이놈 잡어 결박하고 오 찰떡쳐야

말할랑가 (막대기로 제 몸뚱이를 때리며) 어나 어나 이놈아 목단꽃술 확 터지면 청청유월 늘어진다아-

어서 어서 터져라. 그냥 훅 말귀 터져라아- 에구구 나 죽네에- (네 활개를 쫙 펴곤 나자빠져 버린다)

[성삼] (일어서며, 긴장해서) 인자 괘 나오요! 괘여--- (네사람, 일어나 시선, 초조하게 무당의

거동을 주시한다.)

[무당] (옷을 털며 일어선다) 걱정을 마쑈예! 길수요!

[네사람] (말문이 막혀) 예에?? 참말?

[무당] 아문이라우! (연설조로) 배가 움시러 오요! 만선에 힘이 부쳐 배가 움시러 오고 있단 말이요!

인자 팔자 고쳐서 달아래 베개 비고 콧구멍만 쑤셔겨도 된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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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덥석 슬슬이를 끌어 안으며, 기쁨에찬 얼굴로) 어이고 슬슬어으!!

[슬슬이] 엄니! (울음반, 웃음반) 흐흥-

[성삼] (어쩔줄을 모르며) 그래 내말이 한나도 틀린 데가 없단 말이제! 허허허- 곰치 그놈, 만선배

부림시로 찌쁘등 웃고 있을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놈은 여간, 웃은 일이 있어도 억시게도 안

웃그등--- (흥을 내가며) 그저 눈은 오렇게 찌푸리고는, 어금니는 밭두덕이 지도록 꾹 깨물고는, 입을

꼬리만 이렇게 샐쭉 함시러 살짝 웃고 말아 뿌러어- 허허허!

[임제순] (덩달아 헛웃음) 하하하핫-

[무당] 너머들 좋아서 나 같은 것은 아조 잊어뿌르셨오? 나도 싸게싸게 가야할 것인디---

[임제순] 오참! 내가 치루제! 이렇게 기분이 좋은날 내가 치루고 말고! 엇쏘!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됐제?

[무당] (돈을 세어보곤) 백삼십원이나? 엇따, 영감님 말한번 고맙소! (나가려다 말고) 인자는 맘

괜히 묵꼬 기다리기나 하쑈예! 잘 되고 나서는 나너머나 괄씨할라 말고--- 히히히---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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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사립까지 따라나가) 참말로 고맙쏘잉! 조심해서 가시게라우예! (뚝 쪽으로 향해서선)

시상에 내자식이 그람 으디로가? 으애미가 이렇게 정성을 디리는디! 그나저나 만선이랑께 무담씨

복장이 떡방애질을 하는구먼! (감격의 눈물)

[슬슬이] (구포댁의 팔을 붙잡고 기대며) 엄니!!

[구포댁] 으째?

[슬슬이] 인자는--- 인자는 나---

[구포댁] (나직하게) 범쇠한테 시집 갈까봐서?

[슬슬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선) 엄니 인자는 내가 그렇게 안돼도 되지라우? (간절하게) 예?

[구포댁] (힘차게) 아암!! (덥석 껴안곤) 이고 내 딸년아! 니가 으디를---

[슬슬이] 그렇게 되먼 죽어불라고 했었어!

[구포댁] 뭇이? 시상에 죄 받을 소리를!

[성삼] (슬슬이를 훑어보며, 안타까웁다는 듯이) 쯧쯧- 저것맘이 그동안 참새처럼 봐았을 것이구먼!

(이때 뚝쪽에서 몇번 울리다 마는 징소리. 임제순, 성삼 벌떡 일어선다. 구포댁과 슬슬이 그들의

거동만 살피며 어쩔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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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순] 저것. 징소리가 아닝가? 이사람, 아 배가 닿았는 모양이시! 엉?

[성삼] (불안한 얼굴로) 배가 닿긴 닿었소! 그란딘 징소리가 으째 션찮을꼬---

[구포댁] 뭇이라우? 그것이 믄 소리라우? 예에?

[임제순] 하옇든 빨리 나가보세 (바삐 퇴장)

[구포댁] 아자씨! 으째 그리 멀뚱하니 서만 계시요? 어서 나가봅씨다 예에!

[성삼] (침착하게) 가만, 가만---- 아짐씨는 여기 계시쑈! 내가 핑 나갔다 들어 오지라우!

[구포댁] 아니 으째서?

[성삼] 글씨---- 여기 계시란 말이요! (헛소리처럼) 징소리가 션찮어어---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퇴장)

[슬슬이] 엄니!! 믄 일이 또 있는 모양 아니요? 예에?

[구포댁] (안절부절 못하며) 모르겄다 모르겄어! 설마 믄 일이 있으라든? 누워서 콧구멍 쑤시는 팔자

되겄다고 그란하던? (미소를 흘리며) 저 아자씨가 괜히 사람 놀리느라고 그라는 것이제앵---

[슬슬이] 그랬으먼 좋겄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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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사립 밖에서 (이사람아 정신차렷! 아니, 말을 해사알제!) 하는 소리들과 바쁜 발자국 소리들

가까와 온다. 구포댁 감전 당한듯 서 있고 슬슬이 불안한 얼굴로 어쩔 줄을 모른다.-사이- 성삼과 어부

둘이가 축 늘어진 곰치를 떠메고 들어온다. 곰치는 눈을 꼭 감은 채, 실실한 듯 반응이 없다. 구포댁,

슬슬이 우르르 곰치에게 몰려든다)

[구포댁] (미친사람처럼) 예, 예에, 도삼이 아부지! 예에?!

[슬슬이] (매달리며) 아부지!

[성삼] 자아, 자아 우선 마루에다 눕히고 봅씨다.

[어부1 어부2] (비통하게) 뱃놈이 다 그라제만 이 곰치놈 같이 고집센 놈은 고금에 없어! (곰치를

마루위에 눕힌다)

[구포댁] 아니, 우리 도삼이는, 우리 도삼이는?

[성삼] (망설이다 내 뱉듯) 곧 올 것이요! 화, 홧김에 술집에 갔지라우! (어부1, 2에게 눈짓)

[구포댁] 차, 참말이요?! 예?!

[어부1어부2] (똑같이) 아문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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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고오- 가슴이여으!! 으찌께나 속이 탔든지- 후유- (심호흡하듯

숨을 한 두번 깊이 몰아쉬고는) 오참! 연철이는?

[성삼] (내뱉듯) 다, 다들같이 술묵으로 갔오! (머리를 감싸쥐고 심한 고통에 몸부림친다)

[슬슬이] 후유- (가슴을 움켜쥐곤 어쩔 줄을 모르다가 슬며시 돌아서서 눈물을 씻는다)

[구포댁] (두 손을 모아 허공에 세우고는) 수신님! 시상에 우리사람들 죄다 살려주셔어

감사합니다아- (연방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그저 우리 사람들 돌려 보내주셔서 감사 합니다아-

(감격의 눈물 씻고는) 그나저나 올 사람들을 다왔응께 인자 말이나 좀 들어 봅시다! 대체 으찌께 된

일이라우? 어서들 말씀이나 해 보쑈야!!

[성삼] (떨리는 목소리로) 어서들 마, 말이나 해보게! 대체 으짠 일이여? 떠 떨려서 미치겄어!

[어부1] 오늘은 부서떼가 많이 갈렸었어! 부서떼만 안 갈렸어도 이런일이 없었을 텐디 그놈의

고기떼가 갈리는 바람에 배들도 고기떼를 따라서 죄다 흩어진 것이 화근이였어! 그랑께 그놈의

낮도깨비 같은 놈의 바람이 아침절 부터 몰아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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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다 다 알어! 우리는 바람이 나자마자 범섬 쪽으로 배를 돌리고는 한나절까지 옴싹도

못했응께! (가슴패기를 움켜쥐고) 그나저나 떠 떨려서 죽겄네여! (머리통을 무릎새에다 박으며) 이고!

이고오-

[어부1] 한나절 되도록 제대로 고기잡은 배는 없었어! 돛이 머여? 돛대가 부러질듯 바람을 타는판에

배는 뒤집어질 것 같이 뱅글뱅글 돌기만 하고---- 그랑께 우리가 고기잡기는 다 틀렸다고 배를

돌릴때엿든갑만! 그때 처음으로 곰치배를 봤네!

[구포댁] (다급하게) 그래서라우?

[어부1] (기가 맥히다는듯) 아, 그란디 이 곰치놈좀 보게! 글씨 쌍돛을 달고는 부서떼를 쫓아

한정없이 깊이만 백혀 든단마시!

[성삼] 므, 믓이라고?! 쌍돛?

[구포댁] 시상에! 므,믄 일이끄나!

[슬슬이] (곰치를 측은하게 바라보다 말고, 곰치 곁에 가서 사지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어부2] 아암! 꼭 자동차 같이 미끄러져 백히는디 아무리 돛 내리라고 소락때기를 쳐야 곰치란놈은

뉘집개가 짖나하고는 들은 신청도 않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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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아니, 눈이 뒤집혀도 분수가 있제, 그랄 수가 있을끄라우?

[성삼] 미친놈!!

[어부2] 하다하다 못 하겄어서 우리도 곰치를 따라갔지 뭔가? 쌍돛 단 배하고 우리 배하고 같어?

따라가다 못하겄어서 우리는 그냥 되돌아 와서 바람 안타는 동구섬앞에다 그믈놓고 주저 않었제!

저녁나절까지 그믈 담궜등가?--- (기가 맥히다는듯) 아, 그라다가 봉께는 믄 배 한척이 팔랑개비 같이

놈시러 떨밀리는 것이 멀리 뵈데!

[성삼] (곰치를 멀거니 쳐다보며) 쯔쯧- 미친놈, 열두불로 미친노옴 (다시 어부1,2에게) 그래서?

[구포댁] 시상에 으짝꼬! 그 배가 바로 저냥반 배구먼?

[슬슬이] 으째사 쓰꼬!!

[어부1] 여북 있오? 저놈 배제---그래도 그때는 돛을 내렸드만-- 배노는 것이 첫눈에 만선이여---

[성삼] (신음처럼) 만선!!-----

[구포댁] (간이타게) 그랬는디?!

[어부2] (비통하게) 오리 물길도 못저어 갔지라우! (손바닥을 뒤집으며) 그냥 팔딱 해 버립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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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옴매 으짝꼬!! (마루를 텅텅 쳐대며) 시상에!! 시상에!!

[슬슬이] (황급히 구포댁을 부축하며) 엄니이!!

[어부1] ---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놈 건지느라고--- (비통하게) 후유-

[어부2] 그나저나 곰치 저놈 지독한 놈이여! 그 산채같은 물결속에서 장작 쪽만한 나무 판자 하나 닥

보듬고는 그 통에도 호령이시! 곰치는 안 죽네, 느그가 아니어도 곰치는 사네! 이람시러는---

(처절하게) 그나저나 뱃놈 한 세상은 너머나 드러워! 개목숨만도 못한놈의 숨줄!(침을 퉤 뱉으며) 이고

더러워!

[구포댁] (바싹 다가앉으며) 그람 우리 도삼이는 은제 건졌오? 예에?

[어부1] (민망스런 표정으로 어부2와 성삼의 눈치만 살핀다)

[성삼] (절규하듯) 그, 다음은 말 하지 말어!! 말하지 말어어- (얼굴을 감싸버리며) 안돼! 말해서는

안돼에-

[슬슬이] (용수철 튀듯 일어서며 목석처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곰치] (몸뚱이를 한두번 뒤적거리며) 내 내부, 부서---- 부, 부서 으디 갔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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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우악스럽게 곰치를 잡아 흔들며) 이놈! 이놈 곰치야? (처절하게) 말을 해! 정신을 채리고

말을해!!

[구포댁] (미친 사람처럼 어부1에게) 우리 도삼이는?! 예에?! (어부2에게 매달리며 비명처럼) 예에?

우리 도삼이는?!

[어부2] 모, 못 봤지라우?

[구포댁] (정신이 나가 기절할듯) 므, 믓이라고?!

[슬슬이] (황급히 구포댁을 부축하며) 오빠!! 오빠!! (흐느낀다)

[구포댁] (실성한 사람처럼) 뭇이여! 뭇이여?!

[어부1] (울먹이는 소리로) 도삼이도, 연철이도 다, 다아 못 봤지라우!

[슬슬이] 아아- 아아- (점점 심한 오열로 변해간다)

[구포댁] (칼날처럼 날카롭게) 뭇이여?! 내 도삼이를 못봐?! (어부1,2 머뭇머뭇 망설이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도망치듯 퇴장. 몸을 뒤채는 곰치, 별안간 벌떡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곰치] (미친 사람처럼) 내 부서!! 부서!! 으디 갔어?! 응?! (미친듯이 마당에 내려선다) 아니 배가

터지는 만선이었는디 내 부서!! 부서는 으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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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처절하게) 이고, 이 미친놈아!! 이 썩을 놈아아- (깊숙이 두 무릎 사이에다 얼굴을 묻어

버린다)

[구포댁] (우르르 곰치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늘어지며) 우리 도삼이 으쨌오? 예에?! 내 아들놈

으쨌냥께?! (몸부림치며) 아니! 으쨌어?! 응! 으쨌냔 말이여?!

[곰치] (아랑곳 없이 쭈르르 걸어나가 우뚝 서선) 도삼아 이놈 이놈이 내 부서 으쨌어? 배가 터지는

만선 부서를 으쨌어?! (넋나간듯 사방을 휘이 둘러본다)

[구포댁] (발버둥치며) 말을해!! 내 참대쪽같은 아이놈 으쨌냥께?! 어서 말을 해!! 으응?!

[곰치] (눈이 휘둥그래 져서) 아니 도삼이는? 도삼이는 으디 갔어? 연칠이는 으디갔어---

[구포댁] 말 안 할 것이요? 으응? 내 도삼이 으쨌는지 말 안해?

[곰치] (일그러진 얼굴로 한동안 말이 없다간) 모,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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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내뱉듯) 나는, 나는 몰라!----

[구포댁] (펄쩍펄쩍뒤며) 뭇이여?!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이고 오- 도삼어으-

도삼어으- (다시 곰치의 어깨에 매달리면서) 말하란 말이여!! 내 도삼이 으따 뒀어?! (오열로

변해가며) 으째 말을 안 하냔말이여어!! 으째에- 으째서 말을 못해에-

[곰치] (헛소리처럼) 몰라!! 나는 몰라!! 구포댁 곰치의 발밑에 기진해 쓰러져 버린다. 슬슬이 통곡,

통곡, 성삼이 움직일 줄 모르고, 곰치의 일그러진 얼굴위에 번갯불의 섬광, 비바람소리, 천둥소리 점차

높고-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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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막

[무대] 전장과 같은 무대, 전막의 이튼날 한나절, 전막에서 보단 더 기세가 높은 바람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구포댁 홀로 마당 한 가운데 풀썩 주저 앉아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고 있고, 그옆에 타다

만 초 자루와 물 한 대접이 얹혀있는 상이 놓여 있다. 전막에서 보단 판이하게 사색이 된 구포댁,

헝클어진 머리, 헤쳐진 앞가슴, 촛점이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반공을 우러르고 있는 그네의 모습은

흡사 혼이 빠진 사람같다. 기도를 드리노라 한밤을 꼬박샌듯 가끔 자기도 모르게 꾸벅 졸다간 소스라쳐

깨며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한다. 무대엔 처절하면서도 몽상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슬슬이] (부엌에서 밥사발을 들고 나와) 엄니!

[구포댁] (졸다 흡칫 놀라) 수신님, 수신니임 우리 도삼이--- 우리 도삼이를 얼른 이 애미 품안으로

--- 애미 품안으로--- (기진한듯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슬슬이] (간절하게) 엄니! 엄니!

[구포댁] (그제야 옆의 슬슬이를 알아 차리곤, 헛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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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이? 으음---놈이라고?

[슬슬이] 밈이여 밈! 한사발 쭉 마시란 말이요!

[구포댁] (여전히) 우리 도삼이를 빨리 이 애미 한테 보내주시게라우--- 수신님, 수신니임

[슬슬이] 후유 (밈 사발을 들고 어쩔 줄 모르다간) 엄니! 이것 잡수셔야 써라우1 (입에다가 사발을

들이 대며) 자아, 자아!

[구포댁] (사발을 받아 들곤) 밈? (먹으려다가) 안되여! 우리 도삼이는 시방 물길 시엄쳐 오느라고

사지가 문드러져 빠질텐디! 창자가 비어서 힘도 지대로 못쓸텐디 사대육신 멀쩡한 이 애미가 뭇을

목구멍으로 맹겨?

미음 그릇을 놓아 버린다. 그 바람에 미음이 엎지러져 버린다.

[슬슬이] (발을 동동 구르며) 이고, 이고! 어지께부터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밈 그릇을 들며)

그나마도 겨우 쒔는디---

[구포댁] 미쳤다고 밈을 써? 안묵어! 아무것도 안묵어! 도삼이 올때까지는 침도 안 생킬란다!

[슬슬이] 오빠가 오드라도 엄니가 기운을 채려사 쓸꺼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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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속이 불무질 하느디 따대기지 말어라이! 아뭇소리 말어어 (하늘을 우러르며) 그래도 이렇게

바람만 자꼬자꼬 부르시능게라우? 예에?

[슬슬이] (헛소리처럼) 오빠는 와! 반다시 오시고 말거여! (옷고름으로 눈물을 씨는다) 임 제순,

노기 동등해서 등장. 그 뒤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범쇠 따라 들어온다.

[임제순] (방안을 향해, 큰 소리로) 곰치! 곰치이!

[구포댁] (꼼짝않고 앉아있다)

[슬슬이] 나가셨어라우!

[임제순] (시늉도 않고) 곰치! 이런 빌어묵을 작자가 있어! 없어? 엉?

[슬슬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치이!

[임제순] (구포댁에게) 그놈의 곰친가 믄가 어디 갔어?

[구포댁] (못 들은채 앉아만 있다)

[임제순] 이놈의 여펜네가 귓구멍이 곯았다냐? 아, 곰치 으디갔단 말이여?

[범쇠] (구포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아짐씨! 그라먼 못쓰지라우! 일이 기와에 이렇게

돼버린 이상 서로가 맞손잡고 타협해사지라우! 앙그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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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순] (미친듯) 아, 곰치! 곰치여!

[슬슬이] (신경질적으로) 내가 나가셨다고 그란합디까?

[임제순] (한쪽발을 텅 구르며) 애끼, 보밴데 없는 가시네 같으니라구! 으때대고 소락때기를

치는거엿?

[슬슬이] (홱 돌아서며 분함을 참노라 애쓴다)

[구포댁] (풀이 죽은 소리로) 슬슬아! 사발 물 갈어다 놔

임제순(구포댁을 독살스럽게 흘기며) 인, 고약스런.

[범쇠] 아짐씨! 속이사 오죽 하겄오만은 말씀이랑 하시고 그러사제--- (구포댁옆에 쭈그러 앉으며)

범쇠도 도움이 된다먼 나도 힘껏 해볼탱께 아짐씨도 힘을내서 일을 처리합시다! 예? 히히히 (구포댁의

어깨를 붙들며) 자아

[구포댁] (손을 홱 뿌리치며) 흥! (표독스럽게 범쇠를 쏘아본다)

[범쇠] (어색하게) 헛 참---

[슬슬이] 범쇠를 흘기고 나서, 상위의 사발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임제순] 아니, 곰치는 으디 갔어?

[구포댁] 아들 잡어무꼬 나서는 미친개처럼 쏘아댕기는 내가 으찌께 알겄오! 뚝에다 볼라고

앉었겄제---

[임제순] 에잇, 속상해서! 이놈의 곰치가 나하고 믄 원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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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막판에는 내 배까지 잡아묵어? 그놈 성미에 아들이 견뎌나?

[구포댁] 우리 도삼이는 와라우! 꼭 오고 말어라우! (못을 막아) 연철이도---

[임제순] 흥! 쯧쯧쯧

[범쇠] 아조 담념하시고 맘을 다시 묵어사제, 배가 부서지는디 사람이 으찌게 견뎌난다요? 곰치야

으찌게 살아 왔지만---

[구포댁] 못이라우? 그람 우리 도삼이가 죽었단 말이요?

[임제순] (못마땅해서) 그람 살어?

[구포댁]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시상에 죄받을 소리마씨요! 으짠다고 사람 맘들이 이렇게

모지까잉! 살어있고 말고라우! 지금 오고 있는디--- (단호하게) 아암! 한참 오고 있고 말고!

[임제순] 집이 아들이 살었든지 죽었든지 간에 오늘 당장 돈이나 내놔! 그 배가 으뜬 밴줄이나 알어/

아암! 그라고 말고! 그랑께 기왕 가라앉은 배 뜨지는 않을테고 밀린 배삯이나 오늘 당장 치뤄! 대서방

대꼬 와서는 집이고 뭇이고 싹 차압붙이기 전에!

[범쇠] (넌지시) 자아 말은 떨어지고 말었오! 아짐씨! 으찌게 방도 캐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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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못들은 채 눈을 질끈 감고는) 현찰 고맹하신 수신님! 어서어서 호박불 연지불 키어 주시고

우리 도삼이 오는 물길 태평하게 해주시게라우! (하늘을 우러르며) 하나니임! 바람바람 싹 쓸어서

곡간에나 가두시고 일원청청 햇이나 쏟아주시쑈 (두손을 모아 합장하곤 고개를 조아린다)

[임제순] (못 보겠다는 듯이) 흥!

[범쇠] 아짐씨, 백번 비셔도 인자는 이미 틀어진 일이요! 살어는 도삼이가 물고기라도 집채같은

물결속에서 한밤을 새운다우?

[임제순] (급하게) 이봐, 구포댁!

[구포댁] (건성으로) 예에?

[임제순] 구포댁도 알 것이시! 이 제순이가 으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란 말이여!

오그든, 이봐 말을 듣는 것이여?

[구포댁] (정신나간 사람처럼) 예! 예에!

[임제순] 나중에 딴 소리하먼 못써 곰치 오거든 오늘 안으로 당장 배삯 청산 하라고 전해 주어! 오늘

넘기고 나서는 괜히 이 임 제순이만 매정하다 말고---알었제?


[페이지] 097

[구포댁] (힘없이 고개만 끄떡거린다)

[임제순] 나 아조 말했네! (다짐하듯) 알었제?

[구포댁] (목멘 소리로) 엇따 알었오! (비명처럼 길게) 예에.

[임제순] 으음 됐어! 돈 관계는 분명해사 쓰는 것이니---

[범쇠] (내뱉듯) 헛 참, 살다살다 기맥힌 꼴을 다 봐! (퇴장)

[범쇠] (다정하게) 아짐씨이!

[구포댁] (벼락같이) 뭇이여? 뭇이란 말이여?

[범쇠] (질려서) 이라지 마시요! 당최 이라지 말어!

[구포댁] 아니, 곰치하고 믄 원수길래 임영감 섯바닥 피리에 장구치고 야단이여! 얹혀 묵은 뱃놈은

똥이고 배부르는 놈들은 다 양반잉가? 응?

[범쇠] 이 양반이 뭇할 소리가 없네?

[구포댁] 내가 믄 못할 소리를 했어?

[범쇠] 허어 아짐씨 아짐씨가 그렇게 소락때기만 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우선 끄고 불방도를 캐사제! 이래도 내 말이 틀린단 말이요?

[구포댁] (조금 누구러지며) 그것을 누가 몰라! (아들놈은 살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

(치마자락으로


[페이지] 098

눈두덕 을쓱 문지르고 나선) 바, 방도가 있어사제

[범쇠] (은근하게) 으째 방도가 없오? 생각해 보씨요.

[구포댁] 방도?--- (세게 고개를 내저으며) 없어! 없어!

[범쇠] (가깝하다는 드시) 헛 참! 기를쓰고 캐내사 있지라우!

[구포댁] (야릇한 표정으로 범쇠를 올려다 본다)

[범쇠] (바싹 다가 앉으며) 아짐씨! 죄다 살고봐야 합니다! 죄다 살어야지라우!

[구포댁] (그말에 제 정신이 든듯) 아문! 살어사제! 우리 도삼이는 살어 있응께 으찌게라도 방도는

있겄지라우

[범쇠] (감격해서) 예에! 고, 고맙소서 나온다.. (이때 지서순경 어두운 얼굴로 들어온다. 구포댁

애기를 안고 벌떡 일어나 순경에게 다가선다)

[구포댁] (숨가쁘게) 아저씨!

[순경] (난처한 표정으로 뒤통수만 긁적거리며 말이 없다)

[구포댁] (아자씨) 예에?

[순경] 진정하셔야제---

[구포댁] 아니 으찌게 됐오?

[순경] 지금은 수색을 못합니다. 바람이 자야제 다시 시작하게 되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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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그람 우리 도삼이 있는 물속이나 알었단 말이요? 분명히 살어는 있지라우?

[순경]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시체 인양작업 말이지라우--- 벌써 두분은---

[구포댁] (펄쩍뛰며) 시체?

[순경] 익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시체라도 건질라고 노력은 합니다만 그것도 거의 불가능이지라우!

워낙 바다가 깊어서---

[구포댁] 아니, 그라믄 우리 도삼이가 죽었단 말이요? 예애?

[순경] 말할 필요가 있읍니까? 돌아 가신거야 뻔 하지라우---

[슬슬이] (몸을 못 가누며) 아아 오빠아!

[구포댁] 뭇이라고? 뻔 해?

[순경] 글씨--- 시체 인양이 성공 할런지는 모르겄오만 하옇든 바람 자는대로 다시 시작 할것입니다.

(퇴장)

[구포댁] 아니, 여보쑈! 여보쑈 예!

순경을 쪼아 구포댁 허겁지겁 따라 나간다. 범쇠 넋나간 듯 서 있는 슬슬이의 눈치를 살피며

서성댄다. 범쇠 애욕에 타는 눈으로 슬슬이에게 슬금슬금 다가간다.

[슬슬이] (들고있던 사발을 떨구어 버리며) 오빠! 오빠아 (그 자리에 끓어 앉아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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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쇠] (떨리는 목소리로) 스,슬슬아! 그만해 둬--- (어깨에 손을 얹곤) 자아, 일어나---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며 등을 쓰다듬는다.)

[슬슬이] (땅을치며) 오빠! 오빠아

[범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목덜미를 쓰담듬으며) 연철씨마저--- (오열)

[범쇠] 자! 일어나 슬슬이 (애욕에 불타는, 어깨를 번쩍 일으켜 세운다)

[슬슬이] (범쇠의 손에 부축되어 일어서선, 범쇠의 가슴패기에 얼굴을 묻으며) 으흐흐흐 오빠아

[버쇠]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와락 끌어안으며) 스, 슬슬이! (한쪽 손으로 등과 둔부를 우악스럽게

쓸어간다)

[슬슬이] (고개를 들어 범쇠의 얼굴을 바라보곤, 그제야 기겁하게 놀라며) 음매? 엄니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다)

[버쇠] 못놔! 슬슬아! (더 힘줘 끌어 안으며) 못놔! 나하고 살어

[슬슬이] 놔! 놓란 말이요! 아이고 엄니이

[범쇠] 니가 이러면 느그집 꼴이 으찌께 되는질 알어? 자아, 슬슬아! (헛간쪽을 바라보며) 저기,

저기로--- 응? 집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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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이] 예에? (한동안 몸을 맡기고 서 있다간 다시) 놔요! 이 더러운 손을 놔! (팔을 문다)

[범쇠] 아야!

슬슬이 재빨리 빠져나와 도망친다. 범쇠 미친 사람처럼 슬슬이를 뒤쫓는다. 두 사람 온 마당을 뱅뱅

돌아 다니다가 슬슬이 헛간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범쇠 따라 들어가려 할 때, 곰치 노기 등등해서

등장. 헛간 벽에 바싹붙어 선 범쇠를 보지 못한듯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곰치] (마루에 풀썩 주저 앉으며) 슬슬아! 아, 슬슬아! 이놈의 가시내가 으디 갔어? (아무도

없음을 알자) 흥! 곰치가 지금 곧 죽어 나자빠질지 알어? 숨이 질때까지 내가 그물을 놔? 죽을지 알어?

자식도 죽이고 사는 이 곰친디--- (손바닥으로 눈두덕을 쓱쓸어 버린다) 눈물이 뭇이냐? 물속에서 죽는

뱃놈팔자 그만 하먼 됐제--- 흥! 범쇠 이놈---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잰다)

범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어쩔줄 모르다가, 곰치 담배재는 틈에 허겁지겁 도망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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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서) 아, 슬슬아! 이런 지길 어디들을 퍼 갔어? 아, 구포댁! 원

이것들이--- (휘방문을 열어 본곤) 애기도 없어? 이때 구포댁 터벅터벅 들어온다. 안은 갓난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당을 빙빙 돈다. 한눈에 미친 사람 같아.

[곰치] 으디를 쏴댕겨?

[구포댁] (여전히 갓난애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 채) 모실갔다 왔오?

[곰치] 모실? 아니 믄 청승에 모실이여?

[구포댁]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구경하고 댕겼제 머---

[곰치] 슬슬이 년은 으디갔어?

[구포댁] (고개를 살례사레 내 젖는다.)

[곰치] (마루위에 벌렁 드러누어 버리며) 이고, 도삼아아

[구포댁] (무표정한 얼굴)

[곰치] (드러누운 채) 아무 말도 아니여! (처절하게) 그래 뱃놈은 물속에서 죽어사 쓰는 법이여---

그것이 팔짜니라아 (열을 올려) 나는 안 죽어! 그여코 배를 부리고 말것이여! 돛 달때 마다 만선으로

배가 터지느 때가 반다시 있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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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마당을 서성대며) 흥! 그 꼴로 애미를 보다니--- 눈을 허멀겋게 뜨고는 머리는 산발

하고는, 옷은 뭇을 입었드라? 옳체! 생모시 저고리 바지를 입고는--- 그 옷을 해주지도 안었었는디

으디서 빌려 입었단 말잉가? 연철이 옷이등가?

[곰치] 뭇이라고? 믄 소리여?

[구포댁] (내뱉듯) 우리 도삼이 말이요!

[곰치] (벌떡 일어나 앉으며) 뭇이라고 도삼이?

[구포댁] 아암! 나는 도삼이를 봤어!

[곰치]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도, 도삼이를 봐?

[구포댁] 봤고말고! 이 애미 손목을 떨어져라 흔들어 댐시려는 뭇이라고 했쌌드만은 새끼가 말소리도

똑똑하게 안하고 실실 웃기만 하고는---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냥 가부렀어! (몇걸음 불이나케

달려가다 우뚝 서며 찢어질듯) 도삼아! 도삼아!

[곰치] 저것이---

[구포댁] (사방을 휘둘러 보고나선) 아니, 아니--- 이 매정스런 놈의 새끼가 으디로 가부렀어? 아

도삼어으 도삼어으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으흐흐흐- (운다)

[곰치] (침통하게) 도삼이는 죽었다!

[구포댁] 죽었어? 연철이도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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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아암! 벌써 죽었어!

[구포댁] 그짓말! 내가 아까참에도 봤는디?

[곰치] (구포댁의 어깨를 툭툭 치며) 여봐! 정신채려!

[구포댁] 시상에 내 청대같은 아들놈이 으째 죽는단 말이여? 다, 다아 그짓말이여! 그짓말! 도삼이는

살었어!

[곰치] 아니, 이것이 참말로 미쳤단 말잉가? (우악스럽게 어깨죽지를 잡아 흔들어 대며) 여봐! 으째

이려? 응? 정신을 채려! 자네까지 이라고 나서먼 곰치는 참말로 죽어 나자빠진 줄 안단 말이여! 다른

놈들이 나를 그렇게 봐도 괜찮단 말이여?

[구포댁] 그래, 우리 도삼이는 참말로 죽었오 참말?

[곰치] (비통하게) 아암! 주 죽었어

[구포댁] 그람 남은 놈은--- 남은(애기를 들어 보이며) 이놈 하나란 말이제?

[곰치] 으음 그놈이 열살만 되면 그물을 손질 할 놈이여!

[구포댁]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놈도 그물을 칠 것잉고? 열살이먼?

[곰치] 아암! 열살만 되먼 그물을 말고 말고!

[구포댁] (애기를 들어 눈앞에다 세우고는 뚫어지게 쳐자본다)

[곰치] 나한테 남은 것은 그물하고 이놈하고 슬슬이 뿐이여! (허탈하게) 다아 잃었어! 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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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불현듯) 오 참! 우리 슬슬이! 아조 범쇠한테 시집보네!

[곰치] (깜짝 놀라) 뭇이라고?!

[구포댁] 제발로 얹어 묵는 놈한테 시집가서는 안되제! 그래도 범쇠는 배를 부링께---(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슬슬어으

[곰치] 미친소리! 나가고 없어!

[구포댁] (애기를 들처 업으며) 그람 찾어가제! 범쇠는 배가 있어!

[곰치] (막아 서며) 안된다! 이 곰치 두 눈이 멀뚱할 때까지는 절대 안돼!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탄다!

으뜬 배라도 타고 만다! 칠산바다 부서는 아직도 사태여!

[구포댁] (갑자기 간드러지게) 흐흐흐흐 부서가 사태? 그람 내일도 당장 만선이겠네? 흐흐흐흐

[곰치] (질려서) 아니?! 니가 참말

[구포댁] 아암! 미쳤다! 미쳤어! (홱 빠져 나간다)

[곰치] 저런 육실헐---

성삼 들어오다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구포댁의 뒷 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쳐다 보다간 불안한

얼굴로 곰치에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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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어리둥절 해서) 아니, 갑자기 믄 일잉가?

[곰치] (퉁명 스럽게) 내 버려 둬!

[성삼] 얼굴이 사색인디?

[곰치] (침통하게) 미쳤어!

[성삼] 뭇이 아니, 뭇이라고?!

[곰치] 미친것! 흥!! 곰치는 안 죽어 내가 죽나 봐라!

[성삼] 자네 그 소리좀 고만 허게! 아짐씨도 오죽허먼 저래? 시상에 한나 남은 도삼이까지 물속에다

처박었으니--- (손바닥을 털며) 말이 아니여!

[곰치]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먼 한정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속에 달린 목숨이여!

[성삼] 자네도 그만 고집 버릴때도 됐어!

[곰치] (불만스럽게) 고집?

[성삼] (못을 박아) 아니고 뭇잉가?

[곰치] (꼿꼿이 서선) 나는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뱃놈은 그렇게 살어사 쓰는 것이여! 누구는

아들 잃고 춤춘다냐?? (무겁게) 내속은 아무도 몰라! 이 곰치 썩는 속은 아무도 몰라--- (회상에

잠기며) 내 조부님이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 잡지 말라고--- 우리 아부지도 만선 될 고기떼는

파도가 집채 같어도 쌍돛 달고 쫓아가라 하셨어! (쓸쓸하게) 내 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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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셋, 아래로 한나 남은 동생놈 마저 죽고 말었제--- 어--- (허탈하게) 독으로 안살먼 으찌께 살어?

[성삼] 그래, 조부님이나 춘부장 말씀대로만 하실 참잉가?

[곰치] (단호하게)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탈 참이다! 흥! 임영감님 배 아니면 탈 배 없어?

[성삼] 도삼이 생각이 안 나서?

[곰치] (격하게) 시끄럿! (침착하게) 또 있어! 아들은 또 있어---

[성삼] 갓난쟁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 저으며) 후유 지독하다!

[곰치] ---그놈도--- 그놈도--- 열살만 묵으먼 그물 말어---

이때 어부 숨이 차서 들어온다.

[어부1] 곰치! 크 큰일 났네!

[곰치] 아니, 뭇이 큰일 나?

[어부1] 배가 떴어!

[두사람] (영문을 몰라) 배가 떠?

[어부1] 자네 안 사람이 우실이네 배를 띄웠단 마시!

[곰치] 뭇이라고?

[어부1] 벌써 한가운데 만큼이나 떠 밀리고 있을 것이여!

[곰치] (말문이 막혀 혼을 빼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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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이것이 또 믄 소리여?

[어부1] 돛 까지 올려 띄웠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바람이 왠만해사 잡을 엄두라도 내제? 또

으디로 떠밀릴지 알기나 해서?

[곰치] 아니, 믄 일로? 응?

[어부1] 내가 알어? 진작 봤드라먼 내가 배 띄우게 놔둬? 배삯도 못치르는 판에 배 한나 또 부서지게

생겼으니--- (쓴입맛을다지며) 자네도 큰 일이여!

[성삼] 대체 믄 곡절이까?

[어부1]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쉬잇 (사립문께를 힐끗하고 나선) 물어 보게나! 나, 가네!

급히 퇴장 구포댁 뭐라 중얼대며 들어온다. 그네에 등엔 애기가 없다.

[곰치] (와락 달려들어) 아니, 으쨌다고 남의 배를 띄웠나? 엉?

[구포댁] (실실 웃으며) 나 배 안 띄웠어! (참말! 곰치(목을 움켜쥐고) 말을 햇! 어서! (구포댁의

등을 보곤 기겁해서) 아니, 애기는? 애기는 으따 뒀어? 엉?

[구포댁] (손을 내 저으며) 몰라! 나는 몰라! 숨줄이 끊어져도 참말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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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뭇이? 말 안해? (목을 바싹 졸라대며) 이래도! 이래도?

[성삼] (황급히 곰치의 손을 떼어 놓으며) 이라먼 못써! 물어 봐사제, 이라먼 못써! (구포댁에게)

아짐씨! 나 성삼인디 나, 알지라우?

[구포댁] (연방 고개를 내 저으며) 애기는 몰라! 나는 몰라?

[곰치] (다시 구포댁의 목을 졸라잡고) 이것을 나 죽이고 말거여? 말 안 할래 애기 으따가 뒀어? 응?

어서 말을 해?

[구포댁] 갔다! 가부렀어!

[곰치] 뭇이? 가?

[구포댁] 쩌그 뭍으로 갔다! 가뿌렀어?

[곰치] 배에다 실어 보냈꾸나! 응?

[구포댁] 아문 뭍으로 가야 안 죽어! 지 명대로 살라먼 뭍으로 가야 해! 좋은 사람 부모 만나서

호강하고 크라고! 그래사 지 명대로 살탱께! 쩌고 뭍으로 배 타고 갔다!

[곰치] 이런 육실헐 (살기 등등한 눈으로 사정없이 목을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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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댁] (숨이 막혀) 오냐아, 오냐 주죽여라아 어서어 내새, 새끼는 갔다! 무, 뭍으로 가 뿌렀어

[성삼] (곰치의 팔 매 달리며) 뒈저! 어서 뒈저뿌럿!

[구포댁] (뚱 나가 떨어지며) 히히히 만석인디 내가 으째죽어? (일어나 마당을 뱅뱅 돌며) 슬슬아아

너도 범쇠한테 가그라마 범쇠는 배를 주리지야! (닭쫓듯, 시늉을 하며) 어서어! 어서어-

[성삼] (얼굴을 감싸 버리며) 후유

[곰치] (절규하듯) 이 미친 것아! 몇년 있으면 그물 손질할 내 새끼를 으따가 띄워보냈어 어엉?

미친 사람처럼 살기 등등해서 구포댁에게 달려든다.

[구포댁] (훌훌 도망쳐 다니며) 갔어! 갔어어 (찢어질듯 날카롭게) 찌그 뭍으로 갔당께에? (손을

입에 모으고 부르는 시늉) 슬슬어으- 슬슬어으 (우편 방속을 향해서) 니도 얼른 범쇠한테 시집 가!

범쇠 맘 변하기 전에 싸게 싸게 가랑께? (혼자 쌜죽해선) 바보같은 가시네, 아 범쇠는 배가 두 척이야!

두척 (훨훨 활개를 치며) 어서 이렇게 걸어가란 말이여! 어서!

[곰치] (살기찬 눈으로 구포댁을 바라보고 서선) 저 육실헐 것을! 그냥--- (성삼에게 급하게)

성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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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름 가보세! 붙잡아사제! 엉? 어서!

[성삼] 이 바람통에 으뜬 미친놈이 배를 내줘? 꼬딱지만한 동네 나루로 배가 밀리는 판에?

[곰치] (나가려다) 헛간에 널쪽 있네! 그놈이라도 타고 쫓아가사제!

[성삼] 널쪽? 배가 부서지는 판에 널쪽을 타고 쫓아?

[곰치] 배 보다도 널쪽이 더 나어! 널쪽만 안 놓치먼 집채같은 파도 속에서는 널쪽은 안 부서져!

[성삼] 글씨 안돼!

[곰치] 안될 것이 뭇잉가? 곰치는 해! 어서! 어서! (나간다)

[구포댁] (곰치의 가랑이를 쥐어 잡고) 못가! 못간다! 내버려 둬! 뭍에 가서 지 명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못간다 아 뭇가아-

[곰치] 이것 안놔? 안놀 것이여? (사정없이 발로 차버리곤 부리나케 나가 버린다.)

[구포댁] 못가! 못 간다는디 내버려 두어!

구포댁 허겁지겁 곰치를 쫓아 나가 버린다. 무대엔 침통한 얼굴의 성삼이 혼자 한 동안 넋을 빼고

있다간 불현듯 바삐 헛간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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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 (처절하게) 기가 맥혀! (꺼질듯) 후유- (헛간속에 발을 들여놓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헛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이- 기겁해서 뒤걸음질쳐 나오며) 엉? 스,슬슬이가!!

슬슬이가 모, 목을매고 죽었구나! 슬슬이가 죽었어!! 슬슬이가 죽어!! (신음처럼) 허어- 슬슬이가

죽다니

성삼, 감전 당한듯 그 자리에 넋빼고 서 있다 간 미친듯 달음질쳐 나가 버린다.

[성삼] 곰치야아- 이놈아아- 이 만선에 미친놈아-

단말마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 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것 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 거린다.

-급히 막-

Posted by 곽성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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